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 백제 성왕이 이끄는 군사 3만 명을 궤멸시킨 관산성 전투가 벌어졌던 충북 옥천지역에서 7세기 이후 신라가 백제를 공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성된 관도(官道)로 추정되는 고대도로가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신라의 관도는 서라벌(현재 경주)과 그 인근으로, 서라벌과 지방을 연결한 관도가 확인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왕경이 아닌 지방에서 신라 관도가 확인된 최초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충북 옥천군 옥천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 부지 내 유적조사에서 7세기 신라의 관도로 추정되는 고대도로가 발굴되었다. (위) 유적이 발굴된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전경 (아래) 산 정상 부근에 조성된 고대도로로 길이는 약 320m, 도로 폭은 5.6m에 이른다. [사진=문화재청]
충북 옥천군 옥천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 부지 내 유적조사에서 7세기 신라의 관도로 추정되는 고대도로가 발굴되었다. (위) 유적이 발굴된 충북 옥천군 옥천읍 서대리 전경 (아래) 산 정상 부근에 조성된 고대도로로 길이는 약 320m, 도로 폭은 5.6m에 이른다. [사진=문화재청]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원장 장준식)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8월까지 옥천 제2의료기기 산업단지 부지 내 유적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발굴과정에서 7세기 신라 토기, 기와부터 조선 전기 백자 등도 나와 이 도로는 신라에서 조선 전기까지 교통과 군사목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는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진행하며 산 정상부근 경사면과 계곡을 이어 조성되었으며 총 길이는 320m, 노면 폭은 약 5.6m이다. 도로 표면에는 수레바퀴자국과 수레를 끌던 짐승의 발자국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유적조사지역 내에서는 도로 외에도 청동기 시대 주거지 및 구덩이 유구, 삼국시대 토광묘, 고려 이후 토광묘와 주거지, 조선시대 토광묘와 구덩이, 도랑유구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고려시대 청자조각, 조선시대 백자조각, 청동 숟가락 등도 발견되었다.

충북 옥천에서 발견된 7세기 신라의 군사목적용 관도 추정 유적에는 수레를 끌었던 짐승의 발자국 모습(왼쪽)과 수레바퀴 자국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사진=문화재청]
충북 옥천에서 발견된 7세기 신라의 군사목적용 관도 추정 유적에는 수레를 끌었던 짐승의 발자국 모습(왼쪽)과 수레바퀴 자국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사진=문화재청]

옥천은 관산성 전투를 비롯해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싸웠던 곳으로 660년 백제 통합 전쟁 때에도 신라의 진군로에 자리한 군사거점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671년 기록에 등장하는 보은과 옥천 방면에서 대전을 거쳐 공주(웅진)에 이르는 신라의 주요 군량 운송로인 웅진도(熊津道)의 일부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평지나 능선 사면부가 아닌 산 정상부근에 직로로 개설된 것으로 볼 때, 군수물자를 쉽게 이동하려는 군사적 목적의 도로였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은 오는 20일부터 21일 오전 10시~오후 3시 사이에 발굴지역 현장공개를 할 예정이다. 관련 문의는 043-279-5420으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