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교적 객관적입니다. 반면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적 견해가 내재된 기록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학 분야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에드워드 H. 카(Edward H. Carr)는 서로 충돌되는 이 두 관점의 공통분모를 찾아 “역사란 사실과 역사가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말에서 현재의 역사학자가 어떤 관점으로 역사를 기술하느냐에 따라서 역사적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이 제외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가 과거의 어떠한 사실을 역사적 사실로 선택할 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보는 관점이 왜 중요한지를 이규보(李奎報·1168~1241)와 김부식(金富軾·1075~1151)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둘 다 고려인이고, 유학자였습니다. 김부식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남겼고, 이규보는 『동명왕편(東明王篇)』을 남겼는데, 김부식은 유학자의 관점으로 썼고 이규보는 고려인의 관점으로 각각 썼습니다.

유학자 관점을 가진 김부식은 공자의 말을 따라서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의 신이(神異:신기하고 이상)한 사적을 『삼국사기』에서 빼버렸습니다. 공자는 “괴력난신(괴이한 것과 용력과 패란과 귀신)에 관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논어』 ‘술이(述而)’)”라고 말했는데, 유학자인 김부식은 이런 공자의 말에 따라 동명성왕의 신이한 사적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해서 『삼국사기』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이규보도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참고했던 책으로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읽을 때 동명성왕의 신이한 사적을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귀(鬼·도깨비)나 환(幻·허깨비)의 이야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규보는 “연구를 거듭한 결과 점점 그 근원에 들어가니, 그제야 환(幻)이 아니라 성(聖)이요, 귀(鬼)가 아니라 신(神)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이것을 시로 쓰고 세상에 펴서 우리나라가 원래 성인지도(聖人之都 ;성인 세운 나라)임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고 저작 동기를 적었습니다. 연구를 깊이 해보니 고구려 시조사를 바라보는 역사의 관점이 달라졌고 그러자 도깨비, 허깨비의 이야기가 아니라 거룩한 사적이고 신령한 이야기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삭제한 부분을 살려서 『동명왕편』을 썼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규보는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이런 내용들을 빼놓은 것을 비평했습니다.

사마천은 『사기』, ‘고조본기’에서 한 고조 유방(劉邦)의 모친 유온이 대택(大澤) 언덕에서 잠잘 때 꿈에 신을 만났고, 교룡(蛟龍)이 그 몸 위에 올라와 유방을 낳았으며, 적제(赤帝)의 아들이라고 썼습니다. 또 유방이 있는 곳의 하늘에는 늘 운기(雲氣)가 서려 있었다는 등의 신이한 이야기를 잔뜩 써 놓았지만 중국의 역대 주석가들은 그 의미를 분석하고 덧붙였지, 신이하다고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김부식이 자국 역사에 공자의 말을 핑계로 신이한 사적을 삭제했습니다. 그 근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중국은 한족(漢族)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중화(中華) 춘추사관으로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김부식은 몸은 고려인이지만 한족(漢族)의 유학자의 시각으로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니 고려인의 몸에 한족(漢族)의 눈을 가진 유학자가 된 것입니다. 이런 김부식과 같은 유학자들의 역사서 영향으로 한민족의 눈으로 우리 역사를 보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난을 두고 '조선 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고조선 시대부터 선도(신선도)사상이 내려왔으며 삼국시대에 불교를 도입하면서 선도와 불교의 융합이 일어났습니다. 선도와 불교의 융합을 보여주는 것이 화랑의 세속오계입니다. 세속오계 중에서 살생유택(殺生有擇 :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 이 조항은 선도사상과 불교사상이 융합된 계율입니다. 그리고 임전무퇴(臨戰無退) : 싸움에 나가서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는 선도의 숭무정신(崇武情神)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우리의 고유사상인 선도와 외래사상인 불교와의 융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내부 분열로 망하게 됩니다. 신라는 선도와 불교의 융합을 잘 이루어서 국민통합이 되어 고구려와 백제를 이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삼국시대까지 선도사상이 불교와 융합된 형태로 이어오다가 고려 묘청의 난 이후로 선도사상이 유학사상에 밀려서 힘을 잃게 되면서 선도의 관점으로 보는 역사서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시기에 이규보는 김부식의 유학사관에 반발하며 선도사관이 들어있는 『동명왕편』을 저술했습니다.

역사를 보는 눈이 왜곡된 상태로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자국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타국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일이 일상화되었습니다. 2012년부터 고등학생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 명칭이 국사에서 한국사로 변경된 사건이 대표적으로 자국의 관점을 잃어버리고 타국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국사라고 해야 맞고 외국 사람의 관점으로 보면 한국사라고 해야 맞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국사를 한국사로 변경해도 무관심하게 여기는 세태를 보면 우리나라는 역사를 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다시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우리나라 관점에서 역사를 보려면 우리 관점인 선도사관에 입각하여 쓴 역사서를 보고 관점을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 관점으로 쓴 역사서로 『환단고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주류 사학계가 위서라며 금기시해서 학자들이 언급하고 싶어도 사이비 학자로 찍힐까 두려워 언급하기를 꺼리는 책입니다. 그러나 최근 『유학 오천년』(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을 정리해 5권의 책을 펴낸 대표적인 동양철학자 중 한 명으로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장과 대학원장을 지낸 이기동(71) 교수는 2019년에 『환단고기』 해설서를 펴내면서 『환단고기』가 위서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기동 교수는 2022년 9월 28일자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도 남의 말만 듣고 금기시하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환단고기』를 제자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우연히 함께 읽으면서, 그동안 수십년 간 학자로서 풀리지 않던 유학과 철학의 의문들이 단박에 해소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고백합니다.『환단고기』를 그동안 철학자가 감정하지 않았기에 위서 논쟁이 있었는데 철학자가 철학적으로 보면 위서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추사 김정희 서책이 새로 발견되어서 종이 감정사가 보고 추사 때 종이나 먹이 아니니 가짜라고 판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예가가 보니 추사 글씨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상세히 살피니 쥐가 갉아먹은 부분을 후대에 덧대기도 했다는 것이 판명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추사 글씨를 감정할 때는 종이나 먹 감정사 뿐만 아니라 서예가의 감정이 필수적이듯이 『환단고기』감정에 철학자가 참여하면 위서인지 아닌지를 철학적으로 보면 금방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철학적으로 볼 때 위서가 될 수 없는 것이 주자학의 핵심이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을 성이라 함)인데 『환단고기』에서는 하늘의 마음을 성이라 하고, 이것은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늘은 만물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주자학에서는 성(性)은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것이라고 하는데 『환단고기』에서는 성(性)은 하늘마음으로 만물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성(性)이라고 합니다. 중국 유학과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성(性)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학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중용』 1장 첫 귀절에 나오는 성(性)의 개념을 이렇게 완전히 다르게 말을 하는 것은 중국과는 다른 우리의 고유한 철학사상이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기동 교수는 『환단고기』에서 너무나 놀라운 철학들을 계속 발견하게 되면서, 왜 남의 말만 듣고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가 학자로서 참회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환단고기』에 있는 철학을 보고 나서는 한국인이 더 위대하게 보이고 ‘이런 위대한 철학을 가진 민족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하며 현대 지구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철학이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고려 묘청의 난 이후로 우리 관점으로 보는 역사관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동안 남의 관점으로 보는 역사관에서 벗어나서 우리 관점을 회복하려면 선도사관으로 기록된 『환단고기』와 『부도지』같은 서적을 통해 본래 우리의 시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회복된 선도사관으로 우리나라 역사를 재해석하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