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명현의 시와 편지로 만나보는 ‘기묘명현의 꿈과 우정, 그리고 기억’
기묘명현의 시와 편지로 만나보는 ‘기묘명현의 꿈과 우정, 그리고 기억’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0.11.01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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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특별전, 개혁가들의 시와 편지로 보는 벼슬살이와 귀양살이의 고뇌의 기록

기묘명현은 1519년(중종 14) 중종 즉위 이후 정국을 주도한 훈구파와 신진 사림파들의 갈등으로 발발한 기묘사화로 인해 화를 입은 조광조(趙光祖), 김정(金淨), 김구(金絿) 등의 인물들을 말한다. 시대와 불화한 이들은 그 시절 어떻게 살아갔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욱)은 전라북도 남원 순흥안씨 사제당(思齊堂) 종중에서 2010년 기탁한 기묘명현의 시와 편지를 모은 『기묘제현수필』(보물 제1197호)과 『기묘제현수첩』(보물 제1198호)을 중심으로 관련 문헌 자료를 모아 2020년 장서각 특별전 ‘기묘명현의 꿈과 우정, 그리고 기억’을 개최한다.

기묘제현수첩.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기묘제현수첩.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기묘제현수필』은 1518년 사제당 안처순(安處順)이 구례현감으로 부임할 때 24명의 지인이 써준 전별 시문첩이고, 『기묘제현수첩』은 1517년부터 1531년까지 12명의 지인이 안처순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간찰첩이다. 시문과 편지의 작성자는 대부분 기묘명현으로 일컬어지는 일군의 사림이고, 수신자는 공히 안처순이다.

기묘제현수필,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기묘제현수필,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전시는 두 종의 필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안처순과 기묘사림의 교유, 온몸으로 사화(士禍)를 체험한 기묘사림의 일상과 고뇌를 보여주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총 3부로 나누어 꾸몄다.

이 두 종의 필첩을 근간으로 이번 특별전을 마련했다. 한두 종의 전적으로 전시의 골격을 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필첩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안처순과 기묘사림의 교유, 온몸으로 사화(士禍)를 체험한 기묘사림의 일상과 고뇌를 보여주는 것이 이번 전시의 주안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묘사화를 위시하여 기묘사림의 개혁 정책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편 조선 사대부가 지녔던 기묘사림을 향한 추숭은 자연스럽게 두 필첩을 대한 숭모로 이어졌다. 숭모의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문헌들이 출현했는데 이것은 기묘사림의 소환이요 기억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전시 주제를 ‘기묘명현의 꿈과 우정, 그리고 기억’으로 정했다.

제Ⅰ부 ‘기묘명현의 꿈’에서는 기묘사림이 꿈꾸던 도학정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의 추진, 일장춘몽처럼 덧없이 끝난 그들의 최후를 들여다보았는데, 특히 ‘현량과 설행’ 부분에서 제시한 정덕기묘사월 천거별시 문무과방목과 해당 방목을 찍어낸 목판, 그리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복원한 신은윤(辛殷尹) 정국공신교서 등은 주목을 요하는 자료다.

정덕기묘사월 천거별시 문무과방목 목판, 천과방목.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정덕기묘사월 천거별시 문무과방목 목판, 천과방목.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Ⅱ부 ‘기묘명현의 우정’에서는 친필 시와 편지를 최대한 현대 우리말로 번역하여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묘사림의 우정과 연대의식, 벼슬살이와 귀양살이의 실상을 세세히 살펴보되, 필첩 내용과 연동되는 다양한 자료를 함께 보여주었다.

필첩의 주인공이자 기묘명현의 일원인 안처순에 대한 소개도 빠뜨리지 않았고, 필첩 구성과 저자 정보는 일목요연하게 도표로 정리하여 소개했다. 조광조(趙光祖) 시편의 일부와 신광한(申光漢)의 한시를 타인이 가져간 사례들, 남곤(南袞) 한시 수록에 대한 제가(諸家)의 견해 및 기묘명현에게 일종의 동류의식을 느끼던 남곤(南袞)의 입장, 위리안치 공간과 죄인의 일상 등도 흥미롭게 읽힐 것이다. 특히 서슬 퍼런 정국 속에서 안처순이 기묘명현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기록은 첩보전을 방불케 할 정도다.

제Ⅲ부 ‘기묘명현의 기억’에서는 책의 문화사 측면에서 두 필첩을 조망하여, 1601년 두 필첩이 한양에 처음 소개된 후, 두 필첩을 장황하고, 모사본(模寫本 : 원본의 서체를 그대로 베낀 책)을 제작하고, 19세기에 이르러 간본(刊本)과 모각본(模刻本)을 제작한 과정을 문헌을 통해 살펴보았다.

선조 연간에 접어들어 기묘명현에 대한 신원과 복권이 마무리되면서 이들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1601년 한준겸(韓浚謙)이 두 필첩을 한양에 처음 소개하자, 강복성(康復誠)과 이호민(李好閔)의 주도로 국내 최고의 기술자를 동원하여 완정하게 장황했는데 이때 한호(韓濩)가 제첨(題簽) 글씨를 썼다. 당대 사대부들이 두 필첩을 돌려보는 과정에서 동년(同年)이나 혼반(婚班)등 다양한 인적 관계망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모사본(模寫本 : 원본의 서체를 그대로 베낀 책)이 제작되었다. 모사본을 제작한 자들은 서예에 대한 조예와 자부심이 상당한 인물이었는데 한호, 현덕승(玄德升), 이현(李袨), 도경유(都慶兪) 등이다. 아쉬운 점은 주로 개별 문집에 수록된 발문(跋文)을 통해서만 모사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현전하는 모사본은 3종이다. 19세기에 등장한 간본(刊本)과 모각본(模刻本)도 두 필첩의 대중적 확산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모각본의 간행은 최대한 진적(眞蹟)에 가까운 형태로 기묘명현의 심획(心劃)까지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기묘명현의 친필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고 이러한 현상은 시대나 당색을 초월했다.

기묘제현수필, 조광조, 남쪽으로 부임하는 순지를 전송하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기묘제현수필, 조광조, 남쪽으로 부임하는 순지를 전송하다.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번 전시는 전시의 주 자료가 온전히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문헌이고, 텍스트에 투영된 역사적 맥락과 인문학적 코드를 해명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에 ‘보는 방식’에 ‘읽는 방식’을 상당 부분 가미한 독창적인 전시이다.

전시의 도록은 한국학 연구에 직접 활용되는 데 손색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문헌과 유물, 텍스트 원문과 번역문, 각종 도표 등을 풍부하게 수록하였으며, 5편의 논고는 독자와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관람객의 학문적 욕구와 흥미를 동시에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코너를 마련하여 역사적 사건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소개하였고, 여느 전시에서 보기 어려운 유물 자료도 풍부하게 준비하였다.

기묘제현수첩 한준겸 서문.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기묘제현수첩 한준겸 서문.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번 전시는 10월 19일부터 12월 18일까지 열리며, 신종코로나바이러스-19 예방을 위하여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www.aks.ac.kr)을 통해 사전예약제로 관람할 수 있다.

관람 가능시간은 월/수/금 오전(10:00-11:00), 오후(14:00-15:00/ 16:00-17:00)이다. 관람객을 시간당 15명으로 제한한다. 현장에서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통해 QR 체크인을 실시하고, 마스크 미착용 시, 37.5도 이상 발열 및 호흡기 의심증상 발현 시 입장을 제한하여, 안전한 관람환경을 제공한다.

이 전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누리집을 통하여 동영상 및 VR 영상으로도 관람할 수 있다.

○ 전시 홍보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3arIwy97V1A&feature=youtu.be)

○ 온라인 VR 전시관람(https://embed.360vrmuseum.com/showcase/xc7dQu8hm8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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