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1993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쓸 때 인용하여 유명해진 문장이다. 그 책에서 이 대목을 읽고 의문이 생겼다. 인용한 만큼 출처가 드러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뒤 다른 저자의 책을 통해 이 문장의 주인공이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인 걸 확인했지만, 유 교수가 “조선시대 한 문인의 글”이라고 한 까닭이 여전히 궁금했다.


지난해 신문에 난 유 교수의 글을 보고 그 의문이 풀렸다. 답사기에 인용하려고 규장각에서 복사해온 원문을 찾지 못 했던 것. 기억을 더듬어 쓰고 보니 그럴 듯했지만, 정확한 것 같지 않아 ‘조선시대 한 문인의 글’이라고만 했다.
유 교수가 매료된 문장, 원문이 들어 있는 책이 유 교수와 김채식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의 공역으로 출간됐다. ‘김광국의 석농화원’(눌와 간)이 그 책이다. 

▲ 김광국의 석농화원. <사진=눌와>

 

석농(石農) 김광국(金光國, 1727~1797)은 조선 정조시대 최고의 서화 수장가였다. 본래 유명한 양반 가문이었지만 고조부가 의관이 된 이후로 대대로 의관직을 세습하게 되어 김광국도 의관을 지냈다. 그는 10대 때부터 서화를 수집하고, 사화가, 수장가들과 교류하기 시작하였으며 노년에 들어서면서는 평생 수집한 그림을 화첩으로 꾸미기 시작하였다. 1784년 58세 때 ‘석농화원石農畵苑’ 원첩 네 권을 성책하였고, 이후 10여 년에 걸쳐 ‘속’ ‘습유’‘보유’‘별책’ ‘부록’을 펴내어 총 10권으로 마무리하였다. 마지막 권인 부록편의 화평을 쓴 것은 70세 때인 1796년이며 이때 ‘석농화원’총목과 화평을 옮겨 쓴 ‘석농화원’ 육필본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1797년 김광국은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광국의 화첩인 ‘석농화원’은 공민왕과 안견에서부터 김홍도와 심사정의 그림까지, 조선시대 400년을 아우르는 방대한 회화 컬렉션이었다. 김광국은 일생 동안 수집한 그림들을 여러 권의 첩으로 꾸몄다.
김광국이 1797년에 죽은 뒤 어느 때인가 흩어져버려 화첩의 이름과 그 일부였던 그림 수십 폭만 전해올 뿐 정확한 전모는 알 길이 없었다. 이 화첩에 실려 있던 작품은 격이 뛰어나고, 작품마다 실려 있는 화평도 조선시대 회화 비평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어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이 화첩의 미술사적 의의를 강조해왔다. 이동주가 ‘우리나라의 옛 그림’(학고재, 1997)에서 처음으로 이 화첩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안휘준, 최완수, 유홍준, 홍선표, 이태호, 이원복, 강관식 등 회화사 연구자들은 모두 이 화첩에 주목했다.

▲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화원별집'에 실려 있는 '노승탁족도'는 조영석의 그림을 이행유가 베껴 그린 것이라고 김광국은 적었다. <사진=눌와>.

그런데 2013년 연말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 열린 고서경매에 홀연 ‘석농화원’이라는 미발간 육필본이 출품되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 김광국이 생전에 직접 편집까지 마쳤으나 무슨 이유인지 지금까지 감춰져 있었다. 이 육필본 ‘석농화원’은 화첩 ‘석농화원’에 수록된 작품 목록과 화가의 이름, 그림에 덧댄 화평과 화제까지 모두 옮겨 쓴 미간행 필사본이다.
총 198면에 달하는 이 책은 ‘석농화원’ 화첩의 전모를 소상히 알려주었다. 이 책에 따르면 ‘석농화원’ 화첩은 모두 10권으로 수록된 작품의 수는 총 267폭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화가를 보면 공민왕, 안견으로부터 김광국과 동시대 화가인 단원 김홍도, 한 세대 후배인 자하 신위에 이르기까지 101명이다. 고려 말기부터 조선 후기에 이르는 400년간의 유명한 화가들이 다 들어 있는 셈이다. 사실상 이 화첩은 실 작품으로 구성된 조선시대 회화사 도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역대 화가 28명의 작품 37폭과 일본, 러시아, 서양, 유구 등의 작품도 7폭이 실려 있어 조선시대의 대외적인 문화교류도 짐작케 한다.


‘석농화원’ 육필본에는 화평과 화제 두 가지가 실려 있는데, 화평은 그림에 관한 평이고, 화제는 그 그림에 얽힌 이야기나 그림을 본 소감 등을 적은 글이다. 본격적인 회화사적 비평은 아니지만 인생의 여러 감상이 서려 있어 문학적 감동을 주는 것이 많다. 화평을 지은 문장가로는 김광수, 이광사, 강세황 등 18명이고, 화평을 글씨로 쓴 서예가는 박지원, 박제가, 유한지, 이한진 등 26명이다. 18세기 후반 정조시대를 대표하는 문인들을 망라한 셈이다.  유홍준 교수가 인용한 유한준의 글 ‘석농화원발石農畵苑跋’이 뒤에 나온다.

▲ '와룡암소집도'에 쓴 김광국의 화제에서는 그림을 그린 심사정, 그 자신도 이름 높은 서화수장가였을 뿐만 아니라 김광국과 나이를 잊은 친교를 맺었던 김광수와의 인연이 서정적인 일화로 서술된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실제 그림과 함께 읽으면 더욱 감흥이 깊어진다. <사진=눌와>

이 엄청난 회화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육필본 ‘석농화원’이 불쑥 나타나자 유홍준 교수는 2014년 5월24일 한국미술사학회에서 “‘석농화원’ 육필본의 내용을 회화사적 의의와 함께 발표하여 학계에 널리 알고 그후 김채식 연구원과 함께 1년간에 걸쳐 우리말로 옮겼다. 그리하여 근 200년 간 발간되지 못하고 묻혀 있던 ‘석농화원’ 육필본을 마침내 원본, 한글 번역, 주석, 부록, 도판과 함께 출간하였다.
육필본 『석농화원』의 형식과 내용에 충실하게 옮긴 번역을 원문과 함께 실어서, 화첩에 실려 있던 그림들의 제목과 그린 이의 이름은 물론 그림에 붙어 있던 화제와 화평 등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를 토대로 간송미술관, 선문대학교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은 물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까지, 화첩 ‘석농화원’에 수록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작품 130여 폭을 찾아 원래 화첩의 체제에 맞춰 실었다.

▲ 오명현이란 화가의 그림을 두고서 김광국은 조영석의 그림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며 가혹한 평을 내렸다. <사진=눌와>.

책의 앞머리에는 유홍준 교수가 화첩 ‘석농화원’을 상세히 해설한 ‘석농화원의 해제와 회화사적 의의’를 두어 그 가치와 회화사적 의의를 이해할 수 있다. 책의 뒤에는 육필본의 영인을 실어 실제 책의 내용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책의 내용, 체제와 편집을 살펴보면 역자들은 말한 이 책의 출간의 의의에 동의하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전설적인 화첩인 ‘석농화원’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뛰어난 화론과 엄청난 양의 회화비평 사례를 얻게 되었다. 이는 시로 조선시대 회화사 연구의 획기적인 성과로 남태응(南泰膺)의 ‘청죽화사(靑竹畵史)’의 발견에 이은 미술사의 쾌거라 할 만한다.”

덧붙여 이 책은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도서 정보
김광국의 석농화원 양장본
김광국 지음 | 유홍준, 김채식 옮김 | 눌와 | 2015년 08월 14일 출간
정가 : 5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