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품에 안은 낙산사 홍련암. 사진 한국관광공사.
동해를 품에 안은 낙산사 홍련암. 사진 한국관광공사.

빼어난 절경과 역사에 기록된 이름난 사람의 일화, 꿈을 이루어준다는 설화가 얽혀 후대에도 사람의 발길이 머무는 명소가 있다.

한국관광공사와 인류문화작가 남민은 한국의 전통사찰을 꿈이 이루어지는 사찰, 신화가 있는 사찰, 한국에서 떠나는 세계불교 여행, 역사를 보는 사찰 총 4가지 주제로 재해석해 스토리텔링 관광명소로 소개한다.

그중 꿈이 이루어지는 사찰은 경기도 안성 칠장사, 강원도 양양 낙산사, 경북 경산 선본사, 경남 남해 보리암 4곳이다.

과거에 두 번 낙제한 박문수, 칠장사 나한전에 찹쌀 조청 유과 올리고 장원급제

서울 인근 경기도 안성시 외곽의 칠장사는 창건 시기가 정확하지 않다. 1014년 고려 혜소국사가 왕명으로 중건했다고 하니 그 이전부터 존재한 천년사찰로, 혜소국사가 7명의 악인을 교화해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유래로 칠장사라 불린다.

많은 소원을 적은 띠가 있는 칠장사 어사 박문수 합격의 다리. 사진 한국관광공사.
많은 소원을 적은 띠가 있는 칠장사 어사 박문수 합격의 다리. 사진 한국관광공사.

암행어사의 전설로 불리는 박문수는 과거에 두 차례 낙방한 후 어머니의 권유로 천안 본가를 떠나 칠장사에 들러 불공을 올리고 한양으로 향했다. 그는 칠장사에서 자신의 식량인 유과를 나한전에 올리고 기도를 한 후 하룻밤 절에서 머물렀다. 꿈에 과거시험 문제를 보았는데 한양 시험장에 도착하니 꿈에 본 문제가 그대로 출제되어 막힘없이 써내려간 박문수가 장원급제를 했다.

이 이야기가 전해져 지금도 수험생과 가족들이 합격 기원을 위해 칠장사를 찾는다. 또한, 박문수가 불공 때 올린 찹쌀 조청 유과가 엿과 함께 오늘날에도 시험 때 먹는 기원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칠장사 나한전으로 오르는 길 왼편으로 ‘어사 박문수 합격 다리’를 조성해 방문객들이 그 기운을 받도록 하고 있다.

(위) 명부전의 궁예 벽화 (아래) 궁예가 10살까지 활을 쏘며 보냈다는 활터. 사진 한국관광공사.
(위) 명부전의 궁예 벽화 (아래) 궁예가 10살까지 활을 쏘며 보냈다는 활터.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외에도 궁예가 10살까지 활쏘기를 하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활터와 명부전 궁예벽화, 의적 임꺽정이 봉안한 것으로 전해지는 ‘꺽정불’, 서로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얽혀 한 몸으로 자란 연리지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의상대사의 관음보살 친견의 꿈 이룬 낙산사, 원효대사의 이야기도 흥미진진

동해바다를 품에 안은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는 서기 671년 의상대사가 세운 사찰로, 관음보살이 설법을 펼치며 항상 머무는 곳을 이르는 보타낙가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창건 유래에는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하고자 한 의상대사의 꿈과 원효대사의 일화가 담겨 있다.

낙산사를 찾은 방문객이 소원을 비는 해수관음상. 사진 한국관광공사.
낙산사를 찾은 방문객이 소원을 비는 해수관음상. 사진 한국관광공사.

이 해변에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말을 들은 의상대사가 간절한 정성으로 7일간 재계를 하고, 다시 7일간 재계를 하자 관음보살이 나타났다. 자신이 앉은 자리에 한 쌍의 대나무가 솟아날 것이니 그곳에 절을 지으라는 말에 의상은 절을 짓고 관음상을 봉안함으로써 소원을 성취했다.

이에 원효대사가 자신도 관음보살을 친견하겠다고 산사를 찾아갔다. 도중에 원효는 흰옷을 입고 벼를 베는 여인을 만나 장난스레 벼를 달라 하니 여인은 익지 않았다고 했다. 발길을 돌려 걷는 길에 빨래하는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니 더러운 물을 떠 주어 원효는 그 물을 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 마셨다. 그때 소나무 위 파랑새가 “불성을 깨닫지 못한 중이로다!”하고 사라졌고, 소나무 아래 신발 한 짝이 떨어져 있었다.

낙산사에 도착한 원효는 관음보살상 아래 아까 본 신발 한 짝이 놓인 것을 보고 그제야 만났던 여인들이 관음보살의 진신임을 깨달았고, 결국 친견하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소망은 남을 따라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간절한 마음으로 성취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강화도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3대 해수관음성지인 낙산사에는 바다와 어우러진 천혜의 풍광, 부처님 진신사리가 출현한 공중사리탑과 천수관음상, 암자 바닥에 뚫린 작은 창으로 파랑새가 들어갔다는 석굴과 파도를 볼 수 있는 홍련암 등이 있다.

학사모를 쓴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이 있는 선본사

선본사는 우리 불교 약사신앙의 대표적인 성지로 창건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신라 소지왕 13년(491년) 극달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전승된다. 선본사 갓바위 부처님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로, 머리 위에 마치 학사모를 쓴 듯하다. 석굴암 불상보다 이른 8세기 초반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학사모를 쓴 선본사 갓바위 부처님. 사진 한국관광공사.
학사모를 쓴 선본사 갓바위 부처님. 사진 한국관광공사.

경북 경산시와 대구광역시 경계에 있는 이곳의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은 질병이 낫거나 시험합격을 하거나 어떤 것이든 한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입소문으로 전국에서 많은 이들이 찾는다. 특히, 대입 수능과 취업 수험생과 그 가족이 많이 온다.

보리암 백일기도로 조선 개국한 이성계,
인도 아유타국 출신 가락국의 허황후가 인도서 모셔온 향나무 관세음보살

푸른 남해가 발아래 펼쳐진 남해군 금산 보리암은 뛰어난 비경을 품어 일출명소로 유명하고, 3대 해수관음성지로 이곳에 가만히 서 있기만해도 좋은 기운을 듬뿍 받는 곳이다.

보리암에서 바라본 남해. 사진 한국관광공사.
보리암에서 바라본 남해. 사진 한국관광공사.

원래 원효대사가 서기 683년 보광산에 창건한 보광사였다. 고려 말 이성계가 성은전에서 100일 기도를 한 후 조선을 개국해 1660년 현종이 태조의 뜻을 받들어 왕실의 원당으로 삼아 사찰 이름을 보리암으로 고치고 왕조를 열어준 산에 대한 보답으로 ‘비단 금錦’자를 하사해 금산이라 했다. 보리는 수행하는 과정 또는 수행해서 얻는 깨달음의 지혜를 뜻한다.

남해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3대 해수관음성지로 손꼽힌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남해 보리암은 양양 낙산사,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3대 해수관음성지로 손꼽힌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그런데 보리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하기 600여 년 전 가락국 김수로왕이 이곳에서 기도하고 대업을 이루었다고 한다. 김수로왕의 부인인 인도 아유타국 출신 허황후가 인도에서 모셔온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보광전의 주불로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