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4세(1638~1715)는 다섯 살에 등극한다. 실권은 전혀 없이 대신들의 권세에 휘둘리며 자란다. 섭정자인 권력자 푸케의 부패와 학정에 대항하여 봉기한 두 번의 반란에 포로가 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왕으로서 수모를 참아가며 가슴속에 살생부를 쌓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직접 통치하게 되자 부패한 권세가들을 숙청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한다. 청년기의 20년을 빠짐없이 매일 두 시간씩 춤을 추는 등 사교계에서도 귀족들의 휘어잡는 능력을 갖추려고 노력한다. 내치가 안정되자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을 침략하면서 땅을 넓혀 간다. 대개 실속은 없었지만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귀족들과 유럽을 압도할 궁전을 파리 근교에 짓도록 명령한다. 늪지대에 대규모 토목건설을 일으켜 만든 것이 베르사유 궁전이다.

베르사이유 궁전. [사진=장영주]
베르사이유 궁전. [사진=장영주]

안팎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바로크풍의 궁전은 곧장 각국의 모델이 된다. '전쟁의 방,' '평화의 방', '거울의 방'에 이르는 화려함의 극치인 인테리어와 5만 평(원래 20만 평)의 정원은 지상에서는 규모나 구조를 알기 어려워 비행기를 타고 조감해야 한다.
그러나 나라는 지나친 공사와 잦은 전쟁으로 점차 재정이 기울어진다. "하나의 왕, 하나의 왕국, 하나의 믿음"에 편향되면서 개신교를 핍박하니 곧 3만 명의 유능한 두뇌가 국외로 빠져나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 손주들의 잇따른 죽음이 계속된다. 74년 뒤 프랑스 대혁명에 의해 증손자 루이16세 부부가 단두대의 칼날 아래 이슬이 되고 부르봉 왕조는 멸망한다. 어찌 됐든 베르사유궁의 주인은 태양왕으로 불리면서 72년간 나라를 통치한다. 68년간 통치한 청나라 황제 강희(1654~1722)와 러시아의 이반 뇌제 등과 비교될 강철 군주이었다.

그러나 그 넓고 화려한 베르사유궁의 심장인 황제의 침대와 일반인의 침대는 냉혹하리만큼 크기가 같았다. 태양도 지는 법이다.

오, 샹젤리제

파리의 세느강 유람선은 에펠탑 바로 아래의 선착장에서 출발하고 돌아온다. 약 한 시간을 오르고 내리면서 유서 깊은 다리들과 건물, 아름다운 조각들을 파노라마로 만나게 된다. 대형 유람선은 전 세계에서 온 천 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고, 크고 작은 유람선 또한 가득하다. 매일매일 그득하니 세느강 자체가 엄청난 동맥이요 관광자원이 아닐 수 없다. 강변에는 군데군데 야외 음악당을 조성하여 밴드도 울리고 쌍쌍이 껴안고 춤을 추니 풍악이 낭자하다. 화가들은 사생하고, 어떤 이는 누워 쉬고, 어떤 화가는 책을 읽고, 또 어떤 화가는 음악을 들으면서 노을과 함께 흐르는 세느 강변에서 하루를 접는다.

샹젤리제의 풍경. 장영주 작.
샹젤리제의 풍경. 장영주 작.

나폴레옹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1863년에 세워진 '에투알 개선문'으로 향한다. 12개의 길이 방사형으로 맞물리는 로터리 중앙에 당당하게 서 있다. 128번의 전쟁에서 나라에 충성을 바친 558명의 장군을 기념한다.

대부분 일방통행인 파리 도로에서 순식간에 내려주고 태워 떠나는 관광버스 기사들의 솜씨가 현란하다. 이곳의 버스는 한참 뒤 다시 출발하려면 차에 부착된 음주측정기에 통과되어야만 시동이 걸린다. 4시간 운전 뒤에는 반드시 45분을 쉬어야 한다.

개선문과 정면으로 통하는 길이 바로 '샹젤리제'거리이다. "오! 샹젤리제,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열 사람, 다 함께 걸어가면 우리 모두 다 친구다. 정답게 모두 다 손잡고 거리로 다함께 걸어가면 모두 다 친구다."

1960년 조 다생(Jou Dassin)이 불러 크게 유행한 '오! 샹젤리제'라는 경쾌하고 산뜻한 노래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뉴욕 맨해튼의 번화가보다 비싼, 당연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임대료의 거리이다. 그럴수록 소지품 주의경보가 자심하다. 여하튼 구경 한 번 잘했네.

뮤슈 그리고 마드모아젤

패션의 나라, 향수의 나라 프랑스의 길거리에서 보는 청춘들은 옷도 화장도 수수했고 애정 표현도 보통이었다. 대신 말이 많고 큰 몸 동작과 목소리, 거리낌 없는 웃음소리는 주변이 시끄럽지만, 활기차게도 한다. 토론과 담소, 포도주와 에스프레소가 넘치는 무성한 교류를 통해 자유와 창의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프랑스인이라는 고유 혈통은 없고 모두 섞여 사는 다문화 사회이다. 화가 샤갈, 모딜리아니, 피카소, 몬드리안, 가수 이브 몽땅, 작가 에밀 졸라, 철학자 마르크스 등등의 내외국인이 모여 융복합된 문화 빅뱅으로 예술의 나라 프랑스가 이루어졌다.

세느강 선착장에서 본 에펠탑. [사진=장영주]
세느강 선착장에서 본 에펠탑. [사진=장영주]

 

그런데! 담배가 문제이다. 많은 수의 남녀가 카페에 앉아서나, 길을 걸으면서도 담배를 피운다. 그들의 담배 냄새는 우리나라나 미국과는 달라 50년 전 우리의 봉초와도 같이 진하고 맵고 역겹다. 자연히 우리나라 여성들보다 피부가 거친 편이다. 하긴 프랑스 여성보다 한국여성이 화장을 두 배나 많이 하고 남자 화장은 세계 1위라고 한다. K-beauty의 실체인가?

그러나 그들 삶의 기층에는 건드리면 안 되는 세 가지 원칙이 확고하다.
첫째, 돈이 없어 학교에 못 가서는 안 된다.
둘째,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서는 안 된다.
셋째, 일 년에 5주는 반드시 쉰다.
1789년부터 5년에 걸친 대혁명을 통해 인류의 개인적 자유를 신장시킨 프랑스인들의 신조이다.

내일은 드디어 자신의 열정으로 자신을 태워버린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러 갈 것이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