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헌 한문화학원 이사장, 국학원 설립자
이승헌 한문화학원 이사장, 국학원 설립자

뉴스 보기가 피곤한 요즘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중에서도 가장 시끄러운 정치, 경제, 교육 문제의 결론은 언제나 시스템과 제도였다. 수 세기에 걸친 근대화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왜 시스템과 제도는 수시로 오작동하는 것일까? 역시 시스템이 문제일까, 아니면 그것을 작동시키는 주체가 문제일까?

의아한 것은 90년대에도 80년대에도,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왕조실록만 보아도 인간이 있는 곳에는 재난과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고, 풀뿌리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면 정치가 ‘일상의 축제’가 될 줄로만 알았던 우리는 여전히 여야, 진보 보수와 같은 오래된 담론의 틀에 스스로를 묶어두고 있다. 단 하나의 합의점이 있다면 돈과 명예, 권력 앞에 서면 중앙과 지방, 특권층과 서민, 좌와 우의 구별이 무색해진다는 것이다. 이 참을 수 없는 욕망의 정체를 알아야 인간 스스로를 파괴하는 역사를 뒤집을 수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예측할 수 있는 미래는 ‘공멸’뿐 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불평과 불만족은 끝날 줄 모른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현재 삶에 대한 만족도는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행복지수’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확실한 것은 국민 총소득과 행복지수는 크게 연관이 없고, 때로는 반비례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인류는 돈과 명예, 권력으로 궁극의 행복을 사려는 욕망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가히 마약보다 심각한 중독상태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수도 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왔다. 60세가 지난 이후에는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찾은 답은 ‘우리가 모두 성인(聖人)이 되자’는 것이다. 성인이라니? 예수, 부처, 공자와 같은 성인이 맞다. 성인은 섬기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은 우리가 모두 성인이 되자는 선언과도 같다. 돈, 명예, 권력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인간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공생의 삶을 추구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성인의 삶이다.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세워진 천손(天孫) 한민족은 성인의 의식을 전 세계로 알려야 하는 운명적인 리더일지도 모른다.

우리 민족의 고대 경전인 <삼일신고> 신훈(神訓)편에는 ‘강재이뇌(降在爾腦)’라는 문구가 있다. 이것은 ‘이미 너의 뇌 속에 신이 내려와 있다’는 뜻이다. 뇌의 신성이 깨어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고, 인류의 문명사를 바꿀 수도 있다. 성인은 더는 추앙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고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인 것이다.

한 사람의 성인이 인류사를 바꾼 예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정규 교육이라고는 초등학교 2학년이 전부였지만 번개에서 전기를 발견해 과학의 르네상스맨으로, 군주에게서 권위를 빼앗아 민주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사람. 미국의 100달러 지폐에 얼굴이 새겨져 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바로 그이다. 프랭클린은 미국 최고의 과학자, 발명가, 외교관, 저술가였다. 그에게 가장 주목해야 하는 점은 그의 모든 행보가 ‘공익’에 맞추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프랭클린이 발명한 수많은 것 중에 가장 흥미롭고 끊임없이 재창조된 것은 바로 그 자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의 삶이 보여준 것은 세상을 바꾸는 성인의 파워와 영향력이었다. 우리도 그와 같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성인이 되는 것이 가능할 뿐 아니라,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개인의 영적 성장을 위한 정보와 자원이 소수에게 한정되어 있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누구에게나 그 기회가 열려있다. 성인이 되겠다는 선택을 하기만 하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고, 인간으로서의 최고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개인의 삶과 세상, 나아가 인류 문명사를 바꿀 힘은 이성이나 지식, 기술에 있지 않다. 그것이 지금까지는 물질문명의 발전을 이끌어왔지만, 그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되었다. 우리는 지식이나 기술로 치면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희망은 인성을 회복한 인류의 신성, 깨어있는 의식이 가져다 주는 지혜와 통찰에 있다.

이 시대의 성인은 자신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홍익’을 위해 쓰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공생의 지구를 상상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선택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성인이다. 그런 사람이 성인이라면 누구나 해볼 만하지 않은가. 그런 성인은 많을수록 좋다. 우리는 지금 문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공멸하느냐 공생하느냐의 기로에서 지구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한두 명의 성인이 아닌 수천, 수억 명의 성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명상하는 순간, 당신도 즉각적으로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원래부터 홍익의 DNA를 가진 성인이라는 것을.

 

이승헌

한문화학원 이사장, 국학원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