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대야발, 발해에 한민족의 진리체계와 역사를 되살리다
[32] 대야발, 발해에 한민족의 진리체계와 역사를 되살리다
  • 원암 장영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장
  • sierra@ikoreanspirit.com
  • 승인 2016.04.26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극할배가 들려주는 한민족역사문화공원 이야기
▲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의 대야발 동상

대야발(大野勃, ?~742년)은 대진국(大辰國), 일명 발해의 시조인 성무고황제 대조영(大祚榮)의 아우이다.

서기 668년, 고구려가 당나라에 멸망하자 대조영은 아버지 대중상과 아우들, 처남들과 함께 고구려를 재건하기 위하여 떨쳐 일어난다. 그들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흑수말갈, 월희말갈, 속말말갈) 등 3만5천 명을 모아서 끈질기게 당에 대항한다.

30여 년이 지나자 드디어 옛 안동도호부에 이어 현도성, 묘작성, 백마성, 요동성, 백암성, 안시성, 건안성까지 탈환하게 되고 개모성마저 되찾는다. 여세를 몰아 고연무 장군이 옛 부흥 기지로 삼았던 오골성, 국내성까지 탈환한다.

이에 당나라 장수 이해고와 장현우, 마인절 등이 20만 대군으로 대조영의 군대를 쫓는다. 이 싸움에서 대조영 쪽은 말갈족 추장 아들 걸사비우와 대중상이 죽는 등 큰 어려움을 겪는다.

위기를 수습한 대조영과 아우 대야발, 의형제 오수부, 이나루 등은 이해고의 당나라군을 천문령까지 유인한 후 기습공격으로 전멸시킨다. 곧이어 동모산 쪽으로 이동하여 대진국, 곧 발해(서기 698년~926년)를 개국하고 대조영은 황제로 등극한다.

대조영 황제는 곧바로 아우 대야발에게 소실된 고구려의 역사를 복원하라는 명을 내린다. 대야발은 형이자 황제인 대조영의 엄명을 받들어 타버린 고구려의 사서, 문서 등을 모으고 비문을 확인한다. 터키의 전신인 돌궐 국까지 두 번씩이나 답사하는 등 13년의 피나는 노력 끝에 드디어 임무를 완수한다. 그 뒤 발해문으로 쓴 ‘단기고사(檀寄古史)’도 집필한다.

대야발은 단군조선 이래의 찬란한 정신문명을 간직한 고구려를 계승하고 그 폐허에서 일어나 다시금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기까지 형을 도운 유능한 군인이었다. 또한 ‘반안군(현재 압록강 근처)의 왕’인 탁월한 행정가였으며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명문’으로 일컬어지는 ‘삼일신고 서문(三一神誥 序文)’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대야발은 실로 문무겸전의 최고의 장군이자 지식인이었다. 서기 715년 대야발이 직접 쓴 삼일신고 서문의 대강이다.

‘무릇 이 세상 만물은 모습은 있으나 그 만물을 내보내는 참 임자는 모습이 없으니,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만물을 빚어내고 돌리고 서로 어우러지게 하는 이가 곧 한얼님이요, 그 있음을 빌어 세상에 나고 죽고 웃고 아파하는 것들이 바로 사람과 이 세상 만물이다. 처음에 하느님이 주신 성품에는 본래 참과 거짓이라는 게 없었으나 사람이 그것을 받은 뒤 깨끗함과 더러움이 생겨났으니, 그것은 마치 백 갈래 시냇물에 달 하나가 똑같이 비치고 같은 비에 젖지만 만 가지 풀이 다 달리 피어나는 것과 같다.

가슴 아파라! 모든 이들이 갈수록 악하고 어리석어져 마침내 어질고 슬기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며, 마음속 어지러운 불길이 서로를 불태워 세상을 불구덩이로 만들고, 서로 다투는 허망한 생각 먼지가 청정한 마음의 근본을 가려 버렸다. 그로 말미암아 흥하듯 망하고 일어났다가 꺼지는 것이 마치 아침 햇살 아래 노는 하루살이와 같고 밤 촛불에 날아드는 가엾은 나방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는 어린 아들이 우물에 빠지는 것보다 더 큰 일이니 어찌 자비로운 아버지가 그냥 바라보고만 있겠는가! 이것이 무릇 큰 사랑과 큰 지혜와 큰 힘을 지닌 하느님께서 사람 몸으로 화하여 세상에 내려오신 까닭이며, 또 가르침을 펴고 나라를 세우신 까닭이다. 이 하늘 말씀은 진실로 마음속 깊이 간직한 가장 높은 참 이치이면서 뭇사람들을 밝은이가 되게 하는 둘도 없는 참경전이니 그 깊고 오묘한 뜻과 밝고 빛나는 글을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러한 대야발의 노력으로 마침내 삼일신고와 천부경은 복원되었다. 대조영의 처남이자 지금의 교육부 장관격인 문적원감(文籍院監) 임아상(林雅相)은 삼일신고를 주해하였다.

손자인 제3대 문왕 대흠무는 서기 739년에 ‘삼일신고 봉장기’를 쓴다. 또한 발해 최고의 교육기관인 태학에서 국가의 동량들에게 교육하니 꺼져가던 한민족의 진리의 불꽃이 되살아났다.

그 이후, 오랜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우리의 혈관을 타고 면면히 전해오고 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이라는 진리체계가 문자로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대한민국은 위기의 지구촌이 애타게 기다리는 참다운 스승나라가 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두가 대조영을 비롯한 발해 선조님들의 피땀 어린 공덕이 아닐 수 없다.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전국민족단체 연합 대표회장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공원장
한민족원로회의위원

3
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