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 '지하실의 먼저' 포스터. 이미지 일우재단
기획전 '지하실의 먼저' 포스터. 이미지 일우재단

한진그룹 일우재단은 10월 30일부터  기획전 《지하실의 먼지》를  일우스페이스(一宇SPACE)에서 개최한다.  송승은, 임소담, 이연숙, 차혜림 네 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무의식적 기억을 산발적 이미지로 다시 불러내는 조형 실험들을 조명한다. 전시는 인간의 내면 깊숙이 퇴적된 기억의 형상화를 ‘지하실’과 ‘먼지’라는 두 개의 이접으로 제시하며,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무의식의 문을 열어본다.

‘전시 서문’(글 김은영)은 이 전시를 이렇게 소개한다. 

“《지하실의 먼지》는 두 가지 개념의 이접으로 이루어진다. ‘지하실’은 집을 인간 내면과 접맥하는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공간의 시학》(La Poétique de l’Espace)을 단초로 삼는다. 그중 집 안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지하실은 나 자신의 심원과 결부된다. 지하실은 추억을 넘어서는 태곳적 몽상의 자리이기에 그곳에서 기억과 상상은 서로를 심화시킨다. 한편, 게오로그 칸토어(Georg Cantor)의 집합 개념에서 비롯된 ‘먼지’는 무한한 숫자로, 비연속적이고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점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이 점들은 결코 하나의 완결된 전체를 이루지 않으며, 무한한 산개 속에서 각기 다른 가능성을 예고한다. 먼지는 이번 전시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기억과 몽상의 편린으로 자리한다. 따라서 본 전시에서 지하실은 억압된 정서와 잊힌 순간이 퇴적된 무의식의 보관소로, 먼지는 어두운 공간에서 일순간 솟아오르는 무의식의 현현으로 상징된다.” 

임소담, 높은 산, 2018, 캔버스에 유채, 192×145cm. 이미지 일우재단 제공
임소담, 높은 산, 2018, 캔버스에 유채, 192×145cm. 이미지 일우재단 제공

참여 작가 네 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 안의 지하실에 잠들어 있던 먼지를 호출한다. 송승은은 삶의 미시적 기억을 느슨하게 엮어 시간과 존재의 층위가 엇갈리는 그림을 구성한다. 

송승은, 파랑새의 조언, 2025, 캔버스에 유채, 227.3 x 181.8 cm. 이미지 일우재단 제공
송승은, 파랑새의 조언, 2025, 캔버스에 유채, 227.3 x 181.8 cm. 이미지 일우재단 제공

 임소담은 기억을 경유한 감각의 파편이 물질과 신체를 따라 미끄러지도록 하여 출처를 알 수 없는 평면과 조각을 만든다. 

이연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21, 혼합매체, 퍼포먼스, 가변설치, ©대안공간루프. 이미지 일우재단 제공
이연숙,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21, 혼합매체, 퍼포먼스, 가변설치, ©대안공간루프. 이미지 일우재단 제공

이연숙은 인간과 비인간이 공유하는 특정한 장소-기억을 매개하는 설치와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이며, 땅과 시간의 거대함을 불러낸다. 

차혜림은 자전적 서사와 타자의 존재를 뒤섞어 완결을 유예한 장면을 구성함으로써, 개인과 전체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존재한다. 

《지하실의 먼지》는 무의식의 소환을 통해 기억과 감각을 해방하는 전지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잔상들이 다시 빛으로 떠오를 때, 망실의 기억에 저장된 상상의 잔여는 새로운 이미지로 변모한다. 이러한 전환의 순간은 창작자와 관람자 모두에게 매혹적 사건으로 각인된다. 자아의 깊숙한 층위에 저장된 기억을 포착하려는 창작자의 시도는 예술이 작동하는 근원적 이유이자, 그로부터 파생된 이미지는 관람자를 자신의 내면과 호흡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차혜림, 이터널 리턴 블랙, 2024, 혼합매체, 가변크기, ©피비갤러리. 이미지 일우재단 제공
차혜림, 이터널 리턴 블랙, 2024, 혼합매체, 가변크기, ©피비갤러리. 이미지 일우재단 제공

일우스페이스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억과 상상,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다층적 관계를 다루고자 한다. 《지하실의 먼지》는 인간의 내면에 퇴적된 기억들이 예술의 언어로 해방하며, ‘역사가 될 수 없는 이들이 몽상가가 되어 유실된 기억의 조각을 꿰어낸다’는 문장을 현실의 공간 속에 구현한다. 

이 전시는 주체와 타자 모두에게 내부의 먼지를 조용히 들여다보게 하며, 그것이 드넓은 스펙트럼 속에서 부유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전시는 11월 28일까지 서울 중구 대한항공 서소문 빌딩 1층 로비에 있는 일우스페이스(一宇SPACE)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