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나무 울타리 안 작은 초막에서 마지막을 보낸 연산군
탱자나무 울타리 안 작은 초막에서 마지막을 보낸 연산군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1.10.0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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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교동도 연산군 유배지를 찾아

강화나들길 9코스 ‘다을새길’을 걷다 보면 왕족의 유배지로 이용되었던 교동도에서 연산군 유배지를 지나게 된다.

강화 교동도에 있는 연산군 유배지. 최근 건설공사로 접근이 쉽지 않다. [사진=강나리 기자]
강화 교동도에 있는 연산군 유배지. 최근 건설공사로 접근이 쉽지 않다. [사진=강나리 기자]

조선시대 성종의 적장자로 태어나 왕으로 살았으나, 폭군으로 오명을 남기고 결국 폐위되어 강화 교동도에 가시가 무성한 탱자나무 울타리 안 작은 초막에 갇혀 세상을 마감한 연산군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 싼 초막을 지키는 군졸들과 연산군을 모셨던 내시 2명과 나인 4명. [사진=강나리 기자]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 싼 초막을 지키는 군졸들과 연산군을 모셨던 내시 2명과 나인 4명. [사진=강나리 기자]

연산군 유배지로 향하는 길은 지금 한창 공사 중이어서 접근이 어려웠다. 도착해보니 작은 초막은 홀로 지내기에도 버겁게 작아 보였고, 마당 한켠에는 한양에서부터 그를 실어 왔을 함거(죄인을 수송하던 수레)를 재현해 놓았다.

마당 한 켠에는 연산군이 타고 왔을 함거(죄인을 실은 수레)가 재현되어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마당 한켠에는 연산군이 타고 왔을 함거(죄인을 실은 수레)가 재현되어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처마 아래 작은 쪽문을 열어야  소반에 밥과 국, 간장 종지를 마주한 연산군의 모습이 보였다. 연산군은 이곳에서 겨우 두 달을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위협적인 탱자나무 가시가 세상과의 단절을 느끼게 한다. [사진=강나리 기자]
위협적인 탱자나무 가시가 세상과의 단절을 느끼게 한다. [사진=강나리 기자]
초막 한켠 작은 쪽문. [사진=강나리 기자]
초막 한켠 작은 쪽문. [사진=강나리 기자]
쪽문을 열어 겨우 볼 수 있는 연산군의 모습. [사진=강나리 기자]
쪽문을 열어 겨우 볼 수 있는 연산군의 모습. [사진=강나리 기자]

안내판에는 “연산군이 유배되어 안치 기거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위리안치소를 재현해 찾는 이들에게 시대적 상황을 이해시키고 반면교사의 교육적 가치와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설치했다.”고 적혀 있었다.

연산군 유배지를 가는 길에 있던 돌담집. [사진=강나리 기자]
연산군 유배지를 가는 길에 있던 돌담집. [사진=강나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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