삼국시대 신라학자 박제상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부도지(符都誌)》에 의하면 사람들이 맑고 순수한 본래의 천성을 잃어버려서 ‘마고성’이라는 이상적인 공동체인 부도(符都)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 하듯이 순수한 본래의 천성을 회복(복본:複本)하여 양심 세상이 구현된 공동체인 부도(符都)를 다시 세우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단군조선 역사의 출발이고 이러한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 것이 복본사관(複本史觀) 또는 선도사관(仙道史觀)입니다.

이런 선도사관 관점으로 역사를 살펴보면 순수한 본래의 천성을 회복한 홍익인간들이 양심 세상이 구현된 나라를 만들자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의 건국이념이 21대 소태 단군(B.C. 1337)까지는 잘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단군조선 22대 색블루 단군(B.C. 1286)부터 홍익인간 정신의 쇠퇴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홍익인간 정신의 쇠퇴가 생기면서 단군조선의 국력도 점차로 약해지고 단군조선의 국력이 약해지자 한족(漢族)은 단군조선의 영향권에 있던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B.C. 1046)를 건국합니다.

청동기 시대를 지나서 철기 시대(鐵器時代, B.C. 1200-586)에 들어서면서 물질생산이 풍부해지자 욕망과 물질 중심의 문화가 강해져서 동아시아는 힘과 무력을 중시하는 부국강병의 패도정치가 유행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중국은 잦은 전쟁으로 정치적인 혼란이 거듭되는 춘추전국시대(B.C. 722-221)가 되고 단군조선도 47대 고열가 단군(B.C. 238)이 “지금은 왕도(王道)가 쇠약해져서 여러 제후국의 왕들이 서로 힘을 다투고 있다.”고 한탄을 하면서 천부(天符)의 법을 폐관(閉關)하고 단군조선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부국강병의 패도정치가 유행하는 춘추전국시대에 공자(B.C. 551-479)는 인(仁)을 강조하며 왕도정치를 설파하고 다녔지만 제후들의 냉대를 받았습니다. 인(仁)을 강조하며 왕도정치를 주장하는 공자와 맹자 사상보다 법치와 패도정치를 주장하는 순자(B.C. 298-238)사상을 제후들이 선호하게 됩니다.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을 잘 살펴보면 춘추전국시대의 사회현상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을 잘 관찰해보면 생각, 감정, 느낌이 있고 생각, 감정, 느낌을 알아차리는 의식이 있습니다. 생각, 감정, 느낌은 변합니다. 그러나 알아차리는 의식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생각, 감정, 느낌과 같이 변하는 마음과 알아차리는 의식과 같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생각, 감정, 몸의 감각기관으로부터 오는 느낌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 생각이 다르고 내 감정과 다른 사람 감정이 다르고 내 느낌과 다른 사람 느낌이 다릅니다. 그러나 알아차리는 의식은 사람마다 같습니다. 내가 알아차리는 의식이나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는 의식 그 자체는 같습니다. 이것은 갓난아기가 소리를 듣거나 무엇인가를 보았는데 학습된 것이 없어서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 무슨 물건인지는 몰라도 소리 그 자체와 눈으로 보는 그 자체를 알아차리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의식은 모든 사람이 같습니다.

정리하면 생각, 감정, 느낌과 같이 변하는 마음은 나와 남이 다르고 시간에 따라 변합니다. 알아차리는 의식과 같이 변하지 않는 마음은 나와 남이 같고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알아차리는 의식을 생각의 배경, 감정의 배경, 느낌의 배경이 되는 의식이라는 의미로 배경의식 이라고도 합니다.

변하지 않는 마음=알아차리는 의식= 배경의식은 모든 사람과 같으므로 변하지 않는 마음은 한마음입니다. 변하는 마음인 생각, 감정, 느낌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마음은 잘 모르고 지냅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20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 지금의 나, 나는 변한 것이 없는 ‘나’라는 느낌이 있습니다. 몸이 변하고 생각도 변했지만 ‘나는 나’라는 느낌은 변함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청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60살이 되어도 80살이 되어도 ‘변함이 없는 나’라는 느낌이 있기에 ‘마음은 청춘이다’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하지 않는 한마음에서는 우리 모두 하나입니다. 변하지 않는 한마음에서 나오는 마음은 좋은 마음입니다. 좋은 마음을 한자로 표시하면 좋을양(良), 마음심(心)으로 양심(良心)입니다. 변하지 않고 모두가 하나인 한마음에서 나온 마음이 양심이기에 모든 사람의 양심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의 한마음이 같으므로 한마음에서 나온 양심도 모든 사람이 같습니다. 만약에 내 양심과 다른 사람의 양심이 다르다면 이런 말을 못합니다. ‘양심껏 해라’, 우리가 ‘양심껏 해라’ 라는 말을 할 때는 당연히 모든 사람의 양심이 같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양심은 모두가 같으므로 너와 나의 구분이 없기에 양심 관점으로는 홍익, 사랑, 자비, 인(仁)의 실천이 쉬워집니다.

변하는 마음에서는 개개인 모두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변하는 마음을 분별심이라고도 합니다. 변하는 마음인 분별심에서 나오는 마음은 나뿐인 마음입니다. 나쁘다는 나뿐이다 에서 온 말입니다. 나뿐인 마음은 나만 아는 마음입니다. 나만 아는 나뿐인 마음은 나쁜 마음 입니다. 나뿐인 마음을 한자로 표시하면 이기심(利己心)입니다. 이기심은 내 이기심과 다른 사람 이기심이 다릅니다. 이기심은 자신을 우선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홍익, 사랑, 자비, 인(仁)의 실천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키우고 이기심이 작아지게 하려면 변하지 않는 한마음이 본성임을 자각하고 수행을 통해 한마음과 자주 접해야 합니다. 단군사화에 나오는 곰이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수행을 통해 변하지 않는 한마음이 밝게 드러나는 복본이 되어 인성 회복이 된 과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은 변하지 않는 한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므로 양심이 선한 것처럼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관점입니다.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은 변하는 마음이 인간의 본성이므로 이기심이 악한 것처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태어날 때부터 이익을 구하고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그대로 놔두면 싸움이 그치지 않으므로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는 예의를 배우고 정신을 수련해야만 한다는 관점입니다.

순자가 활동하던 춘추전국시대 사회현상이 어떠했는지를 순자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있는데 변하지 않는 한마음과 변하는 분별심 중에서 어떤 마음을 인간의 본성으로 볼 것인가는 당연히 변하지 않는 마음이 본성이라는 관점이 우세해 왔습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는 철기 시대를 맞이하여 물질생산이 늘고 욕망이 커지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분쟁과 쟁탈, 전쟁이 증가하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인간들의 욕망과 이기심이 커지고 양심이 작아져서 서로 이익을 구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세상이 되었기에 순자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기심이 인간의 본성으로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제후들은 순자의 사상에 동조해서 법치를 강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성악설 사상을 이어받은 순자의 제자인 한비(B.C. 약 280 - 233)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성악설 관점에서 쓴 《한비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에 제왕들에게 난세를 평정하고 나라를 세워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는 서적으로 진시황에 의해 읽힌 뒤, 중국의 통치술에 관한 고전으로 널리 읽혔습니다.

고열가 단군(B.C. 238)이 한탄하면서 천부(天符)의 법을 폐관(閉關)한 이유가 순자와 한비와 같은 성악설 사상이 인기를 얻는 세상이었기에 변하지 않는 한마음을 드러나게 하는 천부의 법이 전해지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본래의 천성을 회복하는 복본(複本)의 사명을 가진 단군조선이 망하면서 한민족은 분열하고 중국은 진(秦), 한(漢)으로 통일국가를 이루면서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한(恨)이 많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원통하고 억울해서 가슴에 맺힌 것을 한(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한”은 이루지 못한 소원을 뜻하기도 하므로 “한”은 바람이요 꿈이자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恨)을 파자해보면 忄 + 艮 이 됩니다. 忄은 마음을 뜻하고 간(艮)은 옛날부터 우리나라를 간(艮)방으로 지칭해온 것으로 보아 우리 민족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한(恨)은 우리 민족의 마음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 민족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우리 민족은 순수한 본래의 천성을 회복하는 복본(複本)의 마음을 이어온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복본의 마음을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홍익인간 재세이화이고 이것을 건국이념으로 한 나라가 단군조선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이념을 가지고 이것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단군조선이 그러한 염원을 다 이루지 못하고 망함으로 우리 민족은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이루어야 하는 염원을 계속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표현한 글이 한(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한”은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이루고자 하는 바람이요 꿈이자 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이런 복본(複本)의 웅대한 꿈을 잃어버린 결과 “한”의 의미도 쪼그라들고 변질되어 원통하고 가슴에 맺힌 것을 뜻하는 의미로만 남게 된 것은 아닐까 , 생각합니다.

꿈과 이상은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이끌어주는 등불의 역할을 합니다. 꿈과 이상은 높아야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뱃사람이 길을 잃었을 때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아가듯이 꿈과 이상도 별과 같이 높아야 길을 안내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꿈은 얼마나 높고 위대합니까? 우리 민족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한마음인 순수한 본래의 천성을 회복하는 복본(複本)의 길을 가고 있는가? 아니면 변하는 분별심인 욕망과 이기심의 길을 가고 있는가? 라는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이고 우리 민족의 “한”인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양심 세상이 이루어지는 꿈을 꾸고 있는지도 가슴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