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한양 도성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숭례문의 건축적인 아름다움과 의미, 숭례문의 역사를 해설사의 설명으로 듣는 ‘숭례문 역사이야기’가 5년 만에 재개된다.

10월 22일부터 11월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2시와 3시 2차례에 걸쳐 숭례문의 건축적 아름다움과 의미, 역사를 해설사가 들려주는 '숭례문 역사이야기'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된다. [사진 문화재청]
10월 22일부터 11월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2시와 3시 2차례에 걸쳐 숭례문의 건축적 아름다움과 의미, 역사를 해설사가 들려주는 '숭례문 역사이야기'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된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는 (사) 한국의재발견과 공동으로 오는 10월 22일부터 11월 19일까지 매주 토요일 2시와 3시 2차례씩 숭례문 무료 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매회 35분씩 소요되며, 사전 예약 없이 현장에서 참여하면 된다. 숭례문 정면 광장 입구에서 출발해 숭례문을 통과해 맞은 편에서 종료된다.

숭례문은 1398년(태조 7년) 조선왕조 건국 직후 건립되었으며. 왕조의 건국 당시 자신감이 건축적으로 구현된 건축물이다. 당당하면서도 장중한 절제와 균형의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과 근현대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온 문화유산으로, 서울의 상징이자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축물이다.

하지만 오랜 역사만큼 우리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건립 당시 상량문에는 명나라 태조의 연호인 ‘홍무(洪武)’, 세종 때 수리하면서 명나라 영종의 연호인 ‘정통(正統)’, 성종 때에는 명나라 헌종의 연호인 ‘성화(成化)’를 사용해 사대적인 성향이 반영되었다.

(왼쪽) 일제강점기인 1911년 성 안쪽에 바라본 숭례문. 양팔과 같은 성곽이 사라진 후이다. (오른쪽) 1929년 남쪽에서 바라본 숭례문. [사진 K스피릿 DB]
(왼쪽) 일제강점기인 1911년 성 안쪽에 바라본 숭례문. 양팔과 같은 성곽이 사라진 후이다. (오른쪽) 1929년 남쪽에서 바라본 숭례문. [사진 K스피릿 DB]

을사늑약으로 실질적인 국권을 빼앗기고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1907년에는 숭례문의 양팔과 같은 좌우의 성벽이 허물어지고 섬처럼 고립되었다. 초대 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왕세자를 초청하면서 “일본 왕세자가 허름한 숭례문 밑을 통과할 수 없다”는 이유로 허문 것이다. 아울러 숭례문이 국보1호로 지정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4년이다.

이후 6.25 한국전쟁으로 심하게 훼손되었던 숭례문은 1961년부터 1963년까지 대대적인 해체 수리를 거쳤고, 2008년 2월 10일에는 토지보상 문제에 불만을 품은 방화범에 의한 화재로 불탔다. 5년 3개월의 복구작업을 거쳐 숭례문은 양쪽에 성벽을 갖춘 옛 모습을 회복하고 2013년 5월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숭례문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잘 알려진 듯하지만 그 속에 숨은 역사와 문화적 가치와 건축적 아름다움에 관해 미처 알지 못하는 문화재이다. 토요일 아이와 함께 숭례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 보는 탐방 프로그램으로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