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김홍도, <빨래터>, 『김홍도필풍속화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신윤복, <단오풍정>, 『혜원전신첩』, 간송미술관 소장

 갓을 쓴 양반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빨래하는 여인들을 훔쳐본다. 그림 속 양반의 옷에 보이는 미세한 떨림은 훔쳐보기의 긴장감을 더한다.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그림, <빨래터>(사진 좌)의 모습이다.

 신윤복(申潤福, 1858∼?)의 <단오풍정>(사진 우)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반라의 여인들은 목욕을 즐기고 있고 그 위로 어린 승려 둘이 훔쳐보고 있다.

 소중화(小中華)를 꿈꾸던 성리학의 나라. 격조 높은 산수화나 인물화를 방(倣)하는 것이 최고의 예술이던 조선. 그곳에서 서민과 여인들의 삶, 부도덕한 양반과 승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기 시작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신분제의 이완, 18세기 상업의 발달과 도시의 번영은 군자의 나라 조선에 변화를 가져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은 5월 24일 수요일 박물관 대강당에서 펼쳐지는 이태호 교수(명지대)의 ‘토요일 오후, 인문학 정원’에서18∼19세기 조선의 풍속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려낸 김홍도와 신윤복을 만난다.

 당시 조선에는 농업 생산량 증가와 상공업 발달로 사대부가 아니면서도 경제력과 지식을 갖추고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새로운 교양 계층이 등장한다. 실학의 태동, 우리 땅과 삶을 소재로 한 진경산수화의 유행, 당대의 현실을 반영한 판소리 등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풍속화 역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면서 등장하며 문인화 위주였던 화단에 김홍도와 신윤복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간 길은 서로 달랐다. 김홍도는 농촌을 중심으로 서민층의 일상을 잔잔하게 화폭에 담았고 지배층의 취향에 맞는 문인화에도 조예가 있었다. 반면, 신윤복은 19세기 변모하는 도시의 삶을 드러내는데 주력했고 서울의 향락 풍조를 꼬집은 그의 풍자는 폐쇄적인 사대부의 윤리관이나 체면치레의 이중성을 고발한다. 그는 화원출신이라는 봉건사회의 제약 속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고집한 작가의식의 싹을 보여주고 있다.

 공개강좌로 진행되는 ‘토요일 오후, 인문학 정원’은 누구나 별도의 사전 신청 없이 참여할 수 있다. 2월부터 11월까지 매달 넷째 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진행되며 수강료는 무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