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소장 신윤복의 미인도. 오는 10월16일~30일 가을 개관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사진=간송70호>
갸름한 얼굴선에 섬세한 이목구비와 정갈하게 얹은 트레머리, 연미색 삼회장저고리와 풍성한 옥색 치마를 입은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 비단 위에 여인의 마음조차 섬세하게 표현해낸 걸작 중의 걸작으로 간송 선생이 이 땅에 남긴 보물이다.

손이 귀한 무관 집안에서 태어난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은 20대에 이미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아 조선 40대 거부 중 하나였다. 그 재산으로 평생 교육사업을 지원하고 우리 문화를 지키는 것이 민족혼을 수호하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방대한 우리의 보고(寶庫)를 모으고 되찾았다. 그가 전 재산을 바쳐 문화재를 지킨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일본강점기 동안 조선총독부와 일본인 골동품 수집상, 그리고 고분을 파헤친 도굴꾼에 의해 우리 장인의 혼이 담긴 청자 백자와 귀중한 서책, 서화들이 수없이 팔려나갔다. 궁핍한 살림에 미처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 헐값에 팔아넘긴 경우도 허다했다. 일화에는 난과 국화를 돋을 새김한 청화백자(국보 294호)는 시골 아낙네가 나무를 캐다가 나온 것으로 여기에 참기름을 담아 팔았다고 한다. 일본인의 손을 전전하다 간송 선생이 1만원5천원(현재45억 상당)에 구입해 이 땅에 남겼다.

대표적인 청자로 손꼽히는 청자상감운학무늬매병(국보 68호)은 일본인 수집상과의 흥정 끝에 기와집 스무 채, 현 시가로 약 60억 원을 주고 지켰다고 전한다. 그는 골동품을 볼 때 이 땅에 꼭 남아야 하는지 포기해도 좋은지로 판단하였다고 한다. 간송이 없었다면 광복 후 우리는 조상의 혼이 담긴 유물을 외국박물관에서 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간송 전형필선생 20대무렵. <사진=간송70호>
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세운 간송미술관은 훈민정음 해례본 등 국보급 문화재만 1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관은 매년 봄과 가을, 2번 개방되는데 간송 선생의 뜻을 따라 국민 누구나 국보급 문화재를 볼 수 있도록 무료로 개관한다. 오는 10월 16일~30일까지 열리는 가을 전시회의 주제는 ‘풍속인물 대전’이다. 조선의 여러 계층의 일상을 해학적으로 그린 풍속화들과 앞서 말한 아름다운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를 만날 수 있다. 관람문의는 간송미술관 02-762-0442로 하면 된다. 

 

 

 

 

 

 

 

국보294호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 일설에 시골 아낙네가 산나물을 채취하다 발견하여 참기름을 담아 일본인에게 팔았다고 한다. 간송선생이 1만5천원(현재 약45억원)을 들여 이 땅에 남겼다.                   <사진=간송 70호> 

국보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본인 수집상에게서 큰 기와집 20채의 가격으로 구입했다고 전한다.                             <사진=간송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