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하늘과 땅, 특히 바다를 호흡할 수 있는 곳이다. 기운으로 말하면 천기(天氣), 지기(地氣), 수기(水氣)가 작용하는데, 제주에서는 세 가지 기운 중 수기에 더욱 민감하다. 그것은 바람결에 섞여 코를 자극하기도 하고, 햇볕에 실려 살갗을 자극한다. 제주에 살지 않은 사람일수록 이런 자극을 강하게 느낀다. 이런 자극을 느끼면 자신에 집중하여 외부로 향한 생각이 내면으로 모아진다. 이러한 곳이라 제주에서는 명상하기 좋다.

제주의 기운을 느끼는 동안 몇년 전 여름 세도나 명상 여행이 연상되었다. 세도나 또한 제주처럼 내면에 집중하게 한다.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는 연간 300만 명이 찾는 세계적인 명상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막지대인 이곳은 매우 더운 지역인데, 햇볕을 쬐어도 땀이 잘 나지 않는다. 습기가 적어 후텁지근하지 않아 긴팔 옷을 입으면 햇빛을 막아 상쾌하였다. 여름에 맛보는 가을 날씨 같은 쾌적함이 느껴져, 세도나에 있는 동안 내내 몸을 의식하고 내면 깊숙이 집중하였다.

제주를 느끼고 제주를 명상하기 위해 간 곳은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 솔목천이다. 이곳은 2015년 전국 45개 소하천이 참가한 국민안전처의 '아름답고 안전한 소하천 가꾸기 사업'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곳이다. 서귀포시는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파도소리가 어우러진 솔목천'이란 주제로 응모했다. 이런 곳이니 옛날부터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천제단이 있었다. 천제는 천손(天孫), 즉 ‘하늘의 자손’이라는 의식이 제주도에 있었음을 말한다. 단군왕검이 세운 고조선의 중심 사상인 천손 의식이 제주의 문화 속에 남아 있다. 그래서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정신은 제주도에서는 삼무(三無)로 생활 속에 구현된 것이리라.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마을 어르신들은 어릴 적 천제를 올리는 것을 해마다 보았다는 이야기로 천제단의 존재를 전한다. 아침나절 햇살이 빛나는 이곳은 물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에 오감이 만족하였다. 자연이 주는 풍성한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동안 사사로운 생각과 감정이 사라진다.

제주를 찾은 명상여행단이 제주 서귀포 대평리 선비돌기 바위가 보이는 삼합비경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제주를 찾은 명상여행단이 제주 서귀포 대평리 선비돌기 바위가 보이는 삼합비경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솔목천 옆으로 폭포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제주 바다를 향한 선비 얼굴을 한 바위가 있다. ‘선비기돌’이라는 이 바위에 진나라 시황제가 보냈다는 ‘서복’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시황제의 명으로 불로초를 찾아 영주산을 찾은 서복은 이곳을 육체가 아닌 영생의 참된 의미를 깨달은 수행처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보살바위’라고 부른다. 어찌 됐던 이 일대는 예로부터 수행처임을 보여준다.

제주무병장수테마파크의 명상전문가를 길잡이로 골짜기 안 언덕으로 올라가니 바다를 배경으로 보이는 선비기돌이 영락없이 사람 옆모습이다. 숨을 가다듬고 바다를 향해 정좌하여 명상에 들어간다. 천지의 기운이 바다의 수기운과 어우러져 내 안에서 하나로 만나는 곳, 초목이 우거져 우주의 생명력이 모아진 곳이다. 천지인(天地人) 삼합이 이루어지는 깨달음의 수행처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용맹정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내려놓았다.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바른 법을 알고 그 법에 나를 던질 수 있다면 더 이상이 무엇이 필요할까. 코끝을 스치는 바다 기운, 바람소리를 느끼지 못할 때 무념무상, 무욕, 순수함 속에서 자연과 함께 호흡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자연 속에 내가 녹아들어가 내가 없어진다. 자연이 나이고 내가 자연이다. 신선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더는 말이 필요 없다.

묵언으로 계곡 안쪽으로 올라간다. 이곳 또한 하늘과 땅의 기운이 바다의 수기운과 만나는 곳이니 그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었다. 풍광이 수려하여 신선들이 다니는 계곡 같다. 이 신선의 길을 걸어가며 내 안에 신선을 만난다. 깨달음을 추구했던 옛 선인들에게서 전해진 신선도를 느껴본다.

좀 더 가자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 마음이 설렜다. 폭포수의 정화 작용은 뉴질랜드 얼스빌리지 명상에서 이미 체험하였다.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명상을 하면 마음이 정화되고 뇌가 씻겨 나가고, 몸까지 깨끗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해 뉴질랜드 명상여행을 다녀 온 후로 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있는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삼합비경에서 만나는 폭포는 얼마나 강력하게 내면의 정화를 해줄 것인가! 나무가 우거져진 곳에 작은 폭포에서 끊임없이 물이 떨어졌다. 안내하는 이는 며칠 전 내린 비로 수량이 많아졌다고 한다. 자리를 잡고 폭포수를 바라보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물줄기에 머리와 가슴에서 생각과 감정이 씻겨나갔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고민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폭포 앞에서 내면의 정화가 강력하게 일어났다.

제주 서귀포 대평리 폭포 앞에서 명상여행단이  명상을 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 대평리 폭포 앞에서 명상여행단이 명상을 하고 있다.

폭포 오른쪽으로 작은 동굴로 올라간다. 깊지 않아 삼합비경을 내다볼 수 있는 이 동굴은 수행의 동굴이다. 서복이 불로불사를 얻기 위해 수행하고 참된 영생의 의미를 깨달은 수행처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잠시 앉아 선인들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성을 다해 하늘의 기운을 받고 땅의 기운을 연결하여 내 안에서 천지인을 이룬다.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나왔다. 내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왔는지를 안다면 그게 깨달음일 터. 동굴을 나오는 이마다 얼굴이 환하다.

절로 말이 없어져 이끄는 대로 올라가니 나무로 무대처럼 만들어 놓은 곳에 이르렀다. 이곳에서는 천상대라고 한다. 이곳에서 명상을 하면 우아일체(宇我一體)의 경지 속에서 하늘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삼합비경을 올라오는 동안 혈이 열려 하늘과 통하니 하늘의 지혜를 얻고 사명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명상전문가는 말한다. 이런 좋은 곳을 놓칠 수 없겠다 싶어 반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욕심을 다 비워냈는데, 깨달음의 욕심은 버리지 못 하였는지. 하늘이 주는 사명을 생각하며 하늘과 연결하니, 단군왕검의 모습과 함께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글이 떠오른다. 홍익인간 이화세계.

명상을 마무리하고 활짝 핀 꽃을 따라 간 곳은 솔목천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이었다. 이곳에 명상할 수 있도록 토굴. 삼합비경을 거쳐 이곳에 오면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아도 깊은 명상에 들어갈 수 있다. 필요한 것은 하늘과 하나가 되겠다는 마음가짐뿐이다. 하늘이 인간을 낼 때, 그 하늘마음을 받는 곳이 아닐까. 명상전문가의 안내로 토굴에 앉아 명상을 하였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고 알 수 없는 기쁨이 솟는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 토굴 밖 바위 이곳저곳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명상하는 이들이 신선처럼 보였다.

제주를 찾은 명상단이 서귀포 대평리에서 바다를 향해 앉아 명상을 하고 있다. 이곳은 마을에서 천제를 올린 곳이었다고 한다.
제주를 찾은 명상단이 서귀포 대평리에서 바다를 향해 앉아 명상을 하고 있다. 이곳은 마을에서 천제를 올린 곳이었다고 한다.

 

이제 발길은 천제단 터로 이어진다.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100여명이 앉을 만한 곳에 사람이 앉을 나무토막이 10여개 있다. 바다를 향해 이 나무토막에 앉아 다시 명상을 한다.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에 정성을 다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느껴보았다. 천제를 올릴 때 일신의 영화를 그들은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공심(公心)뿐. 이 세상이 평화롭고 만물이 행복하기를 하늘에 빌었을 것이니, 이곳에서는 그런 공심을 닮고자 하였다.

세상이 평화롭고 만물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제주사람들. 그래서 예로부터 제주는 삼무(三無)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 삼무 정신을 바탕으로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때 제주는 지구촌 평화의 중심지가 될 것이다. 평화의 섬, 제주. 내 안의 평화를 찾고 세상에 평화를 전파하는 곳, 제주는 그런 곳이다.

자연과 하나인 나. “나를 느끼고 나를 명상하라.” 명상여행을 끝낼 무렵 이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