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사상적 균열과 새로운 지적 모색을 촉발한 ‘서학’ 집중 조명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에는 서양의 지식, 사상, 학문이 유입된다. 이는 단순한 서양 지식의 유입을 넘어 기존의 사상 체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지적 모색을 촉발한다. 이렇게 성리학 중심 사회에 지적 긴장과 변화를 일으킨 현상을 역사는 ‘서학(西學)’이라 한다. 이 서학을 조선 지식인들은 어떻게 보고 수용하고 변용하였는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서학(西學)》(김선희 지음)은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에 유입된 서학이라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현상을 탐구한다. 이 책은 한국 사상가의 궤적과 철학적 개념을 탐구하여 우리 안에 잠재한 사유와 문화의 근원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기획한 <사유의 한국사> 교양 총서의 다섯 번째 권이다.
《서학》은 ‘서학(西學)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전근대 동서양의 지적 조우와 전환의 국면들을 살려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다. 우선 이 책에서는 ‘서학’을 “전근대 시기, 기독교 전교를 위해 중국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이 번역을 통해 동아시아에 도입했던 당대 유럽의 신학·철학·자연학과 자연철학·수학·기술·기물과 그 전이에 따른 동아시아의 지적·종교적·사회적·정치적 변용과 그 파장”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하여 기존 서학 연구에서 제시된 정의보다 주체, 범위, 영역, 태도, 시기 등을 확대하고 개방한다.

저자는 조선의 서학 접촉과 변용을 이해하기 위해 대략적으로 시기적 구분을 시도한다.
첫째, 인조 대 정두원으로부터 시작된 서학의 접촉과 이후 시헌력을 도입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이 시도되던 시기. 다시 말해 서학의 지식 중 일부가 관학의 위상으로 도입됨과 동시에 이익 등 개인이 자유롭게 서학서에 접근할 수 있었던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후반까지.
둘째, 자생적 신앙 공동체가 탄생함 이와 동시에 서학 지식을 이론적으로 심화하여 변용하는 차원에 도달했던 시기부터 그에 따른 정치적 긴장이 폭력으로 전환되기까지. 다시 말해 18세기 말 이벽과 이승훈, 정약용의 서학 이해로부터 교옥이 연이어 발생하던 19세기 중반까지.
셋째, 공식적으로 서학서가 금지된 후 최한기, 남병철 등이 개인적 차원에서 서학 지식을 원용하게 된 19세기 초에서 영불연합군에게 북경이 함락된 뒤 개신교 선교사들의 활동이 전달되어 새로운 긴장을 형성하던 20세기 초까지.
이 책은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가 던진 형이상학적 질문에서부터 뉴턴의 과학적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서학의 다양한 결들이 어떻게 조선 유학자들의 손에서 재해석되고 변용되어 새로운 사유의 지평을 열었는지 그 역동적인 과정을 추적한다. 이익, 정약용, 최한기와 같은 거인들의 지적 편력과 이름 없는 백성들의 신앙 공동체 형성, 그리고 이에 맞선 치열한 척사의 논리까지, 서학이라는 창을 통해 조선 후기 지성사의 숨겨진 풍경과 현재적 의미를 탐색한다.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기존 연구가 서학을 단순히 서양 과학기술이나 가톨릭 사상의 전래로 규정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며, 서학이 조선 지성사에 미친 다층적인 영향과 변용 과정을 밝힌다. 이를 위해 먼저 서학 개념의 정의와 범위 설정의 어려움을 논하고, 근대성, 과학, 종교라는 현대적 틀로 서학을 재단하는 것의 문제점을 비판한다. 특히 서양 선교사들의 전교 목적과 실제 조선 지식인들의 수용 양상 사이의 간극에 주목하며, 조선 지식인들이 서학을 자신들의 지적, 사상적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했는지, 즉 수용의 주체성과 능동성을 강조한다.
또한 서학을 ‘보편학’과 ‘분과지식’이라는 틀로 분석하며, 서양 선교사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형이상학적 이념(보편학)과 실제 조선 지식인들이 관심을 보인 개별 지식(분과지식) 사이의 선택적 수용 과정을 설명한다. 마테오 리치를 비롯한 예수회 선교사들의 중국 활동과 조선으로의 서학 전래 과정을 인물과 사건(이수광의《지봉유설》, 정두원과 로드리게스의 만남, 소현세자와 아담 샬의 교류 등)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자명종, 세계지도와 같은 서양 문물이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과 수용 양상을 분석하며, 단순한 기술적 호기심을 넘어 기존의 세계관에 미친 파장을 조명한다.
마지막에는 이익과 성호학파, 홍대용, 박지원, 정약용 등 주요 유학자들의 서학 연구와 지적 네트워크를 추적하고, 이들이 서학의 다양한 분과지식(천문학, 수학, 지리학, 의학 등)을 어떻게 자신들의 학문 체계 안으로 수렴하고 변용했는지 살펴본다. 특히 삼혼설과 같은 서양 영혼론이 조선의 심성론과 만나 일으킨 지적 교착과 변용, 그리고 최한기의 독자적인 기학(氣學) 체계 안에서 서학이 재해석되는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룬다. 아울러 서학이 신앙 공동체 형성으로 이어지면서 발생한 사회적 갈등과 국가적 탄압(신유박해 등), 그리고 이에 맞선 조선 천주교의 자생적 노력과 척사론을 분석하며, 서학이라는 창을 통해 조선 후기 지성사의 역동성과 복잡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이 책이 기존 연구와 가장 다른 것은 서학을 단순한 서양 문물 전래나 종교 전파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조선 후기 지성사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한다는 점이다. 근대성, 과학, 종교라는 현대적 개념의 틀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서학 수용의 주체로서 조선 지식인들의 능동적인 역할과 그들의 사상적 고민을 부각한다. 이는 기존의 서학 연구가 간과했던 서학의 내면화 과정과 조선 지성사의 역동성을 복원하려는 노력이다.
또한 ‘보편학’과 ‘분과지식’이라는 독창적 분석틀을 제시하여 서학을 예수회 선교사들이 전달하려 했던 거시적 이념 체계(보편학)와 실제 조선 지식인들이 관심을 두고 선택적으로 수용한 개별 지식(분과 지식)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이를 통해 서양 선교사들의 의도와 조선 지식인들의 실제 수용 양상 사이의 간극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서학 수용의 복잡한 양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서학 수용에서 역사적, 사상적 문맥에서 어떤 지식을 선별할지, 어떤 체계 아래 배치할지, 다시 말해 일종의 지적 주도권이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있었다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들은 어떤 지식을 어떤 맥락에서 활용할 것인지를 선별했고 특히 개별 지식들을 자신들의 학문적 체계와 범주 안에 재배치했다. 이들에게 서학은 지식 체계 자체를 대체할 이념이나 세계관이 아니라 각론의 일부 즉 선별해서 활용 가능한 지적 자원이자 참조점이었다.”
이 책에서 눈여겨 볼 점 중에 하나가 바로 다층적 접근과 풍부한 사료 활용이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이수광에서 최한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인물군과 다양한 문헌을 아우르며 서학의 여러 국면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유서류(類書類)를 통해 서학 지식이 어떻게 조선 사회에 확산되고 변용되었는지 분석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를 토대로 당파를 넘어선 학자들 간의 지적 교류를 밝히고 서학 지식이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수용을 넘어 일종의‘서학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확산되었음을 보여준다.
서학과 쌍을 이루는 개념이 바로 척사론이다. 저자는 서학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척사론을 단순한 배척이나 반동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것이 서학의 경계면과 외곽을 확인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신후담에서 이항로, 김치진, 이기에 이르기까지 시기별, 계파별 척사론의 다양한 양상과 그 논리를 심층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서학을 둘러싼 지적 긴장의 복합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저자는 17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 서학의 도래로 형성된 현상을 현대적 분과 개념으로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서학의 창으로 조선 후기 지식장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전제라고 강조한다. 서학이 만든 새로운 문과 그 문을 직접 만들어 통과하고자한 이들의 지적 실천과 지향을 설명하지 않고는 조선 후기의 지적 변화와 그 양상드을 유의미하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서학은 자발적인 근대화에 이르지 못하고 외세에 막혀버린 조선의 마지막 장에 대한 단선적이고 결론적인 평가에서 벗어나서 이 시대, 이 지적 과정을 입체적으로 해명하는 하나의 창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향후의 연구는 타자의 사유를 만난 유학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이념과 지적 체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고자 했는지, 어디까지 그 변용과 변화를 수용할 수 있다고 믿었는지를 초점화해서 다각도로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더 나아가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 전체를 연구 범위로 확장해 그 안에서 이루어진 서학의 영향과 파장을 교차적으로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선을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주식의 주체적 검토자나 능동적인 생산자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범위에서 즉 유사하면서도 다른 양상을 보이는 중국, 일본의 사례와 비교하고 검토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후속 연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