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고구려비(국보 제205호, 중원고구려비)는 1979년 발견 이후, 교과서에 고구려 장수왕의 한반도 남진 정책을 상징하는 유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 보다 이른 광개토태왕 재위 시기인 영락 7년(397)에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가능성이 큰 과학적 판독 결과가 일반에 공개되었다.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은 지난 28일 충주고구려비 판독문의 정확한 분석을 위해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판독 방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추진한 결과를 담아 도록 형식의 자료집 ‘충주고구려비’를 발간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8일 충주고구려비에 대한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판독 결과를 담아 도록 형식의 자료집 '충주고구려비'를 발간했다. 사진은 자료집 내 충주고구려비. [사진=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은 28일 충주고구려비에 대한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판독 결과를 담아 도록 형식의 자료집 '충주고구려비'를 발간했다. 사진은 자료집 내 충주고구려비.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충주고구려비는 고구려사와 함께 신라와의 관계 등 한국 고대사를 확인할 중요한 사료로 인정되었지만, 비면의 마모가 심해 탁본이나 육안 관찰로 정확한 글자를 읽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로 인해 학계에서는 장수왕(재위 413~491)대 제작설 또는 문자명왕(재위 492~519)대 제작설이 다수설을 차지했으며, 광개토태왕(재위 391~412)대 건립설은 극히 소수의 학자가 주장했다. 그러나 고해상 디지털 사진, 정밀 탁본 그리고 RTI(Reflectance Transformation Imaging; 반사율 변환 이미징) 및 3차원 스캐닝 자료 등 과학적 판독의 최신 성과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최첨단 판독 기술로 충주고구려비 최상단에서 ‘영락7년세재정유’글자 판독

충주고구려비 연구 및 이번 책 발간 책임자인 동북아역사재단 고광의 책임연구위원은 “비석의 전면 최상단 제액題額 부분에서 ‘영락 7년(397) 세재정유 永樂七年歲在丁酉’ 8글자를 확인했다. 광개토태왕의 연호인 ‘영락’7년을 통해 비를 건립한 정확한 연도가 확인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비면의 심한 마모와 관련해 “150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나는 동안 자연적 풍화작용에 의해서거나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의 흔적을 지우는 인위적인 훼손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첨단 과학기술로 판독하게 된 충주고구려비 상단 제액부분.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영락7년 세재정유' 8글자를 확인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첨단 과학기술로 판독하게 된 충주고구려비 상단 제액부분. 건립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영락7년 세재정유' 8글자를 확인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1979년 첫 발견 당시부터 해당 부분에 글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설왕설래하였다. 글자로 인식되는 흔적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가 계속되었다. 고광의 위원은 “이병도 선생은 비문의 글자를 보고 싶은 강한 열망에 꿈속에서 ‘건흥建興’과 ‘4년’이라는 글자가 보였다고 했다.”며 그간 일화를 전했다.

이후 고구려연구회가 2000년, 비 발견 20주년을 맞아 학자들이 4박 5일간 판독작업을 하였으나, 글자의 존재만 확인했을 뿐 내용을 밝혀내지 못한 글자가 연구 방법의 과학적 발전에 의해 40년 간 이어온 학계의 논쟁을 종식할 수 있는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고구려의 한반도 남부로 세력 확장, 기존 학설보다 100년 소급

고광의 책임연구위원은 새롭게 확인한 글자를 광개토태왕비(중국 지린성 지안현)와 천추총(중국 길림성 집안현)의 ‘천추만세영고千秋萬歲永固’명 전돌 등 당대의 글자와 비교 연구했다. 그는 해당 판독연구 결과를 2019년 11월 열린 학술회의와 2020년 12월 발간한 연구 개설서를 통해 발표한 바 있다. 이번 자료집 ‘충주고구려비’를 통해 비문의 과학적 판독 결과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발간된 책에서는 동북아역사재단과 한국고대사학회가 공동 판독안으로 제시한 각각의 글자들에 대해서 디지털 사진, 비면에 부착된 상태로 촬영한 탁본과 이를 배접한 탁본 및 배접하지 않은 탁본, 그리고 RTI와 3차원 스캔 데이터를 다양한 렌더링 기술을 적용하여 가시화한 8종의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판독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1979년 발견 당시의 사진과 탁본, 2000년 고구려연구회에서 제작한 탁본 등을 부록에 수록해 충주고구려비에 대한 종합 자료집으로서의 성격을 띤다.

동북아역사재단 고광의 책임연구위원(오른쪽에서 세번째)이 공주대학교 연구팀과 함께 충주고구려비 3D스캐닝을 하는 모습. [사진=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 고광의 책임연구위원(오른쪽에서 세번째)이 공주대학교 연구팀과 함께 충주고구려비 3D스캐닝을 하는 모습. [사진=동북아역사재단]

고광의 책임연구위원은 “비문 확인을 통해 기존 연구 중 문자명왕 대라는 학설을 기준으로 하면 한반도 남부지역에 대한 고구려의 본격적인 진출시기가 100년 정도 소급된다. 장수왕 이전 광개토태왕 때 이미 한반도 깊숙이 고구려의 세력이 미쳤음을 확인한 획기적인 성과”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그는 “이번 책자 발간으로 학자뿐 아니라 일반인도 볼 수 있도록 했다. 향후 연구자들의 학술적 논증과 합의를 거쳐 충주고구려비의 광개토태왕 건립설이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고광의 책임연구위원은 “고구려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나 유물이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충주고구려비 비문 판독은 고구려사 연구에 있어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금번 동북아역사재단은 충주고구려비 판독 연구를 통해 역사고고학 분야에 첨단 과학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고대 금석문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했다. 재단에서는 “중국에 있는 광개토태왕비, 집안고구려비 등 비석에 대해서도 재단이 집적한 최신 방법을 적용한 연구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고 기대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