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국가에서 유교국가로 옮겨가는 전환기, 조선 전기는 어떠한 시대였을까?  조선 전기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지닌 문명의 전환기였다. 여러 사상, 사유 체계, 종교가 공존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로 활기가 넘치는 사회였다.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학가였던 성현(成俔, 1439~1504)이 남긴  책 '용재총화(慵齋叢話)'는 우리가 몰랐던 조선 전기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성현은  인물, 역사, 문학, 제도, 풍속, 설화 등 조선 전기의 온갖 것에 관한 기록을 이 책에 남겼다. 형식상 잡록(雜錄) 필기(筆記)에 속하는데, 그야말로 붓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쓴 글이다. 성현은 자신의 눈에 비친 조선 전기의 인정물태를 거침없고 진솔하게 그렸다.

▲ 성현의 '용재총화' 표지. <사진=휴머니스트>.

  성현은 당대의 명문가 출신 사대부로, 엘리트 코스를 밟은 고급 관료였다. 조선시대의 의궤와 악보를 정리한 '악학궤범' 편찬을 주도한 예술가였을 뿐만 아니라 1,000여 편의 시문을 남긴 문학가이기도 했다. 이렇듯 조선 최고의 만물박사라고 할 만큼 박학다식한 인물이기에, 성현이 그린 조선 전기의 모습은 다채롭다. 여행과 독서와 견문을 통해 얻은 지식, 관리로서의 경험으로 얻은 정보 등 그가 이 책에 남긴 이야기를 소재와 내용에 따라 나누어보면 320여 개 정도다.

고려와 조선의 왕실가 사람들, 사대부, 선비, 화가, 서예가, 승려, 점치는 사람, 기생 등의 인물, 당대의 풍속, 사대부의 문화와 예술, 관아의 제도와 연혁 등을 기록했다.  색을 밝히는 여자와 조롱당하는 승려의 이야기, 충치를 치료하는 비법 등 사대부가 남긴 기록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색다른 소재도 있다. 법으로 따지면 절도죄에 해당하는 일화(권2 2-33, 130쪽)를 솔직히 기록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어울려 공부하던 이륙과 함께 친구 집을 방문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문전박대를 당한 후 그 친구의 말을 훔쳐 타고 다녔다. 심지어 성현은 이륙이 그 말을 잡아먹으려고 했다는 이야기까지 남겼다.

 이수남이 답했다. “나는 업무를 마친 뒤 벗들이 주연을 베푸는 곳을 찾아다닌다네. 기생을 끼고 앉아서 실컷 희롱하다가 밤이 깊으면 먼저 나와서 기생과 함께 돌아가는데, 기생의 집에 가기도 하고 지인의 집에 가기도 한다네. 비록 이부자리가 없어도 두 사람이 옷을 벗고 함께 누우면 그 즐거움이 어찌나 지극하던지. 날마다 이같이 하면서 매번 여자를 바꿨지. 불법으로 말하자면 내생에 부디 호곶이의 수말이 되어 암말 수십 필을 거느리고 실컷 희롱하기 바란다네. 이것이 내가 즐거워하는 바라네.”
 ㅡ권10 10-14 ‘선비들의 한담, 인생의 즐거움이란’ 중에서(498~499쪽)

▲ 조선 전기 성현이 쓴 '용재총화'. <사진=휴머니스트>.

어떤 경사의 아내가 남편이 외출한 틈을 타 이웃 남자를 방으로 끌어들여 막 즐기려고 하는데 남편이 돌아왔다. 궁리를 해봐도 이웃 남자를 도망치게 할 방도가 없자 두 손으로 치마를 쥐고는 남편의 눈을 가리고 펄쩍펄쩍 뛰면서 남편에게 가서 말하기를 “어디에서 오시는 경사이신가요?”라고 했다. 남편은 아내가 자기에게 장난을 친다 생각하고 자기도 펄쩍펄쩍 뛰면서 “북쪽 재상 댁에서 장례를 치르고 오는 길이요”라고 했다. 아내가 치마로 남편의 머리를 감싸고 눕자 이웃 남자가 마침내 도망쳤다.
ㅡ권6 6-10 ‘남편을 속인 호색 아내’ 중에서(302쪽)

성현은 근엄한 형식과 무거운 주제를 고집하기 않고, 조선의 사람과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있다. 심각한 문제의식이나 긴밀한 구성이 아니라, 솔직하고 담백한 서술을 통해 조선 전기의 현실을 불현듯 드러낸다. 그 덕에 이 책에서 조선 전기 사람들의 방탕함과 호방함, 성과 윤리에 관한 생각, 인간에 대한 이해 등을 엿볼 수 있다.

성현은 조선 전기의 학자이자 문학가. 세종 대에서 연산군 대까지 살았던 인물로 자는 경숙(磬叔), 호는 용재(慵齋)·부휴자(浮休子) 등이며, 시호는 문대(文戴)이다. 1462년 문과에 급제했으며, 예문관과 춘추관, 홍문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예악문물을 주관하는 예조판서로 있으면서 장악원 제조를 겸했고, 조선시대의 의궤와 악보를 정리한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하기도 했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에는 한성부판윤을 거쳐서 공조판서가 되었고, 그 뒤에 대제학을 겸임했다. 조선 전기의 인물·풍속·지리·역사·문물·제도·음악·문학·설화 등을 기록한 '용재총화(慵齋叢話)'를 저술했다.
성현은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낯선 조선 전기의 장면들을 '용재총화'에 거침없이 그려냈다. ‘총화’라는 이름대로 다양한 내용을 다루는 이 책에서 우리는 조선 후기의 프레임이나 특정 사유 체계의 시선을 걷어낸 조선 전기의 온갖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용재총화'는 1950년대 북한 번역본, 1971년 민족문화추진회 '대동야승' 수록본 등 3~4종의 번역서가 있다.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김남이 교수가 같은 학과 대학원생들과 '용재총화'를 꼼꼼히 번역하고 충실히 주석을 달아 휴머니스트에서 새로 펴냈다.  이 책은 기존 번역서의 오류를 바로잡고, 사실과 맥락을 좀더 풍부하게 살필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용재총화'의 새로운 정본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옮긴이주만 900여 개에 달하고 교감주도 650여개나 된다. 

역자들은 '용재총화'와 관련된 사실(事實, 실제로 있었던 일)과 사실(史實, 역사적 사실)을 추적하고 밝힌 내용을 옮긴이주로 기록했다. 관련 자료들을 여러 방면으로 살펴 사실관계를 확인했으며, 문맥과 문리를 고려한 번역의 이유를 밝혔다. 특히 문집이 전해지지 않거나 이름이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대의 문화, 정치, 학술에서 위상을 가졌던 인물들을 소개했다. 이는 조선 전기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교감주는 조선고서간행회본 '대동야승' 소재 '용재총화'를 저본으로 경산대학교 간행본 국학자료집성 '용재총화'를 비교·교감하고, 관련 자료와 문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을 정리했다.  충실한 번역과 풍부한 주석은 '용재총화'의 내용과 분위기, 맥락을 쉽게 파악하고, 원문의 깊은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