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극장 개봉한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는 김철민 감독이 18년간 일본을 오가며 만난 재일조선인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먼저 ‘조선학교’를 습격한 일본인들을 마주한 재일조선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재일조선인 3세 박정임과 박금숙 씨는 아이들을 조선학교에 보낸 학부모로 수년간 감당해야 했던 트라우마를 떨리는 목소리로 전한다. 아홉 살 아이는 연필을 바짝 깎아서 습격 데모 단체에 맞서는 무기로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의 이야기에 일본인들의 혐오의 말과 행동에서 느끼는 공포심이 영화를 통해 그대로 느껴진다.

김철민 감독이 18년간 일본을 오가며 만난 재일조선인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가 12월 9일 극장 개봉했다. [특별포스터=㈜엠앤씨에프/㈜인디스토리]
김철민 감독이 18년간 일본을 오가며 만난 재일조선인의 삶을 생생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가 12월 9일 극장 개봉했다. [특별포스터=㈜엠앤씨에프/㈜인디스토리]

 

 

재일조선인에게 ‘조선학교’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학교이자 구심체이다. 이 ‘조선학교’를 만들고 유지해온 이들이 재일조선인 1세이다. 이들은 대일항쟁기를 온몸으로 살아낸 역사적인 증언자들로 영화에서 그들이 살아온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 가운데는 이제는 세상을 떠난 분들도 있어 영화를 제작한 18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영화는 생전에 재일조선인 1세를 취재하여 왜 재일조선인이 되었는지, 일본에서 어떤 차별을 당했는지를 육성으로 담아내 그 고통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런데 김철민 감독은 어떻게 해서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는가? 2002년 금강산에서 열린 청년들의 통일행사를 기록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촬영하러 갔다가 처음 만나게 된 재일조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이 재일조선인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헤어질 때 재일조선인들이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며 분단이 무엇인지 비로소 느낀 김 감독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2005년부터 일본을 방문하며 재일조선인들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하며 일본에서 한민족으로 정체성을 찾기 위해 한국에 유학 왔던 재일조선인들이 1970년대에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사건을 다뤄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이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취재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만든 작품이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였다. 그러나 영화는 간첩조작 사건이 중심이 아니라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보여주며 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다룬다. 견디기 어려운 혐오와 차별 속에서 귀화하지 않고 ‘조선인’으로 살아 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질문을 하며 영화를 보면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크게 들린다.

영화는 조선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 재일대한민국민단(민단), 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 등 재일조선인 사회 안에 있는 다양한 단체의 역사와 경과를 다루고 그 안에서 청년기를 보낸 이들이 어떤 고민을 했는지 보여준다. 여기서 ‘이념’이라는 잣대로 이들을 재단하고 결론을 내린다면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재일조선인이 낯설 수도 있는데, 우리는 대개 재일동포라고 하기때문이다.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거주하게 된 조선인과 그 자손들을 말한다. 재일동포와 후손들 전체를 말하는 개념이며 그 범주에는 조선적자, 한국국적자, 일본국적 취득자까지 포함된다.국적에 따라 ‘조선인’, ‘한국인’으로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며 북한국적자라고 보는 것도 잘못이다. 일본에 거주하던 한국인 상당수가 광복 후 한국으로 귀국했지만 혼란한 정세와 생계 문제 등으로 일본에 잔류를 선택한 사람들도 많았으며, 이들이 재일조선인 1세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과 분단이 연이어 발생했다. 일본에 남은 재일조선인들은 한반도의 혼란한 정세의 영향을 받아 이들 사회에서도 북한 사회와 남한 사회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양분해 각각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양대 단체 발족으로 이어진다.

재일조선인1세들은 무엇보다 먼저 자녀교육을 위해 우리 말과 역사를 교육하는 학교를 세웠다. 바로 조선학교다. 1945년 세운 ‘국어강습소’가 그 시작이었으며 그해 말 전국적으로 500여 개소가 세워졌다. 그후 민족교육에 앞장선 활동가들에 의해 ‘조선인학교’라는 체계적인 학교로 변모해갔다. 2018년 현재 일본 전역에 64개교의 조선학교가 남아 있으며, 유·초· 중·고·대학교까지 정연한 민족교육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학제는 우리나라와 동일한 6,3,3,4제이다. 학생수는 초기에 4만 여명에 달했으나 이제는 7천 여명으로 줄었다. 일본교육법에 준하는 ‘각종학교’(1 조교, 전수학교의 다음)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지자체로부터 교육보조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학교의 재정은 전적으로 수업료와 동포들의 기부로 꾸려진다. 일찍이 재일조선인을 ‘해외공민’으로 인정한 북한 1957년 ‘교육원조비와 장학금 1억엔’과 교과서 등을 보내 민족교육을 지원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정부는 재일동포의 민족교육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이 조선학교가 일본 극우단체인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약칭 재특회) 등의 습격을 받는 것은 민족교육을 하기 때문이다. 극우정권인 아베정부가 조선학교를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러한 1세들의 뜻을 이어받아 재일조선인 2세들은 평화적으로 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민족성을 보장받기 위해 싸우고 있다. 교토 조선 제3초급학교의 강수향 교장은 점점 줄어드는 보조금으로 어려워진 학교 운영을 고민하지만 끝까지 소명을 다한다. 또한 간첩조작사전 피해자인 재일조선인 2세들이 전하는 아픔과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은 국내에 유학 온 민단의 청년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에 암약해온 ‘유학생 간첩단’으로 조작했다. 이 1975년의 간첩조작사건에 희생된 130여명 가운데 재일조선인 2세인 강종헌, 이동석, 이철 등이 영화에 등장해 당시를 증언한다. 조국이라 여긴 대한민국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었고 조국을 그리워했을 뿐인 꽃다운 청년들에게 일생의 상처를 안겼다. 하지만 그들은 조국을 원망하지 않는다.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다’는 그 말이 가슴을 울린다. 이들은 민족의 역사를 누구보다 열렬히 공부하고 통일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조국이 통일되어야 재일조선인에게도 평화가 온다고 그들은 말한다. 늘 남이냐 북이냐, 양자택일을 강요받던 그들은 남도 북도 모두 내 조국이라 당당히 말한다.

재일조선인 3세들은 현재 일본 사회의 극심한 혐한 정서와 차별 속에서도 자신들의 권리와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다. 활동하는 조직이 다르고 한글교육, 조선학교 차별 반대 등 노력하는 분야가 다르지만 일본 사회에서 조선 민족의 민족성을 존중하고 보장받기 위해 한마음으로 애쓰고 있다.

영화는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조선학교 차별 철폐를 외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사람’으로 확고한 정체성과 역사의식을 갖추고 성장해가는 재일조선인 4세와 5세들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려움 속에서도 ‘미움만이면 중오심만이면 원동력은 되지만 쭉 싸우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사는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한다. 일본은 차별하고 한국은 외면했지만 한번도 조국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 그들의 삶에서 숭고함을 느낀다.

한 겨레이지만 이념이 갈라놓은 남북한, 그로 인해 갈라진 재일조선인이 이제 하나가 될 때도 되었다. 전 세계 한민족이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이루어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이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있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가 재일조선인의 76년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