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면 작게 쓰일 땅, 큰일을 위해 쓰였으면 한다
내가 쓰면 작게 쓰일 땅, 큰일을 위해 쓰였으면 한다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8.07.02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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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익사업에 임야 기부한 충북 오창 이규현 씨

자연을 닮아 순박한 인상의 이규현(68) 씨. 40여 년간 농사를 짓던 그는 절제된 생활과 자연에 가까운 친환경적인 삶이 몸에 배어 있다. 그가 최근 우리 홍익정신을 알리는 사업에 써달라고 노후를 위해 마련했던 임야와 밭 3만 3천 평을 내놓았다.

40여 년간 농사를 짓던 이규현(68세) 씨가 지난 6월 홍익사업을 위해 임야와 밭 3만 3천 평을 쾌척했다. [사진= 김경아 기자]
40여 년간 농사를 짓던 이규현(68세) 씨가 지난 6월 홍익사업을 위해 임야와 밭 3만 3천 평을 쾌척했다. [사진= 김경아 기자]

지난 6월 27일 충북 오창산업단지에 위치한 뇌교육명상센터에서 기공명상체조를 지도하는 이규현 씨를 만났다. 68세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탄탄한 몸과 강건한 체력을 지닌 그가 지도를 시작하자 회원들이 집중하며 따라 했다. 기마자세로 하체를 단련하는 모습이 믿음직했다. 회원들과 수련을 마치고 차를 마시면서 평소 지켜야할 섭생과 건강상식을 전했다. 한 회원은 “우리 강사님이 나랑 동갑인데 정말 젊게 산다. 멋진 분이다.”라며 자랑을 했다.

그는 “6월부터 원장님이 기회를 주어 매주 1회씩 수련지도를 하기 시작했는데 아직은 남 앞에 서는 게 어색하다”고 쑥스러워하며 “사람들에게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는 법을 전하는 기쁨이 크다.”고 했다. 그는 혼자 농사를 짓다보니 사람들과 교류가 적었는데, 뇌교육명상수련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면서 활발하게 교류하게 되었다.

68세!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그를 만나 살아온 인생이야기와 삶의 철학을 들었다.

뇌교육명상수련은 언제부터 하게 되었고, 동기는 무엇인지

- 4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나니 마음이 쓸쓸하고 생활도 안정이 되지 않을 때 평소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우연히 뇌교육명상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수련을 하면서 잠도 잘 자게 되었고, 생활도 안정이 되었죠. 제가 예전에 불교공부를 했어요. 그때는 개인수행에만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뇌교육명상수련을 하면서 좋은 점은 수련을 해서 배운 것을 사회에 나가 행동해서 사회에 좋은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이었어요. 실천해서 이뤄내야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알고만 있고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함께 수련하면서 시민활동을 하는 분들을 많이 만납니다. 삼일절이나 광복절, 특히 개천절에 자신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거리로 나가 홍익정신을 알리고, 나라사랑을 이야기하며, 신나게 지구시민 축제를 준비하는 활동가들을 보면서 감동할 때가 많습니다.

(위) 매주 1회 씩 기공명상체조를 지도하는 이규현 씨와 회원들.  (아래) 이규현 씨가 수련지도후 회원들과 차를 마시며 건강섭생법에 관해 담소를 나누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위) 매주 1회 씩 기공명상체조를 지도하는 이규현 씨와 회원들. (아래) 이규현 씨가 수련지도후 회원들과 차를 마시며 건강섭생법에 관해 담소를 나누었다. [사진=김경아 기자]

뇌교육명상수련을 통해서 인생의 변화가 있었나요?

- 전에는 내 감정대로 살았다면 지금은 내 참모습이 무엇인지 찾고 제3자의 눈으로 나를 보는 힘이 생겼죠. 누가 보던지 공정해야지 이기심을 부리고 편파적으로 사는 걸 경계하게 됩니다.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에 공헌을 하는 것이 가치 있다는 마음입니다. 일이 바쁠 때는 미처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이제는 돌아보게 되네요. 너무 빨리 가다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가면서 보이는 게 생깁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는데, 그것들을 실천하게 됩니다.

이규현 씨의 부친은 청주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유명한 이원종 씨이다. 청주를 비롯해 인근 도시에서도 70대 이상 어르신들은 다 안다고 했다.

고향이 충남 천안시 성남면 대흥리라고 들었습니다. 아버님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 할아버지는 고향에서 계속 살면서 면장을 하셨고, 아버지는 6‧25사변 때 청주로 피난 나와서 정착하셨죠. 아버지가 어릴 적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그 길을 걸으셨죠. 아버지가 서울에서 의과대학을 다녔는데, 8남매다 보니 할아버지가 모두 지원해주실 수가 없었나봅니다. 하숙집에서 장작을 패주며 학교를 다니셨다고 합니다. 재학시절 대학병원에서 수술보조자를 요청하면 다른 학생들은 회피하는데 아버지는 자청하실 만큼 적극적이셨어요.

청주에서 소아과와 내과병원을 개원하셨는데, 의학 공부를 꾸준히 하셔서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이비인후과 전문의 자격을 따셨죠. 아버지는 환자가 아픈 게 본인이 아픈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병원과 집이 이어져 있었는데 한밤에도 응급환자가 3~4번 씩 찾아오고, 멀리 왕진도 나가야 했는데 잠을 줄여가며 일하셨어요. 그러다 60대 중반이후에는 족보를 공부하고 고향에 관심을 많이 두셨어요. 논을 메워 마을회관을 지어 기증했고, 마을을 위해 힘쓰고 도움을 주셨죠.

그의 고향에는 마을사람들이 부친 이원종 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공덕비가 있다.

본인의 어릴 때 성장과정을 이야기해 주십시오.

-제가 4남 2녀의 장남인데요. 어릴 때 집에는 항상 삼촌, 외사촌 형제까지 함께 자라 북적였죠. 당시에는 일가친척 중 잘 사는 집에서 먹이고 재워주며 학교를 보내는 일이 흔했죠.

아버지께 물려받은 것 중 하나는 철저한 섭생습관입니다. 본인께서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 때문에 우리들에게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사소한 생활 습관까지 철저히 지키게 하셨어요. 군것질은 해 본 적 없고, 맵고 짜지 않게 슴슴한 맛을 기분 좋을 정도까지만 절제하며 즐기게 되었죠.

이규현 씨는 아버지에게서 널리 사람들에게 베푸는 마음과 자립심, 그리고 건강한 섭생습관을 배웠다고 한다.  [사진= 김경아 기자]
이규현 씨는 아버지에게서 널리 사람들에게 베푸는 마음과 자립심, 그리고 건강한 섭생습관을 배웠다고 한다. [사진= 김경아 기자]

70년대에 공과대학을 나오셨는데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청‧장년기 때 삶의 이야기도 부탁드립니다.

- 예. 전 대학에서 금속공학과를 나왔죠. 그래서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답답하게 느껴져, 적응하는 데 6개월이 걸리더군요. 전공 때문에 제철 제련소에 견학을 가보면 노란색 아황산가스 연기가 올라오는 게 무척 힘들었어요. 졸업하자마자 청주로 와서 1973년 어머니가 남에게 위탁한 과수원에서 농사를 배웠죠. 그로부터 꾸준히 농사를 짓고 젖소를 키우다 2009년 젖소 사육을 그만두고 지금은 농사만 짓고 있습니다.

농사를 지으면서 배운 것도 많죠. 사람도 자연이라 태양이 뜨고 지는 자연의 법칙에 맞춰 밥도 먹고 잠도 자야 건강하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지나친 육식은 사람과 자연의 건강을 해친다는 겁니다. 농사를 지으면 14.5명이 먹을 수 있는 땅에 소를 키우면 1명밖에 못 먹죠. 균형을 잡아야지 지나친 육식은 지구환경을 해치는 원인이 됩니다.

홍익정신을 교육하는 국학원은 자주 가셨는지요.

- 고향인 천안에 있는 국학원에서 교육받을 기회가 있었어요. 민족혼 교육을 받았을 때는 우리 역사와 홍익철학을 제대로 배우고 가슴이 뿌듯했죠. 또 여러 수련을 받으면서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인생 방향을 잡게 되면서 희망을 품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걸 몇몇 사람만 알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어려운 사람을 직접 돕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알고 희망과 목표를 갖고 살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우선 아닌가 합니다.

국학원에 있는 120세 계단은 걸어보셨는지요?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 국학원 120세 계단을 작년에 올랐습니다. 1단부터 한 살씩 과거를 되짚으며 올라가다가 제 나이에서 잠시 멈춰서고, 다시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그리며 나머지 계단을 올랐습니다.

전에는 잘하면 100살까지는 살겠구나 했는데, 이젠 120세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목표가 높아졌죠.(웃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유익한 일을 하려면 오래 살아야겠습니다. 그런 생각이 없이 단순히 장수한다는 건 고통이죠.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힘들고 사회적으로도 비용이 많이 발생합니다. 스스로 건강을 관리하고 남에게 도움을 준다면 보람 있는 삶이 될 겁니다.

이번에 임야와 농지를 홍익사업을 위해 기부하셨습니다.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 작년 여름 국학원에 큰 수해가 났는데 보통사람이라면 절망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전국에서 힘을 합하여 더 멋진 모습으로 단장한 것을 보고 큰 희망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국학과 뇌교육을 전 세계에 알려온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학교)님의 40여 년 간 해온 일들을 보았고, 얼마 전에 직접 강연을 들으면서 제 땅을 홍익사업을 위해 기부하면 더 큰 일에 쓰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주변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공기가 좋고 토양이 좋은 땅입니다. 더 나이 들면, 약초와 과일을 재배하며 도시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치유하고 제대로 섭생을 하며 건강을 찾는 곳을 만들었으면 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제가 준비해서 그 땅을 쓰려면 먼 나중이 되고 쓰임새가 적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기부하면 지금부터라도 사람들을 위해 크게 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렙니다.

(왼쪽부터) 충북국학원 최선열 국학원장과  기부자 이규현 씨, 오창지역 뇌교육명상센터 진선영 원장. [사진= 김경아 기자]
(왼쪽부터) 충북국학원 최선열 국학원장과 기부자 이규현 씨, 오창지역 뇌교육명상센터 진선영 원장. [사진= 김경아 기자]

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려고 하는데.

- 재산을 남겨주는 일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힘들 게 벌어야 가치가 있지, 쉽게 얻은 돈은 쉽게 쓰고 말죠. 아버지가 제게 자립심을 길러주셨고, 저도 자식들에게 대학졸업 후에는 스스로 생활하도록 했습니다. 금전적으로 도와준다고 자식의 삶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더군요. 정말 힘들 때 요청하면 그때 도울 생각입니다.

앞으로 인생에 대해 어떤 계획이 있는지요?

- 농사 외에도 일하는 게 있어 노후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강사활동을 시작했으니 사람들에게 스스로 건강관리 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평생 섭생이나 건강법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했는데, 그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건강도 적금과 같습니다. 적금을 꼬박꼬박 붓지 않으면 나중에 타는 게 줄어드는 것처럼 건강도 매일 매일 챙겨야 하죠. 그것을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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