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동독 국민의 자율적 결정에 따라 서독 체제로의 편입을 희망하고 서독이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한 사례에 속합니다.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의 결과 동서 냉전 체제가 와해됐고, 이에 따라 동유럽권 국가들이 변화를 모색하면서 동독 주민들도 개혁을 요구했습니다. 동독 정권은 지도층 교체로 대처했지만, 개혁과 통일을 염원하는 동독 주민들의 꾸준한 민주화 운동은 계속 이어졌고 급기야 1989년 11월 9일 동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습니다.

서독은 1969년 브란트 수상이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 동독과의 교류 협력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1972년에는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해 경제, 과학·기술, 문화, 통신, 스포츠, 환경보호 분야의 교류에 합의하고 각각 상주대표부를 설치했습니다. 그 결과 1973~1985년 사이 서독을 방문하는 동독 주민은 매년 130만~150만 명에 달했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기 직전 해인 1988년에는 거의 700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이렇게 서독과 동독의 활발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통일은 갑작스럽게 찾아왔습니다. 1989년 9월 여론 조사에서 서독 주민들의 56%가 "통일은 30년 내에 불가능할 것"이라고 응답했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 11월 9일 “국외 이주에 대해서 동서독 국경 혹은 동서 베를린의 모든 검문소를 사용할 수 있다”는 동독의 기자회견이 동독 정부가 베를린 장벽을 즉시 철거한다고 잘못 알아들은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독일 통일은 30년 내에 불가능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지 불과 2개월이 지나 독일은 통일이 되었습니다.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을 분할 점령했던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제외한 승전국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통일독일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될 것을 경계하면서 독일의 통일에 반대했습니다. 특히 소련은 독일이 통일될 경우 NATO의 병력이 동쪽으로 진출하면서 자국의 안보를 저해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서독은 독일 통일에 찬성하고 있던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점차 다른 국가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독일 통일사례를 보면 독일 통일에 영향을 끼친 4가지가 있었습니다.

1.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의 동의가 있었습니다.

2. 서독과 동독과의 교류 협력으로 서독을 방문하는 동독 주민이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3. 개혁과 통일을 염원하는 동독 주민들의 꾸준한 민주화 운동이 있었습니다.

4. 동독 정부가 베를린 장벽을 즉시 철거한다고 잘못 알아들은 이탈리아 기자의 오보가 있었습니다.

독일 통일 사례처럼 한반도 통일도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독일 사례에 비추어 보아 한반도 통일 시나리오를 가상으로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은 3가지 일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1.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2. 남한과 북한과의 교류 협력으로 남한을 방문하는 북한 주민이 매년 130만~150만 명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3. 개혁과 통일을 염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꾸준한 민주화 운동이 있어야 합니다.

첫 번째 조건부터 살펴보면 실제 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남북한 간의 통일 협상이 이뤄진다면 중국은 반대할 것입니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중국은 북한이 아닌 통일 한국의 접경국이 될 것입니다. 북한보다는 경제적으로 훨씬 발전되어 있고, 미국과 우방국인 통일 한국은 중국에게는 경계해야 할 국가가 하나 더 생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통일 한국의 군사력 또한 중국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국가보다도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보다는 미국이 한반도 통일에는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일 한국이 된다는 것은 미국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인 북한과의 대립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으며, 한반도를 통해서 중국을 견제하는데 더욱 수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통일한국이 되면 강력한 국력을 가진 나라가 이웃에 있게 되므로 반대하겠지만 미국이 통일한국을 지지하고 한국이 설득을 잘하면 일본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러시아는 소극적으로 반대할 가능성이 높으나 미국과 일본이 동의하고 한국이 설득을 잘하면 러시아도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조건을 살펴보면 남북한 교류 협력이 되려면 북한의 비핵화가 선결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조건을 살펴보면 개혁과 통일을 염원하는 북한 주민들의 꾸준한 민주화 운동이 있으려면 북한 김정은 정권이 무너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첫 번째 조건에서 중국이 반대하는 한 더 이상 진전이 안 되므로 중국이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2012년 중국 경제 성장률은 7.9%에 달했지만, 2022년 상반기 중국 성장률은 2.5%로 급락했습니다. 2022년 성장률 목표치는 약 5.5%이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3%에도 못 미칠 전망입니다. 특히 그동안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25%를 차지해온 부동산 관련 산업이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제로 코로나 방역정책으로 인한 성장률 하락과 부동산 경기 급락으로 중국 경제 버블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중국의 더딘 경제 성장은 부유층보다 빈곤층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결국 민심 폭발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중국공산당은 높은 경제성장률로 일당 독재의 정통성으로 삼고 정치적 자유 억압에 대한 불만을 인내하게 하여 안정적인 독재 체제 유지가 가능했는데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면 이러한 안정적이었던 독재가 붕괴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1989년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 인민과 중국 공산당의 암묵적 컨센서스는 "정치적 자유를 유보하고 정치 안정과 경제 성장 정책에 협력하면 공산당은 샤오캉(小康: 모든 인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을 약속한다"였습니다. 그런데 공산당이 약속한 샤오캉 사회 실현이 멀어지는(중국의 빈부격차는 이미 미국을 추월함)상황에서 경제 성장률이 추락하고 빈곤율과 실업률마저 급등하면 인민들의 불만이 높아져 공산당 체제 안위가 위협받게 됩니다.

미국은 1979년 중국과의 수교 이후 신장위구르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나 2017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미중패권전쟁이 시작되면서 미국과 유럽이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로 압박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위기로 인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신장위구르의 독립 열망을 미국이 은밀히 지원해 줘서 위구르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면 티벳, 홍콩, 네이멍구(몽골)에서도 독립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미국이 2021년에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것도 위구르가 독립운동을 할 때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지도부가 위구르 무슬림 세력을 도울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만약에 중국이 경제위기로 천안문 사태와 같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인민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위구르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나서 티벳, 홍콩, 네이멍구(몽골)로 확산되면 중국은 소련 공산당이 붕괴한 것처럼 중국 일당 독재 공산당이 붕괴되어 중국은 분열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 시기는 문명 전환기입니다. 문명의 전환은 새로운 문명이 일어나거나 기존의 문명 간에 충돌이 발생하여 약한 문명은 소멸하고 강한 문명이 살아남는 현상입니다. 세계는 지금 민주주의를 앞세운 미국·유럽의 서구 문명과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탈 미국화의 문명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자본주의 문명을 이끌어 온 미국이 중국을 시장경제로 편입시켰지만, 사회주의 문명체제를 가진 중국이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세계 패권 질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 미국은 중국을 분열시켜 힘을 빼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삼국지연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무릇 천하의 대세란 나뉜 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되면 틀림없이 다시 나뉘는 법이다."(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

중국 역사에서 통일왕조인 수·당 시기에 우리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했으며, 중국 역사의 분열기인 5대 10국, 북송, 금, 요 시기에 우리는 고려 시대였습니다. 이처럼 한반도 세력들은 중국이 분열될 때 세력이 강해졌고 중국이 통일될 때 세력이 약해졌습니다.

만약에 중국이 공산당 붕괴로 분열된다면 북한 김정은 정권도 무너지게 되고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면 북한의 비핵화도 진행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위에서 열거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동의, 남한과 북한과의 교류 협력, 북한 주민들의 민주화 운동, 이상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출 수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이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한 한반도 통일은 어렵고 중국이 분열로 세력이 약해지면 한반도 통일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한반도 통일을 원한다면 독일이 독일 통일에 찬성하고 있던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했듯이 우리도 한반도 통일을 도울 수 있는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