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허가를 받아 고령군이 추진하는 ‘고령 연조리 고분군 제1·2호분 발굴조사’에서 대가야의 제의시설이 발견됐다.

경북 고령은 뛰어난 고대문화를 자랑했던 대가야의 도읍지로, 사적 제61호 고령 주산성 구역의 연조리 고분군은 5~6세기에 조성되었다.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산의 정상부나 사면을 이용해 쌓은 성을 ‘산성’이라 하는데, 주산성은 대가야의 산성이다. 연조리 고분군은 주산성을 중심으로 남쪽에 자리한 지산동 고분군의 하위 고분군으로써, 봉토분 65기와 300여 기의 석곽묘가 분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조리 제의시설 위치 [사진=문화재청]
연조리 제의시설 위치 [사진=문화재청]

올해 7월 19일부터 시작된 제1·2호분의 발굴조사 결과, 고대 무덤인 고분으로 알려졌던 제1호분은 고분이 아닌 대가야의 제의시설祭儀施設임이 확인됐다. 대가야는 서기 42년에 이진아시왕에 의해 세워져 520년간 지속했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았던 고대 국가에서 국가 제사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공동체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제사장은 국가 통치자를 겸했다.

연조리 제의시설(토석제단과 배례공간) [사진=문화재청]
연조리 제의시설(토석제단과 배례공간)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발견된 연조리 제의시설은 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지만, 대가야를 포함한 가야 문화권에서 처음 확인된 제의시설로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대가야국의 국가 제사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중요 자료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의 국가 제사에 대한 기록과 큰 행사에 소를 잡아 제사를 지냈다는 신라비新羅碑 기록으로 볼 때, 대가야에서도 국가 또는 세력 집단의 제사로 유추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실 확인을 위해 제의시설과 관련된 배례공간에 대한 추가 시굴 조사를 하고 있다.

연조리 토석제단 세부현황 [사진=문화재청]
연조리 토석제단 세부현황 [사진=문화재청]

발굴된 제의시설은 외곽에 돌을 쌓고 안쪽에는 흙을 채워 만든 토석제단土石祭壇의 구조로, 남아있는 시설의 전체 규모는 지름 10m, 높이 1~1.4m 정도이다. 아랫단은 지름 10m 정도의 평면 원형으로 북쪽과 서쪽 일부만 비교적 큰 깬돌을 바깥으로 면을 맞추어 안정되게 남아있다. 이는 아래쪽은 원형, 위쪽은 정사각형인 토석제단의 내방외원內方外圓 형태다. 기본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을 반영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울러 함께 출토된 유물의 속성과 특징으로 보아 6세기 전엽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남쪽 토석제단을 파괴하고 조성된 6세기 후엽으로 추정되는 석실의 존재로 보아 신라 병합 후 그 기능이 사라졌을 확률이 높다.

연조리 토석제단 전경 [사진=문화재청]
연조리 토석제단 전경 [사진=문화재청]

한편, 윗단의 북쪽 기단부 아래에는 사각의 구덩이 1기가 확인되었는데, 내부에는 목탄, 태운 흙인 소토를 포함한 점토가 채워져 있었다. 수습된 목탄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서기 400~440년 사이, 즉 5세기 전반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 구덩이는 상부에 조성된 토석제단 설치 이전에 사용되던 비슷한 성격의 제의시설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연조리 고분군에 남겨진 흔적은 기록이 적은 대가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역사 현장이다. 향후 대가야 국가 제사의 실체와 독립 국가로서 체계를 갖추었던 것을 확인하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