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선비들은 세속의 영광이나 당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나 자연과 벗하며 시와 글을 짓고 친구와 제자와 어울리기 위해 지은 별서정원 혹은 정자들을 만들었다.

자연풍광이 빼어난 곳을 찾아 선비의 기개와 고고함을 나타내는 꽃과 나무, 담, 다리 등을 배치하고 자신의 깊은 사유를 담아내 정자뿐 아니라 시야가 미치는 곳곳이 특별하다.

'담양 10정자' 중 조선 중기 문신이자 호남사림의 큰 스승이던 송순이 지은 면앙정을 오르는 길.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기대감이 커진다. [사진=강나리 기자]
'담양 10정자' 중 조선 중기 문신이자 호남사림의 큰 스승이던 송순이 지은 면앙정을 오르는 길.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기대감이 커진다. [사진=강나리 기자]

특히 전남 담양에는 호남사림들이 지은 30여채의 정자가 있다. 그중 소쇄원과 명옥헌, 식영정, 송강정, 면앙정, 관어정, 독수정, 상월정, 연계정, 남극루가 ‘담양 10정자’로 손꼽힌다.

담양 10 정자 중 첫 번째로 1533년(중종28) 송순(1493~1583)이 세운 면앙정俛仰亭을 가보자.

송순은 면앙정을 자신의 호로 삼을 만큼 이곳을 사랑했고, 이곳에서 강호제현(江湖諸賢, 수많은 지식인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길러냈다고 한다.

면앙정으로 오르는 길 중턱에 마주한 대나무 숲. [사진=강나리 기자]
면앙정으로 오르는 길 중턱에 마주한 대나무 숲. [사진=강나리 기자]

담양군 봉산면에 있는 면앙정을 오르려면 계단을 올라야 한다.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기대를 안고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니 푸른 대나무 숲을 만났다. 또다시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날개를 활짝 펼친 듯 지붕선이 아름다운 면앙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으로 측면과 좌우에 마루를 두고, 중앙에 방을 배치했다. 추녀의 각 귀퉁이에는 지붕을 받치는 기둥인 활주活柱가 세워졌다. 그런데 송순이 지은 면앙정의 첫 모습은 기와집이 아니라 초라한 초정草亭으로, 비와 바람을 겨우 가릴 정도였다고 전한다.

중턱을 넘어 다시 계단을 오르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면앙정. 날개를 펼친 듯 나타난다. [사진=강나리 기자]
중턱을 넘어 다시 계단을 오르면서 서서히 드러나는 면앙정. 날개를 펼친 듯 나타난다. [사진=강나리 기자]

이곳에는 당대의 명필인 청송 성수침(1493~1564)이 썼다는 ‘면앙정’ 현판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와 시인들의 시편들이 판각되어 걸려있다. 송순은 호남사림의 큰 스승으로, 그의 문하에서 고봉 기대승, 하서 김인후, 송강 정철 등 수많은 제자가 배출되었기에 정자에 걸린 시편이 더욱 많다.

청송 성수침이 썼다고 전하는 '면앙정' 현판과 시편들. [사진=강나리 기자]
당대 지식인들과 교류가 많고 호남사림의 큰스승으로 길러낸 후학들이 많아 시편이 많이 걸렸다. [사진=강나리 기자]

정자 주변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참나무와 배롱나무 등이 둘러있으며, 현판이 있는 정면에서는 담양의 너른 들과 논밭이 펼쳐져 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가늘어지더니 소나기가 되어 지붕과 나뭇잎을 흔들었다.

튓마루에 앉아 한숨을 돌리고 다시 잦아든 빗속에 정자 앞 짧은 계단을 내려가니 기대승이 썼다는 ‘면앙정기俛仰亭記가 새겨진 비석이 있어 면앙정에 얽힌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비석에는 “면앙정 옛터에 곽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는데 일찍이 의관을 갖춘 선비들이 모이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자신의 집안에 장차 경사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라 여겨 산사의 스님에게 아들을 맡겨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아무 성과가 없고 가세가 기울어 그곳에 있는 나무를 베어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송순)공이 재물을 주고 이곳을 얻자, 마을사람들이 모두 축하하며 '곽씨의 꿈이 징험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조물주가 신령스러운 곳을 감추어 두었다가 공에게 준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적혀 있었다.

송순의 제자 고봉 기대승이 쓴 '면앙정기' 시편 판각(위)과 툇마루에서 내려오면 서 있는 '면앙정기' 비석. [사진=강나리 기자]
송순의 제자 고봉 기대승이 쓴 '면앙정기' 시편 판각(위)과 툇마루에서 내려오면 서 있는 '면앙정기' 비석. [사진=강나리 기자]

정자의 이름이자 그의 호인 ’면앙俛仰‘은 “하늘을 우러러 보아도 부끄럽지 않고,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담양에서 태어난 송순은 27세에 문과에 급제해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으나 30세에 모함을 받고 파직당해 낙향했다. 다시 벼슬길에 올라 홍문관 교리를 거쳐 사헌부 장령, 이조 및 병조의 정랑 등 주요관직을 거쳤으나 권문세가이자 훈구파 수장으로 권력을 휘두른 김안로를 탄핵하다 1533년 또 다시 41세에 파직당했다.

이때 담양으로 돌아온 송순은 오랫동안 짓고자 했던 면앙정을 비로소 지을 수 있었다. 비록 파직을 당했지만 정자의 이름 속에 하늘을 우러러도, 땅을 굽어보아도 부끄럽지 않다는 그의 기개와 당당함이 담겨있다.

면앙정 중턱에 이르는 도보길. [사진=강나리 기자]
면앙정 중턱에 이르는 도보길. [사진=강나리 기자]

면앙정은 전남 담양군 봉산면 제월리에 위치해 있으며,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광주광역시 말바우시장 맞은편 또는 담양터미널에서 농어촌버스 322-1을 타고 인근까지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도보로 1시간 반 정도 걸으면 담양군 고서면에는 송강정이 있다. 다음에는 '담양 10정자'에서 송강정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