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肉)’과 ‘앎(知)’이 합쳐진 말이다. 살은 육신이고 앎은 정보이다. 곧 정보가 깃든 육신이 사람인 것이다. 혼백이라는 말도 있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 상태로 사람을 정의 하는 말인데 백은 육체적 동력이고 혼은 사람의 핵심가치라고 할 수도 있다. 혼은 순순한 우리말로는 ‘얼’이라고도 한다. 그러기에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뜬다.’라고도 하는데 이는 육체라는 보이는 그릇에 담긴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옷을 벗듯이 떠난다는 뜻이다. 그렇게 덧없이 사라지고 마는 외피들을 ‘껍’ 또는 ‘깝’이라고 한다. 그래서 껍질, 껍데기, 검불 등의 말이 있다.

 

 ‘껍(깝)죽댄다.‘는 ’껍(깝)데기는 곧 죽을 것이다.‘는 뜻이고 ’까불지 마라.’는 말은 껍질에 불과한 껍(깝)에 줏대 없이 이리저리 불려 다니지 말라는 충고이다. 요컨대 껍질은 핵심과 실체가 아닌 것이다. 사람의 실체는 껍질속의 얼이고 혼인 것이다. 한민족의 오랜 수행체계인 선도(신선도)에서는 사람을 ‘천지의 씨앗’이라고 했다. 하늘의 실체인 ‘한’이 사람에게 내려와 ‘혼’이 되고 땅에 뿌리박고 자라 활짝 꽃피고 열매 맺는 존재라는 뜻이다. 한자로 쓰면 곧 ‘지화자(地花子)’로 ‘지화자 좋다.’라는 낯익은 추임세로 생활화 되어있다. 굳이 풀이하면 “인간이 하늘의 뜻과 땅의 보살핌에 의지하여 생명으로 꽃피우니 모두가 조화롭구나.” 라는 진실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표현이다. 곧 천도지덕(天道地德)이 머물고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한민족 특유의 문화적 관용구이다.

 

 

▲ 2016년 광복절 전남국학원의 태극기 몹. <코리안스피릿 자료사진>

 

인간 안에 하늘이 있고 땅이 있다는 것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의 최고의 경전인 천부경에서는 그 핵심을 다섯 글자로 가르치고 있다. 바로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다. 어렵지 않게 사람의 얼굴에서 간단하게 ‘인중천지일’을 찾아 볼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코로는 천기(天氣)를 들여 마시고, 입으로는 땅에서 나오는 음식인 지기(地氣)를 섭취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 둘을 조화롭게 이어주는 곳이 바로 코와 입중간인 인중(人中)이다. 그래서 코와 입이라는 굴로 들어온 천기와 지기가 인중에서 어울려 얼이 드나드는 굴이 된다. 곧 ‘얼굴’로서 인중천지일의 수많은 증거 중의 하나이다.

나라를 잃고 인간의 미래가 암울 할 때 나타난 동학의 복음인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人乃天)’도 ‘인중천지일’이 체질화된 우리 민족이기에 나온 말이다. 나라를 되찾은 8·15해방을 우리는 다시 빛을 회복했다는 뜻으로 광복절光復節이라고 부른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것을 왜 빛을 되찾았다고 하는가? 주권을 잃은 자들의 미래는 어둡기 때문이다.
땅을 빼앗긴 노예의 삶은 어둡기 때문이다. 자기 생명의 주인이 아닌 노예는 인간으로서의 찬란한 빛이 없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년 후,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광복光復은 문자 그대로 국권과 국제를 되찾았다는 뜻으로 수많은 국민들이 인간으로서의 “빛을 되찾음”이다.   과연 사람에게 빛이 있는가? 천부경에는 ‘본심본 태양앙명(本心本 太陽昻明)이라는 구절이 있다. 풀이하면 ‘마음의 근본과 우주 만물의 근본이 하나로 통할 때 일체가 밝아진다. 이렇게 마음을 밝힌 사람에게는 천지가 하나로 녹아들어가 있다.’ 하여 인간의 마음이 태양처럼 밝아질 수 있다는 것을 진리로서 밝히고 있다. 인간 내면의 빛을 회복하여 나와 민족과 인류를 위기에서 구하는 사람-즉 지구인의 양성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절의 의미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징인 태극기 또한 우주속의 인간과 뭇 생명의 빛의 가치를 도형화한 것이다. 광복절에 빛을 되찾은 사람들이 우주의 본질을 상형화한 태극기를 들고 다 같이 힘차게 외쳐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드리운 어두움을 걷어내야 한다.
“광명천지 대인간(光明天地 大人間)!”
이 기운과 기백이 지구 끝까지 퍼져나가길 간절하게 기원한다.

 

 

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원로회의 원로위원, 화가.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