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 전 오색찬란한 가야의 유리세공목걸이 보물된다
1,700년 전 오색찬란한 가야의 유리세공목걸이 보물된다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0.09.10 2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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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3점 보물지정 예고

‘철의 왕국’으로 알려진 가야는 다양한 유리 세공 능력을 보여주는 뛰어난 장신구 문화도 형성했다.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 곡옥, 둥근 옥을 만들어 목걸이로 착용했다. 금과 은, 유리, 금박 입힌 유리, 수정과 호박, 비취 등 다양한 재질로 편평하게 가공한 판옥, 곡옥, 대롱옥, 여러 면을 깎은 다면옥 등 다채로운 형태를 지녔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가야시대 대표 고분 김해 대성동 고분과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한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위)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아래) 발굴 당시 모습. [사진=문화재청]
(위)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아래) 발굴 당시 모습. [사진=문화재청]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조 2,473점의 구슬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성동고분박물관이 관리한다.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146점의 구슬로 이루어져 있고,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2쌍 574점의 구슬로 되어 있는데 2점 모두 국립김해박물관이 관리 중이다.

김해 대성동 76호분은 3세기 말~ 4세기 초 금관가야 시기 중요 고분 중 하나로 2011년 발굴당시 목곽묘에서 발견했다. 금관가야는 6가야 중 하나이며 서기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남 김해를 중심으로 낙동강 하류 지역에 존속했다. 초기에는 여러 가야 중 맹주국의 위치에 있어 대가야 또는 본가야라고도 불렸다.

특히 김해 대성군 고분군은 3~5세기 무렵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공동묘지로 우리 고대사에서 공백으로 남은 4세기 전후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중요한 고분이다.

이곳에서 춡된 목걸이는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구성되어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 구슬 77점,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총 2,473점으로 이루어졌다. 구슬의 평균 지름이 6~7mm 정도로 매우 작은 모양으로 다듬어져 가야인들이 들인 정성과 시간을 엿볼 수 있다.

맑고 투명한 수정, 주황색 마노, 짙푸른 색의 유리 등 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유리를 곡옥이나 다면체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하고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연결하거나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등 조형적 완결성도 갖추었다.

구슬의 제작방법은 일정한 틀에 재료를 녹여 부어서 만든 ‘주형기법’과 녹인 유리질 속에 막대를 넣고 잡아 늘려 식힌 다음 일정한 크기로 자른 ‘잡아 늘리기 기법’ 등 고대구슬제작방법 2종류를 모두 사용했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발굴조사를 통해 나와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한 점, 여러 재료를 정교하게 가공해 색상과 질감을 조화롭게 배치한 가야인의 수준 높은 문화를 짐작케 하는 점, 금간가야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 공예품이란 점에서 역사‧예술 가치가 충분하다.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사진=문화재청]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사진=문화재청]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 목걸이’는 1992년 동의대학교 박물관 2차 발굴조사 당시 토광목곽묘에서 발굴되었다. 270호 고분은 인접한 고분과 겹쳐 있어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으나 높다리 그릇인 ‘고배’를 비롯해 토기류, 철제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가야인의 생활상을 알려주는 중요 고분이다.

이 목걸이는 수정제 다면옥 20점과 주판옥 120점, 곡옥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작시기는 고분 형태 및 부장품으로 보아 3세기로 추정되며 전체 약 142.6cm의 길이로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이었다.

영롱하고 맑은 투명 무색과 황색, 갈색 등이 약간 섞인 은은한 색의 수정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었고, 형태와 크기가 다른 수정을 조화롭게 배치해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 목걸이를 구성한 수정은 한동안 외국산으로 알려졌는데 최근 학계연구에 의해 경남 양산 등 우리나라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인식된다.

3세기 금관가야 지배계층의 대표적인 장신구인 수정목걸이는 가야 유적에서 다수 출토되었으나 100여점 이상의 수정으로만 구성된 사례는 매우 희소하다. 오늘날의 세공 기술과 견줘도 될 만큼 완전성이 뛰어나 당시 수준 높은 기술과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왼쪽)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리 전체. (오른쪽)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사진=문화재청]
(왼쪽)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리 전체. (오른쪽)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사진=문화재청]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1994년 동의대학교 박물관이 목곽묘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함께 발굴된 유물 중 중국 한나라때 청동 세발 솥 등을 통해 3세기 경 축조된 금관가야 고분임이 밝혀졌다.

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주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총 475점으로 구성되었다.

기원 전후시기부터 3세기 대까지 유행한 가야의 장신구는 수정이나 마노를 주판알 모양으로 깎거나 유리로 굽은옥, 둥근옥을 만든 목걸이이다.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이러한 가야 구슬 목걸이의 대표작이다.

투명한 수정을 육각형으로 다듬고 거기에 붉은색 마노와 푸른색의 유리옥을 더해 영롱한 빛으로 조화를 이룬 것이 특징이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도 발굴로 얻은 것이라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하고, 수정제 곡옥이나 대형 유리제 곡옥이 한꺼번에 발견된 희귀한 사례이다. 아울러 수정을 정교하게 가공한 기술과 다채로운 색채, 질감이 조화를 이룬 조형의식이 돋보여 당시 장신구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세부모습. (시계방향으로) 곡옥, 수정, 곡옥 세부. [사진=문화재청]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세부모습. (시계방향으로) 곡옥, 수정, 곡옥 세부. [사진=문화재청]

보물로 지정 예고된 가야 목걸이 3건은 각각 개별 유적에서 일괄로 발견되었고 금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중 많은 수량의 구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이며, 가야인들이 신분 위상과 지배 계층의 권위를 장신구를 통해 드러냈음을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금, 은 제품을 주로 다룬 신라나 백제인들과 달리 수정과 유리구슬을 선호한 가야인의 생활상과 연관이 깊은 유물로 화려함을 추구한 당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유물이란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중국의 사서 『삼국지(三國志)』의「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는 “(가야인들은) 구슬을 보배로 삼아 옷을 꿰어 장식하거나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 은, 비단은 진귀하게 여기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3건은 30일 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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