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창경궁관리소는 오는 3월 17일부터 5월 12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오후 1시 30분에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동궐도를 보며 창경궁의 옛 모습을 알아보는 ‘동궐도와 함께하는 창경궁 특별관람’을 운영한다. ‘동궐도(東闕圖)’는 1826년에서 1830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창경궁과 창덕궁의 궁궐 그림이다.

‘동궐도와 함께하는 창경궁 특별관람’ 장면. 이미지 문화재청.
‘동궐도와 함께하는 창경궁 특별관람’ 장면. 이미지 문화재청.

창경궁(昌慶宮)은 원래 1418년(세종 즉위) 세종이 상왕 태종을 위해 창건한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자리이다. 이후 1483년(성종 14) 성종이 세 명의 대비(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이라 하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 영역이었으며 주로 왕실 가족의 생활 공간이었다. 창경궁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 중건하였다. 그후로도 1830년(순조 30)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4년 뒤에 중건하였다.

1907년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창경궁 내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면서 궁궐로서의 모습을 잃기 시작하였다. 1911년에는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마저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어 궁궐이 아닌 공원이 되어 훼손이 심하였다. 광복 후 1983년에 다시 창경궁으로 명칭을 회복한 후, 궁궐 경내에 있던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 궁궐의 모습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창경궁은 남향으로 있는 다른 궁궐과 달리 정문과 정전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번 ‘동궐도와 함께하는 창경궁 특별관람’은 현재 창경궁 내 빈터로 남아있는 왕세자의 공간인 동궁지역과 관원들의 업무 공간인 궐내각사(闕內各司) 터의 군무를 담당했던 도총부(都摠府), 궁궐의 말과 가마 등 탈것들을 관리했던 내사복시(內司僕寺) 등을 동궐도를 직접 보고 전문 문화유산 해설사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며 예전 창경궁의 모습을 알아보는 관람이다.

또한, 창경궁에 남아있는 주요 전각인 명정전, 환경전, 경춘전, 통명전, 양화당의 외전과 내전, 그리고 대일항쟁기에 변형된 내농포 일대 지역을 동궐도 상의 19세기 창경궁과 비교하며 관람하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아울러  산수유, 생강나무, 살구나무, 귀룽나무 등 봄을 맞아 아름답게 피기 시작하는 봄꽃의 향연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창경궁의 정문은 홍화문(弘化門)으로 ‘홍화’는 ‘조화를 넓힌다’, 즉 덕을 행하여 백성을 감화시키고 널리 떨친다는 뜻이다. 홍화문은 창경궁 창건 당시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16년(광해군 8)에 재건하였다. 같은 동궐인 창덕궁의 정문(돈화문)의 앞면이 5칸인데 비해 홍화문은 3칸의 작은 규모로 지었다.

홍화문은 국왕이 직접 백성들을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영조는 1750년(영조 26)에 균역법(均役法)을 시행하기 전 홍화문에 나가 양반과 평민 들을 만나 세금 제도의 개편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또 정조는 1795년(정조 19) 어머니 혜경궁 홍씨(헌경황후)의 회갑을 기념하여 홍화문 밖에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

명정전(明政殿)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으로, ‘명정’은 ‘정사를 밝힌다‘라는 뜻이다. 명정전은 1484년(성종 15)에 지었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6년(광해군 8)에 재건하였으며 현재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은 중층 규모이지만 명정전은 단층으로 지었다. 이는 창경궁이 정치 공간이 아닌 생활 공간으로 지은 궁궐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명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에는 박석을 깔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다.

환경전(歡慶殿)의 ‘환경’은 ‘기쁘고 경사스럽다’라는 뜻으로, 왕이나 왕세자가 생활하던 내전 건물로 보인다. 환경전은 창경궁을 창건할 때 지었다가 임진왜란, 이괄의 난, 순조 연간 대화재 등으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1834년(순조 34)에 재건하였다.

경춘전(景春殿)의 ‘경춘’은 '햇볕 따뜻한 봄'이라는 뜻이다. 처음 1483년(성종 15) 성종이 어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 한씨)를 위해 지은 대비의 침전이었다. 그러나 정조와 헌종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인현왕후 민씨(숙종 두 번째 왕비), 혜경궁 홍씨(정조의 어머니)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보아 대비뿐 아니라 왕비와 왕세자빈의 생활 공간으로도 많이 사용한 듯하다. 정조는 본인의 탄생을 기념해 경춘전 내부에 ‘탄생전(誕生殿)’이라고 친히 쓴 현판을 걸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양화당(養和堂)은 통명전과 함께 내전의 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인조가 병자호란 후 남한산성에서 돌아와 이곳에서 머무르기도 하였으나, 25대 철종의 왕비 철인황후 김씨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양화당은 1830년(순조 30) 화재로 소실된 것을 1834년(순조 34)에 재건한 것이다. ‘양화’는 ‘조화로움을 기른다’라는 뜻이다.

이번 특별관람에서는 참여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문화재재단이 제작한 ‘동궐도 지도’를 기념품으로 제공한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이며, 매회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20명까지 참여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