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자신의 눈과 맞바꾼 우리 글, ‘나랏말싸미’
세종이 자신의 눈과 맞바꾼 우리 글, ‘나랏말싸미’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08.01 0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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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와 관련한 또 하나의 가설

- 영화의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진리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서로를 이단이라 삿대질하며 제 밥그릇만 챙기다 망하는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신하들은 훈민정음 제작을 극렬하게 반대하며 명에 대한 사대와 함께 제작과정에서 불교도인 신미스님(박해일 분)이 주도한 것을 두고, 전대 왕조(고려)가 망한 것이 불교 때문이라는 논리를 전개하며 반대한다. 그러나 세종(송강호 분)은 “공자가 부처를 만났다 해도 이러진 않았을 것”이라며 일갈했다. 신하들은 그로부터 460여 년이 지나 ‘나라가 망한 것은 유교(성리학) 논리에 갇힌 사대부들 때문’이라는 말을 듣게 될 줄 알았을까?

올해로 창제 573년을 맞는 훈민정음, 즉 한글의 탄생에 관한 또 하나의 가설을 따라가는 영화 ‘나랏말싸미’가 지난 24일 개봉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창제한 것으로 알려진 훈민정음(한글) 창제과정에 불교도인 신미스님(박해일 분)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역사에 담지 못한 비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어찌 보면 뜻글자인 한문을 지식의 기반으로 하던 유교학자가 소리글자의 원리를 짧은 기간 찾아냈다는 것보다 소리글자인 산스크리스트 문자나 티벳문자, 파스파 문자 등에 능통했던 학승의 참여가 보다 합리적 추론일 수도 있겠다.

이 영화에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글로 손꼽히는 우리글을 당대에 창제한 세종대왕의 위대함에 앞서 몹시도 간절했음이 드러나 있다. 실제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 세종은 이미 40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오랜 고질병인 소갈증(당뇨)로 인해 급격히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평생 글을 읽어 학문을 정진하던 그에게 시력을 잃는다는 것은 짐작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송강호 분)은 영화 전반을 통해 글과 지식을 독점하며 영원히 권력층으로 남으려는 사대부 신하들과 끊임없이 대립한다. 그 과정에서 기어코 한글을 창제해야만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밝힌다.

영화 초반 일본에서 사신을 파견해 ‘선대 정종이 주기로 약속한 팔만대장경을 달라’며 목숨을 걸고 궐내에서 떼를 쓰다시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의 모티브가 되었을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118권’에 “갑진년에는 일본(日本)에서 사신을 보내어 와서 대장경판(大藏經板)을 청하였다. 국가에서 허락하지 않고 안신(安臣)을 보내어 회례사(回禮使)를 삼고 예물과 불경(佛經) 두어 권을 보내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역사적 기록과 기록되지 않은 일들의 간극을 메우는 상상이 곳곳에 담겨 흥미진진하다.

아울러 이 영화에서는 세종뿐 아니라 소헌왕후(故 전미선 분)의 활약이 대단하다. 훈민정음을 백성들 사이에 뿌리내리게 하기위해 궁녀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사가를 통해 전파하도록 애쓰는 모습이 인상 깊다. “암탉이 울어야 나라가 번성한다. 글을 몰라 친정어머니의 안부조차 묻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새 문자를 익혀 퍼뜨려라.”라고 하는 소헌왕후의 단호함이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속 소헌왕후는 인척의 세를 꺾는다는 이유로 태종에 의해 역적의 딸이 되었고, 수시로 신하들에 의해 탄핵당하는 처지이지만 결코 나약하지 않다. 고 전미선 배우는 현명하게 조언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며 때로 적극적으로 이끄는 강인한 소헌왕후를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

영화 ‘나랏말싸미’에서 전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있다. 각자의 이해와 욕망 때문에 세종과 신미스님도 맞부딪히지만 대의大義을 위해 하나로 단합한다는 것이다. 배우고 익힐 시간과 여유가 없어 문맹과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백성들을 깨우치겠다는 큰 뜻을 함께 이루어가는 모습이다. 여야, 보수와 진보, 지역으로 나뉘어 끝없는 분열과 대립으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세력을 규합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본받을 만한 모습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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