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내평리 길쌈놀이 장면.  문정원/우리소리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공공누리]
화순 내평리 길쌈놀이 장면. 문정원/우리소리박물관 소장. [사진 출처 공공누리]

1998년 박세리 선수가 미국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이후 지금까지 계속 우리나라 여자 골프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세계를 제패하고 있다. 미셸위, 리디아 고 등 해외동포 골프선수들까지 합쳐서 보면 가히 압도적이다. 매우 대견스럽고 나아가 신기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어떤 라디오 방송에서 어느 스포츠 해설가가 주간 스포츠 실적을 소개하는 중에 우리나라 여자 골프선수들이 계속 우승한다면서 그 원인으로 우리나라 여자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을 꼽았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는 가지만 잘 납득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여성의 정신력이 강한 것이 우승 원동력이라면, 왜 골프에서만 내리 우승하고 축구나 테니스 등 다른 종목에서는 우승을 못 하는가.

여성 골프선수들의 우승 배경에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강인한 정신력도 있겠지만, 우리 할머니, 어머니들의 바느질 솜씨가 전승되어 온 것 아닌가 생각한다. 골프는 기본적으로 손으로 하는 운동이고 손의 게임이므로 손 감각이 좋아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바느질을 잘하여 손의 감각이 향상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골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손으로 하는 다른 운동인 양궁 종목을 봐도 그렇다. 여자 양궁이 계속 세계를 제패하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일단 바느질 솜씨를 주목하였지만, 바느질을 우리나라 여성들만 해온 것은 아니기에 바느질과 관련된 우리의 전통문화를 좀 더 알아보고 우리나라 역사 탐험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나라 역사서 《삼국사기》에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 재위 17년에 왕이 6부를 순행할 때 왕비 알영도 그 뒤를 따랐고 백성에게 농상(農桑)을 장려하였다(十七年 王巡撫六部 妃閼英從焉 勸督農桑以盡地利)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농상이란 농사일과 아울러 뽕나무를 가꾸어 누에 치는 일을 말한다. 주목할 부분은 6부 순행과 농상 장려시 왕비가 동행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후술하는 고조선 역사에서의 왕후가 누에치기를 관장하였다는 역사적 사실과 매우 흡사하고 또 관련이 있어 보인다.

또《삼국사기》에 신라 3대왕 유리이사금 재위 9년에 왕이 6부를 정한 후 이를 두 부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이 각각 부내의 여자를 거느려 편을 짜고 패를 나눠 7월 16일부터 날마다 일찍이 대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시작, 을야(밤 10시경)에 파하게 하고,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를 판정하여 진 편이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게 사례하고 이에 가무와 온갖 유희가 일어나니 이를 가배(한가위란 말도 이 가배에서 전래된 것이라 함)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길쌈놀이 풍속으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농사일을 남정네의 일로 여긴 반면, 바느질과 길쌈을 여인네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꼽아왔다.

신라 진평왕 때의 승려 안함로가 지은 《삼성기전》 상편에 “납(納) 비서갑(菲西岬) 하백녀(河伯女) 위후(爲后) 치잠(治蠶)”이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고조선 47세 단군 중 제1세 단군인 단군 왕검이 비세갑(지금의 만주 하얼빈)에 사는 하백의 딸을 왕후로 맞이하여 누에치기를 관장하게 하였다는 의미이다. 놀라운 기록이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전 단군왕검 시대에 이미 누에치기를 시작하였고 그것도 왕후가 직접 누에치기 사업을 관장하였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나라 여성들이 얼마나 바느질과 길쌈에 정성을 기울여 왔는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고려 충선왕 때 문과에 급제, 좌정승을 지낸 행촌 이암이 쓴《단군세기》제1세 단군 단군 왕검 편에도 위와 똑같은 “납 비서갑 하백녀 위후 치잠” 기록이 나온다. 왕후가 직접 누에치기 사업을 관장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준 셈이다.

《삼국사기》의 기록 그리고 《삼성기전》 상편과 《단군세기》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삼국시대뿐 아니라 그 이전 고조선 시대 때부터 누에치기, 길쌈, 바느질을 중시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전통이 오늘날에는 골프와 양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