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서 한창 봄꽃의 향연이 시작되었으나 서울의 봄은 조금 늦다. 지난 3월 6일 창경궁은 이제 막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조금 쓸쓸한 늦겨울 풍경 속에서 꽃망울이 맺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1~2주가 지나면 아름다운 봄꽃이 화사하게 핀 고궁을 기대할 수 있을 듯 하다.

창경궁 앞 풍경. 한복차림의 관람객들이 보인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앞 풍경. 한복차림의 관람객들이 보인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내 대온실로 가는 길.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내 대온실로 가는 길. [사진=강나리 기자]
천연기념물 백송. 소나무의 일종으로 하얀 껍질이 특징이다. 어릴 때는 초록색이 들어간 푸른빛이다가 나이를 먹으며 차츰 흰 얼룩무늬가 많아진다. 고향은 북경이며 조선의 사진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다 심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천연기념물 백송. 소나무의 일종으로 하얀 껍질이 특징이다. 어릴 때는 초록색이 들어간 푸른빛이다가 나이를 먹으며 차츰 흰 얼룩무늬가 많아진다. 고향은 북경이며 조선의 사진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다 심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청둥오리와 원앙, 두루미가 창경궁의 연못 충당지에서 활기차게 헤엄치고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청둥오리와 원앙, 두루미가 창경궁의 연못 충당지에서 활기차게 헤엄치고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내 대온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내 대온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대온실 앞 소나무.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대온실 앞 소나무. [사진=강나리 기자]
소나무의 가지들이 멋들어지게 휘어져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소나무의 가지들이 멋들어지게 휘어져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대온실 내부를 유치창 너머로 슬쩍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실내관람이 불가하다. [사진=강나리 기자]
대온실 내부를 유치창 너머로 슬쩍 볼 수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으로 실내관람이 불가하다. [사진=강나리 기자]
대온실 앞 홍천조(명자나무)의 붉은 빛이 선연하다. [사진=강나리 기자]
대온실 앞 홍천조(명자나무)의 붉은 빛이 선연하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충당지 주변 팔각칠층석탑.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충당지 주변 팔각칠층석탑. [사진=강나리 기자]
생강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맺혔다. [사진=강나리 기자]
생강나무 가지에 꽃망울이 맺혔다. [사진=강나리 기자]
생강나무 꽃망울. [사진=강나리 기자]
생강나무 꽃망울.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내 자경전 터를 지나면 해시계 앙부일구와 풍기대가 있다. 사진은 앙부일구.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내 자경전 터를 지나면 해시계 앙부일구와 풍기대가 있다. 사진은 앙부일구. [사진=강나리 기자]
통명전 지붕 위 어처구니. [사진=강나리 기자]
통명전 지붕 위 어처구니. [사진=강나리 기자]
지붕 위 어처구니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지붕 사방에 올려져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지붕 위 어처구니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지붕 사방에 올려져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보물 제818호 창경궁 통명전-왕의 침전. [사진=강나리 기자]
보물 제818호 창경궁 통명전.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양화당. 서거정이 이름을 짓고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통명전에서 생활하던 내명부 수장들이 접대공간으로 사용한 건물로 추정되며 철종의 비 철인왕후가 승하한 곳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양화당. 서거정이 이름을 짓고 현판은 순조의 어필이다. 통명전에서 생활하던 내명부 수장들이 접대공간으로 사용한 건물로 추정되며 철종의 비 철인왕후가 승하한 곳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영춘헌. 정조가 영춘헌에서 독서를 즐겼고 이곳에서 돌아가셨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영춘헌. 정조가 영춘헌에서 독서를 즐겼고 이곳에서 돌아가셨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경춘전은 산실청으로로 쓰여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경춘전은 산실청으로로 쓰여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환경전은 왕의 침전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환경전은 왕의 침전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함인정. 인조가 강화도 피신이후 인왕산 아래 있던 인경궁에 있는 함인정을 헐어 창경궁에 옮겨왔다. 1830년 전소되었다가 1833년 다시 중건되었다. 날아갈 듯 펼쳐진 지붕이 인상적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함인정. 인조가 강화도 피신이후 인왕산 아래 있던 인경궁에 있는 함인정을 헐어 창경궁에 옮겨왔다. 1830년 전소되었다가 1833년 다시 중건되었다. 날아갈 듯 펼쳐진 지붕이 인상적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멀리서 바라본 명정전. [사진=강나리 기자]
멀리서 바라본 명정전.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 이용된 명정전.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 이용된 명정전.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명정전 내부의 일월오봉도.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어좌 뒤에 놓였던 병풍. [사진=강나리 기자]
창경궁 명정전 내부의 일월오봉도.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어좌 뒤에 놓였던 병풍. [사진=강나리 기자]
명정전 내부의 천장. [사진=강나리 기자]
명정전 내부의 천장. [사진=강나리 기자]
해가 진 창경궁의 명정문. [사진=강나리 기자]
해가 진 창경궁의 명정문. [사진=강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