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례본. 출처 유네스코와 유산 누리집 갈무리
훈민정음 해례본. 출처 유네스코와 유산 누리집 갈무리

577돌을 맞은 한글날, 한국인의 인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단연 세종대왕이다.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한 민족의 말과 글의 기반이 되는 문자를 만든 창제자와 창제 취지, 창제원리 및 창제 과정이 확인된 유일한 글자인 ‘한글(훈민정음)’의 창제자이기 때문이다.

한글의 과학적 우수성 외에도 “우매한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든다”라며 지배계층이 아닌 백성의 불편을 살핀 세종의 뜻이 현대 민주사회에서도 존중받는다.

그런데 한글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인물로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이 있다. 대일항쟁기 우리 문화유산이 일제와 외국인에 의해 이 땅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 재산을 들여 구입하고 보존한 간송 선생의 큰 업적 중 하나가 바로 한글 해례본을 지켜낸 것이다.

대일항쟁기 일제 또는 외국인에게 국외로 반출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아내며 국보급 문화유산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대일항쟁기 일제 또는 외국인에게 국외로 반출되거나 훼손되는 것을 막아내며 국보급 문화유산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선생.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한동안 언론에서 경복궁 등에서 활동하는 문화해설사 중 일부가 “한글의 기역, 니은, 디귿 등 글자가 세종대왕이 볼일을 보던 중 창살 무늬에서 우연히 창제하게 되었다”는 일제의 괴담을 진실인양 설명하는 일이 보도되어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과거 대일항쟁기 일제 어용학자를 중심으로 한글의 기원에 관해 고대 갑골문자 모방, 고전 기원, 몽골 파스파문자 또는 인도 구자라트 문자, 심지어 문고리나 창살 모양 등 다양한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43년 〈훈민정음 해례본〉 수소문하여 찾아내 오늘날까지 전함에 따라 잡다한 학설들이 힘을 잃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한글이 천지인 삼재(三才)의 원리와 태극, 음양오행의 원리를 담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첫음(자음)이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떴으며, 가운데 소리(모음)는 하늘‧땅‧사람을 뜻하는 천지인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점 하나와 선 2개로 모든 모음을 표시했다. 가장 간단한 것으로 매우 복잡한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가히 천재적인 업적이라 할 것이다.

간송 선생은 일제 말기인 1943년 안동에서 해례본이 출현했다는 소식에 달려가 책 거간(중개인)을 불러 당시 큰 기와집 11채의 값을 주고 구입했다. 그는 6.25 한국 전쟁 당시에도 국보급 문화재 중 〈훈민정음 해례본〉 한 권만은 직접 챙겨 피난길에 올랐다고 하니 그 가치에 대한 신념을 확인할 수 있다.

한글의 가치는 창제 당시에도 명확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중 세종 28년(1446) 9월 29일자 기사에서 예조판서 정인지는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다. (중략) 바람 소리, 학의 울음, 닭울음 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가 있다”라고 했다.

그는 “천지(天地)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옛날 사람이 소리로 인하여 글자를 만들어 만물(萬物)의 정(情)을 통하여서, 삼재(三才) 의 도리를 기재하여 뒷세상에서 변경할 수 없게 한 까닭이다”라고 창제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신라 설총의 이두 제작에 관해서도 언급하며 “관부와 민간에서 지금까지 이를 행하고 있지마는 모두 글자를 빌려서 쓰기 때문에 (중략) 언어의 사이에서도 그 만분의 일도 통할 수가 없었다”라며 그동안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된 이유를 명백히 밝힌 것이다.

아울러 해례본을 제작한 이유와 관련하여 “모든 해석과 범례를 지어 그 경개(梗槪, 줄거리)를 서술하여, 이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노력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1%도 되지 않고,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쉽게 익힐 수 있는 글자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훈민정음 해례본〉을 지키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그 원리에 관해 저마다 다른 학설로 의견이 나뉘고, 진정한 과학적 가치와 누구나 익히기 쉽게 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70호이자,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인류가 보존해야 할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