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사자모양 향로(국립중앙박물관). 고려 12세기. 높이 21.2cm. 국보. 사진 강나리 기자.
청자 사자모양 향로(국립중앙박물관). 고려 12세기. 높이 21.2cm. 국보. 사진 강나리 기자.

고려청자는 아름다운 비색과 놀랍도록 빼어난 형태미를 갖춘 수작들이다. 하지만 그 인식에 머물면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문화유산일 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3월 3일까지 전시하는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전에 전시된 274점 작품도 빠르게 스치듯 지나면 세련되고 뛰어나지만 비슷한 작품이 반복되는 듯해 큰 감흥을 얻기 어렵다.

특별히 상형청자 중 자신만의 ‘최애’를 찾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800~1천 년의 시간을 넘어 고려의 장인이 끊임없이 노력해 표현하고자 한 자연과 생명력을 만나게 된다. 완벽함이 아니라 그만의 창의력을 마주하게 되면 장인의 깊은 속마음을 알아채는 뜻밖의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넘사벽’이라 불릴만한 상형 청자들 사이에 너무나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인 상형 청자가 있다. 충남 태안의 대섬에서 발견된 ‘청자 사자모양 향로’.

청자 사자모양 향로(국립해양유산연구소). 보물. 고려 12세기. 높이 13.9cm. 사진 강나리 기자.
청자 사자모양 향로(국립해양유산연구소). 보물. 고려 12세기. 높이 13.9cm. 사진 강나리 기자.
사방에서 바라볼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사방에서 바라볼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매우 잘생긴 사자 형상만 보다가 우락부락하면서도 납작한 얼굴, 다부진 몸을 가진 사자를 만났다. 표정은 사나운데 두툼한 목 아래 큰 방울을 달고, 야무지게 두 앞발로 뒷발 위에 올려진 구슬 두개를 움켜쥔 모습이 못생겼는데 웃음 날만큼 귀엽다.

털과 갈기는 음각으로 표현해 과감한 생략과 과장이 인상적이다. 국보로 지정된 사자모양 청자와는 거리가 멀고, 신안선에서 발견된 사자모양 연적과도 전혀 다르다.

청자 사자모양 연적(국립중앙박물관) 고려 13~14세기, 전라남도 신안선.
청자 사자모양 연적(국립중앙박물관) 고려 13~14세기, 전라남도 신안선.

이 개성 있는 사자 모양 향로는 전남 강진에서 개경으로 보내는 운송선에 태워져 바닷길로 가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 침몰한 것이다. 사자의 몸 곳곳이 갈라져 향을 피웠을 때 연기가 새어나갈 수 있는데도 개경으로 옮겨지고 있던 걸로 보아 상형 청자가 얼마나 귀한 물품이었는지 짐작게 한다.

이외에도 사람의 모습과 종교적 상상을 더해 세밀하게 표현한 상형청자들도 만날 수 있다.

청자 사람모양 주자(국립중앙박물관) 고려 13세기. 사진 강나리 기자.
청자 사람모양 주자(국립중앙박물관) 고려 13세기. 사진 강나리 기자.

머리에 쓴 보관 앞면 중앙에는 새 장식이 있고 두 손으로 받쳐 그릇에 복숭아 7개가 담겨 있다. 복숭아는 곤륜산에 거주하며 불로장생의 과일로 선도仙桃(선경에 있는 복숭아)를 준다는 서왕모, 또는 서왕모와 관련된 도교 인물로 추정한다.

청자 새를 탄 사람모양 주자(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고려 12~13세기. 1964년 러셀 타이슨 기증. 사진 강나리 기자.
청자 새를 탄 사람모양 주자(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고려 12~13세기. 1964년 러셀 타이슨 기증. 사진 강나리 기자.

도교의 인물이 새를 타고 무언가를 바치는 모습이다. 손에 든 그릇 구멍에 액체를 넣고 앞쪽 새 부리로 따르는 구조이다. 새는 풍선처럼 부푼 몸과 머리 위의 볏, 그리고 긴 꼬리가 특징인데 긴 꼬리깃으로 등에 탄 사람을 단단히 받치고 있다. 이 새는 상서로운 새 봉황이나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 난鸞새라고 추정된다.

청자 나한상 조각. 사진 강나리 기자.
청자 나한상 조각. 사진 강나리 기자.

물론 투박하고 못생겼으나 개성이 강한 인물을 표현한 청자들도 있다. 국내외 박물관과 개인이 소장해 쉽게 만나지 못할 작품까지 한 자리에 모인 이번 특별전시에서 나만의 ‘최애’를 한 번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