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부터 봄까지 붉은 꽃과 푸른 잎으로 생명력 넘치는 동백꽃. 사진 Pixabay 이미지
겨울부터 봄까지 붉은 꽃과 푸른 잎으로 생명력 넘치는 동백꽃. 사진 Pixabay 이미지

“고아하고 조촐함은 매화보다 낫고/ 아리따움은 너무 지나칠 정도인가/ 이 꽃이 우리나라에 많으니/ 봉래(蓬萊 신선의 나라)라는 이름이 마땅하도다.”

한겨울 온통 흰 눈 속 적막함 속에서도 붉은 꽃, 푸른 잎으로 강인한 생명력을 보이는 아름다운 동백꽃을 읊은 이 시는 성삼문이 지은 ‘설중동백’이란 한시이다. 조선 세종대 안평대군의 살던 비해당에서 당대 문인들이 읊은 48편의 시 ‘비해당사십팔수’ 중 하나이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9월 ‘우리의 정원식물’로 동백나무(Camellia japoica L.)를 선정했다.

겨울철 애기동백나무. 사진 국립수목원.
겨울철 애기동백나무. 사진 국립수목원.

겨울 정원의 주인공, 동백나무는 9월 초에서 중순 사이에 반그늘 또는 햇빛이 적당히 드는 배수가 잘 되는 토양에 넓고 깊은 구덩이를 만들어 심는다면 올겨울 흰 눈과 붉은 꽃의 대비를 감상할 수 있는 품격있고 특별한 겨울 정원을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와 울릉도, 서해 도서 지역에 자생하던 동백나무의 어린 개체는 화분에 심어 두었다가 혹한기에는 실내로 옮기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꽃이 진 후에는 가지치기를 해주면 이듬해에도 화려한 꽃을 만날 수 있다.

정원에 심기 전에는 흙에 유기질 비료를 섞어 영양을 보강하고, 초기에는 주기적으로 물을 충분히 주다가 이후에는 과습을 피하며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가을 동안 적절한 비료를 더해주면 생육과 개화가 더욱 활발해진다.

차나무과의 동백나무는 붉은 꽃송이채 땅에 떨어지는 특징이 있고, 곤충이 거의 없는 추운 날씨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새가 수정을 해주어 ‘조매화’라고도 불린다. 동박새가 동백꽃 꿀을 먹으며 수분을 해준다.

동백나무의 꽃. 꽃말은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사진 국립수목원.
동백나무의 꽃. 꽃말은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사진 국립수목원.

동백꽃의 꽃말은 ‘그대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애타는 사랑’, ‘겸손한 마음’이라고 한다. 또한, 꽃말에 어울리는 설화도 간직하고 있다.

옛날 어느 섬마을에 금슬이 매우 좋은 부부가 살았는데 하루는 육지에 볼일이 있어 남편이 배를 타고 떠났다. 남편이 약속한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바닷가에서 지나는 배를 보며 애타게 기다렸으나 달이 바뀌고 해가 지나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기다림이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아내는 병들어 눕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간호도 소용없이 아내는 숨을 거두며 “내가 죽거든 남편이 돌아오는 배가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남겼고, 소원대로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 양지바른 곳에 여인을 묻어주었다.

장사를 치르고 돌아오니 집 앞뜰에 흑비둘기떼가 날아와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열흘만 기다리지…. 남편이 온다. 웬수야 열흘만 일찍 오지 열흘만”이라고 들려 기이하게 여겼다.

그날로부터 열흘이 지나 남편은 배를 타고 돌아왔다. 남편은 아내의 무덤으로 달려가 목놓아 울부짖으며 “왜 죽었나? 열흘만 더 참았으면 백년해로할 수 있었을 것을. 웬수로다 웬수로다 저 바다가 웬수로다. 몸이야 갈지라도 넋이야 두고 가소.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아”라고 통곡했다.

매일 아내의 무덤가에서 슬피 울다 돌아간 남편은 어느 날 아내의 무덤에 전에 보지 못하던 조그마한 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고 그 나무에 붉은 꽃이 피어 있었다고 한다.

겨울에 꽃을 피워 곤충 대신 새가 수분을 돕는 동백나무는 '조매화'에 속한다. 사진 국립수목원.
겨울에 꽃을 피워 곤충 대신 새가 수분을 돕는 동백나무는 '조매화'에 속한다. 사진 국립수목원.

이외에도, 남편이 고기 잡으러 간 사이 도둑이 아내를 겁탈하려 하자 여인은 바다로 몸을 던졌는데, 그 여인을 파묻은 자리에서 그 고운 얼굴을 닮은 동백나무가 자랐다는 전설도 내려온다.

한편, 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 망마산에는 충무공 이순신과 연관된 동백나무 이야기가 전한다. 충무공 이순신은 자신의 어머니가 기거하고 있는 송현마을에서 가까운 망마산에 기마병을 조련하려고 치마장(馳馬場)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봉우리 중앙에다 훈련대(訓練臺)도 만들었으나 지금은 기단석만 남아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 기마병의 훈련을 끝내고 망마산을 떠나면서 말채찍을 심으며 ‘이 말채찍이 죽으면 나의 영혼이 죽은 줄 알라.’라는 말을 남겼는데, 동백나무로 깎아 만든 이 말채찍이 죽지 않고 현재의 망마산 꼭대기 동백나무로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

여수 지역에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해 인간의 힘으로써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신이한 전설이 많은데 이 또한,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 가슴에 영웅으로 남은 이순신 장군이 영원히 함께하길 바라는 소망으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