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불안하고 고독한 청춘의 화신이자 전후 시대의 황폐한 정신세계를 체현한 작가로 알려졌다. 우리나라 독자에게 특히 친숙한 일본 작가로, 그의 대표작 《인간 실격》, 《사양》 등이 여전히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다자이의 작품을 찾는 국내 독자들의 열기에 일본 언론도 의아해한다. 한국 독자들이 다자이 작품의 무엇에 열광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다자이의 작품 거의 대부분 번역되었지만, 정작 작가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산문은 이곳저곳 흩어져 소개되어 왔을 뿐, 일목요연하게 한 권으로 묶여 국내에서 나온 적이 드물었다. 이번에 민음사가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과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산문 46편을 한데 엮어 《마음의 왕자》를 쏜살 문고로 출간하였다.

민음사가 출간한 《마음의 왕자》는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인생을 초기(1933)부터 최후(1948)까지 톺아볼 수 있도록 결정적 작품만을 연대별로 엄선하여 수록한 산문집. 생활과 문학에 혼신을 다하는 ‘인간’ 다자이 오사무의 맨얼굴, 날것 그대로의 생생한 목소리를 체험할 수 있다. 그러니 그동안 다자이에게 붙어 있던 ‘데카당스(퇴폐주의)’라는 꼬리표는 잠시 떼어두자.
《마음의 왕자》는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 역정을 따라가듯, 그가 본격적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한 1933년부터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오른 1935년, 파비날 중독에 시달리면서도 첫 작품집 《만년》을 출간한 1936년, 여러 걸작을 연이어 써낸 1938년에서 1940년대 초반, 그리고 대표작 《사양》(1947)과 《인간 실격》을 발표하고 스스로 생를 마감한 1948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문학적 발자취뿐만 아니라 인생의 결정적 순간들 역시 한눈에 펼쳐 보인다.
다자이는 각각의 산문을 통해 그 어느 작품에서보다 더 솔직하게, 먼 고향에서 대도시 도쿄로 상경한 ‘시골뜨기’의 불안, ‘부잣집 도련님’으로서의 부채감, 낯선 이를 두려워하면서도 한없이 그리워하는 기묘한 애정, 죽고 싶지 않지만 더는 살아갈 수 없는 자의 우수, 작가로서의 긍지와 지조를 지키기 위한 분투, 기성 문단에 대한 혐오와 성공하고자 하는 갈망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을 법한 삶의 고뇌와 취약성, 선택의 기로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양가감정, 애처롭게 요동치는 심경을 타고 오르내리는 우울과 분노를 절절하게 들려준다.
표제작 <마음의 왕자>는 우울의 수렁에서도 항상 천상에 자리한 순수한 빛을 동경하라고 가르친다. 이 작품은 1940년 1월 25일자 게이오대학교 대학 신문 <三田新聞>(428호)에 게재되었다. 제2차 대전이 발발하여 4개월이 지났고, 1년 10개월 후에는 태평양전쟁이 시작되어, 일본이 급속히 전시체제를 갖춰가던 시기에 발표한 산문이다. 이런 때 다자이는 "완전히 노련한 사회인으로 변모하는 것은, 학생에겐 무시무시한 타락이다"라고 강조한다.
학생은 ‘사색의 산책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던 다자이는 그래서 학생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가를 묻고 그 ‘답안’으로 독일 시인 실러(1759~1805)의 <지구의 분배>를 소개한다.
“어떤가요? 학생의 본디 모습이란, 다름 아닌 신의 총아, 이 시인의 모습임이 분명합니다. 지상의 영위에선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다 해도, 그 자유롭고 고귀한 동경심으로 인해, 때로는 신과 함께 살 수도 있는 겁니다.
이 특권을 자각하세요. 이 특권을 자랑으로 여기세요. 언제까지나 그대가 지닐 수 있는 특권이 아닙니다. 아아! 그건 너무나 짧은 기간이지요. 그 시간을 소중히 하세요. 기필코 자신을 더럽혀선 안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육지의 왕자’를 노래하는 동시에, 또한 은근히 ‘마음의 왕자’임을 자부해야만 합니다. 신과 함께하는 시기는 당신 생애에, 지금 단 한 번뿐입니다.” (<마음의 왕자>)
학생에게만 허용된 특권이란 이 시인과 같이 “지상의 영위에선 아무런 자랑거리가 없다 해도, 그 자유롭고 고귀한 동경심으로 인해, 때로는 신과 함께 살 수도 있다”라고 다자이는 주장한다.
1947년 다자이는 <나의 반생(半生)을 이야기한다>라는 글에서 ‘성장과 환경’, ‘문단생활’ ‘선배·좋아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문단에서 ‘괴짜’로 여기는 것에 대한 반론, 술을 마시는 이유, 자신의 성격을 털어놓는다.
이처럼 《마음의 왕자》는 다자이 오사무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