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르륵 소리와 함께 노란 머리의 캐내디언 커플이 갤러리 문을 연다. 문화 향유는 그들의 일상인 듯 자기 집 드나들듯 쉽게 무거운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서서 흥미롭게 작품들을 감상한다. 조심스럽게 지켜보던 작가인 내가 이 전시를 한참 즐기던 그들에게 작품 설명을 권하자
”Of course.”
라며 반겼다. 나는 작품 설명을 하면서 빛나는 그들의 호기심과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무척 감동한 듯 한참을 서서 더 관람하다가 정성스레 한글로 방명록을 남기고 갔다. 그 이후에도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문득 그들의 시선에서 한국화 작품이 어떻게 느껴질지가 궁금해졌다. 전시 중에 지도교수님이 방문하셨을 때 한국화의 정의에 대해 짧게 나눈 바 있다. 요즘 대학원생 중에는 유화나 아크릴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한국화 작품들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화의 정의는 현대미술의 하위 분류로 보면 매우 광범위하겠지만, 나는 한국화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담은 주제나 재료를 사용하여 표현하는 작품으로 정의하고 글을 이어가 보려 한다.
지난주에 서울 종로구 서촌 TYA 갤러리에서 진행한 개인전이 막을 내렸다. 3년 반 동안 신진작가로서 중동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미술 분야에서 했던 경험들과 한국에 와서 2주간 개인전을 하며 외국인들의 시선으로 본 한국화를 이 글에 담아본다.
경복궁 바로 옆 갤러리에서의 전시 중 특히 흥미로웠던 점은 방문객 중 외국인의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전시를 관람한 외국인들이 방명록에 남긴 메시지를 읽으며, 마치 외국인 비율이 90퍼센트가 넘는 두바이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국을 여행 중인 외국인들에게 한국화는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갔을까 여전히 낯설고 그들과 다른 문화로 남았을까.
나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절대적일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평범한 일상에서 더 깊이 있는 사고를 거쳐 작업 주제를 찾으려고 한다. 내 작업은 이전부터 천국과 이국적인 풍경들에 대한 그리움으로의 연결점으로 일상 안에 들어온 천국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가장 관람자들에게 관심과 질문을 받았던 것은 내 작업에 새로 등장한 작은 닥종이 인형들이다.

이 아이들은 이번 전시에서는 별명이 ‘천국의 정원사’이다. 임신 12주 차에 뱃속의 7cm밖에 안 되는 아기가 심장이 뛰고 있는 작은 생명이라는 사실이 무척 경이로웠다. 그 후 병원 문을 나서니 내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이 모두 7cm의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로 보였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어머니의 배 속에서 소중히 품어졌던 그 시절을 안 지나쳐 간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자살률이 높은 한국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었다. 외국인들은 이 외에도 다른 작품에 숨어있는 내용이나 사용된 매체에 대한 설명들도 집중해서 들었다. 외국인들에게 도슨트를 자청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전통적인 한국화의 기법보다는 내 이야기로부터 나온 작품에 대한 반응들이었다. 특히 ‘천국의 정원사’라는 작업에 대한 의도를 들은 이들은 그냥 작고 귀여운 인형으로 생각했던 존재가 자신이고 지나가는 학생, 관광객, 할머니 혹은 스쳐 지나가는 배달원일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더 그 인형에 존재감과 동질감을 느끼면서 잠시 웃었던 것 같다.
작품을 관람하는 이들 중에는 미술 전문가, 컬렉터도 있지만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갤러리에 방문한 내·외국인들이 주 관람객이었고 작가의 작품 제작 의도를 들으면서 담겨있는 작품 하나하나의 내용을 알아가는 것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들의 시선에 한국화를 그리는 화가가 다룬 전통 닥종이 재료나 한지, 먹과 같은 한국적인 재료들은 신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전통적인 것만 고수한 작업으로 그들과 소통하려 했다면, 일반 관람객들에게는 그 기법을 넘어선 공감과 이상의 매력을 느끼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외국의 기법을 연구하는 작가들에게는 흥미로웠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깊이 있는 한국인의 정서를 작품에 담았다면 그 자체로 매료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과 공통된 인간으로서의 본질에 대한 고민이 작품에 들어있지 않다면 현대미술계에서 특히 한국 안에서 그들과 소통하는 데 한계점이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끊임없이 좋은 작가와 좋은 작품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작가로서 이번 전시를 마무리하면서 구태여 외국인의 시선을 집중해서 분석하며 글을 남기는 이유는, 외국인의 시선에서 보는 한국화의 경쟁력을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오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모이는 UAE에서 작가로 활동했던 경험과 한국에 와서 개인전을 열면서 했던 경험과 비교했을 때 질적인 면에 비해서 훨씬 관심과 반응이 외국에서 뜨거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 같은 이유가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또한 그 물건이 갖기 어려운 것이라면 더욱 그것은 귀하게 여겨진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작업에서 내가 그토록 그리워서 UAE에서 그렸던 한국의 자연을 내려놓고, 한국에 와서는 UAE의 자연 풍경들을 꺼내어 그리기 시작한 이유와도 비슷한 것 같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의 본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3년 반 동안 거주했던 UAE의 미술시장에서 한지와 비단 위에 먹을 올렸던 내 작업은 그 재료 자체만으로도 경쟁력이 있었고, 그들에게 독특하고 매력적인 시도로 다가갔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작품성을 이야기할 수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화의 경쟁력은 외국에서 더 강력하고 더 쉽게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한국화 매체를 사용하고,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작업을 하는 작가 중 한국에서만 활동하는 작가들은 경쟁자들 사이에서 좌절하거나 예술계의 높은 장벽을 경험하고, 사랑하는 작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기가 쉬울 것 같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의 작업에 깊이가 더해지고, 작품성이 좋다는 가정과 함께 외국으로의 진출을 덧붙인다면 분명히 그 작품들은 지금보다 더 귀한 대우와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감히 확신한다.
■김미현 작가
일상에 스며든 천국을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 김미현은 회화(한국화)로 대학을 졸업한 후 석사과정에서 미술 치료(논문: 자폐성장애아 짝 미술치료의 효과)를 전공하였다. 미술치료사로 7년간 근무하면서 만난 다양한 내담자들과 함께한 경험을 통한 힘의 권력을 넘어선 ‘관계’로부터 오는 ‘Heaven’의 의미를 작업에 담아냈다. 미술치료사로서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The times of heaven”이라는 주제로 2020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평면, 설치 작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주로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활동하였다. 2021년 두바이의 DIFC, Down town에 있는 ‘Legacy art gallery’에 작가의 두 평면 작품이 입점하였고, 그로부터 약 2년간 전속 계약 작가로 활동하였다. 갤러리 주관 Art in the park(INDEX tower, Trade center, Dubai)에서 갤러리 대표 작가로 광장에서 1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22년에는 UAE대학교에서 초대 솔로 전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UAE Abu Dhabi Weaehouse421 museum에서 The art circle prize에 선정되어 그룹전, UAE Ras Al Khaimah Art festival에서 독방에 설치 작업을 하였다. 이때 작업했던 설치 작업 중 일부인 ‘Mother; nature’ 은 Ras Al Khaimah의 왕비인 Hana bint juma al Majidd의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2023년에는 Dubai culture(두바이 문화정부기관)이 진행한 SIKKA Art Festival 공모에 유일한 한국인 작가로 당선되어 설치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또한 UAE 최초로 설립된 한국미술협회KUACA(UAE Korean art association) 부회장으로 2022년 ~ 2023년 일했다.
작가는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위로를 전하는 목적과 사명 의식을 갖고 작업에 임하며, 지속적으로 한국뿐 아니라 외국에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