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연세에 정말 시베리아에 갈 수 있을까’. 2013년 여름 ‘아리랑에 빠진 89세 노학자, 아리랑 로드 6,000km 대장정 떠나겠다’라는 이정면 유타대 명예교수의 기사를 읽고 그런 생각부터 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90대 두 지리학자와 60대 전직 부행자의 시베리아 아리랑 기행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이정면·서무송·이창식, 이지출판)라는 책 출간 소식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90대 두 지리학자와 60대 전직 부행장이 2014년 9월 2주간에 걸쳐 시베리아를 다녀왔다. 인기리에 방영된 ‘꽃보다 할배’의 평균 나이 77세보다 무려 13세나 많다.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는 2주간 시베리아 아리랑 기행의 보고서인 셈. ‘꽃보다 할배’처럼 영상은 없지만, 여느 기행문보다 값지다.
그런데 세 사람은 어떻게 시베리아 기행을 하게 됐을까? 이 교수의 기사가 보도되자, 방송국과 신문사, 출판사, 그리고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대장정 계획을 상세히 세우고 출발할 날이 다가오자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결국 아리랑 로드 대장정 6,000km 기획자인 이정면 교수만 남았다. 

▲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 책 표지. <사진=이지출판사>.

 그러자 서무송 한국동굴학회 고문이 함께 가겠다고 나섰다. 이 교수의 50년지기인 지형학자 서무송 교수는 이 교수의 꿈이 좌절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지병이 있어 의사와 가족이 반대했지만, 서 교수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리고 이정면 교수의 기사를 본 우리은행 부행장을 지낸 이창식 씨도 기꺼이 따라나섰다. 우리 민요 ‘아리랑’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이 교수의 순수한 마음을 알고 두 노교수의 가이드를 자청했다. 이렇게 90대의 두 학자와 60대 전직 부행장의 시베리아 아리랑 기행은 시작됐다.  

 그러나 이 여행은 출발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현지 일정 안내를 할 여행사가 이들을 거절했다. 이유는 두 가지ㅡ두 교수가 고령으로 여행자보험 가입이 안 된다. 두 교수의 신체 조건으로 시베리아 답사는 절대 무리이다. 하지만 현지 여행사의 거절이 시베리아 기행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가야만 했다. 우리의 먼 옛날 조상들이 노아의 홍수 이후 동방의 해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백두산으로 이동해 오기까지 아리랑을 부르며 걸어왔다는 ‘아리랑 루트’인 시베리아 평원을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인 바이칼 호수에 서고 싶었다. 또한 1937년 연해주에서 시베리아 화물열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한 고려인들의 애환과 당시 불렀던 아리랑을 듣고 싶었다. 
 
 나이를 따지면 갈 수 없는 여행이었다. 여행사는 나이를 따졌고, 두 노 교수는 나이를 잊었다. 결국 나이를 잊은 90대 두 노 교수가 이겼다. 그렇게 세 사람은 2014년 9월14일 2주간의 시베리아 답사를 떠났다.
이 책에는 어떻게 해서 ‘갈 수 없는 여행’을 갈 수 있었는지, 러시아 현지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 우리 한민족은 과연 어디에서 온 민족인지, 우리 민족의 역사적·종교적 정체성, 우리 민족의 이동과 관련된 아리랑의 유래와 기원, 우리와 닮은 먼 친척인 부랴트인 이야기,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추방된 고려인의 애환과 대일항쟁기 나라를 찾기 위한 독립운동 이야기, 한민족의 시원이며 샤머니즘의 성소인 바이칼 호 이야기, 그곳에 있는 우리 전래설화의 원형 이야기,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실패 등 빙하와 관련된 재미난 이야기를 담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주인공인 두 교수가 어떻게 50년 지기가 됐는지, 90세까지 건강하게 살아온 장수 비결, 어떻게 학문의 길을 걸어왔는지 등 개인적인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세 사람이 계획했던 6,000km 중앙아시아 아리랑 답사 계획이 3,000km로 단축되었으나, 어렵게 찾아간 시베리아 답사 길이었기에 많이 보고 듣고 걸어 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하였다. 현지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 의견을 나누고 박물관, 도서관, 한국교육원, 공원, 교회, 묘지, 유적 혹은 거리에서 야외 결혼식에도 초대되어 사진도 찍고 신부 신랑와 대화도 나누었다. 이런 답사를 통하여 우리가 지닌 러시아, 특히 시베리아에 관한 지식과 러시아에 관한 우리 생각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었다.

저자들은 '꼭 가야만 하는 여행 시베리아'라는 제목으로 에필로그를 장식했다.

"시베리아는 우리에게 그저 먼 나라였다. 우리와는 역사적으로도 별 관계가 없는 나라, 북쪽 넓은 곳에 있어 그저 춥고 척박한 땅, 죄수들의 유형지, KGB와 마피아가 연상되는 무서운 곳으로만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광활한 평원을 가로질러 여행하고 싶은 남자의 로망을 부추기는 미지의 땅이었다.
그 땅에 발을 딛고 나서야 우리와는 먼 옛날부터 가까운 나라였음을 알게 되었다. 수만 년 동안 우리 옛 선조들이 살았던 삶의 터전이었다. 한때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고, 우리 백성이 1863년부터 생존을 위해 찾아간 신개척지이자 희망의 땅이었고, 1906년 고종황제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했던 특사 이준과 이상설 열사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지나갔던 땅이었다.
많은 우국열사들이 망국의 한을 안고 건너가 항일투쟁을 벌인 독립운동의 주요 활동무대였고, 고려인들이 혁명의 승리가 조국의 독립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러시아내전(1918~1922) 때 빨치산을 조직하여 적군과 같이 백군을 격멸시키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렀던 피의 땅이었다.
그런가 하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18만 고려인들이 아무 죄도 없이 화물열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로 강제추방 당했던 한 맺힌 땅이었고, 지금은 고려인 2, 3세들이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고 있는 역사적 모순의 땅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그들의 투쟁 이야기는 그냥 듣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아까운 우리 조상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였다. 
  그곳에 남아 있는 ‘레거시(legacy, 유산)’의 조사 정리를 위해 우리 정부가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한·러 관계도 개선되고, 특히 해동성국인 발해의 새로운 역사적 재조명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망명했던 독립투사들의 80%가 농민이었다는 사실과 한국 이주민들의 많은 사람들이 아시아를 위해 피를 흘렸던 대가는 반드시 사실을 통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군의 악독한 신한촌 참사 사건, 연해주 흑룡강 지역의 독립투사와 한국 농민들에 대한 비인도적인 참살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들이 힘을 얻어 연해주 흑룡강 유역에 한민족 자치주 같은 것이 성립되어 있었을 것만 같은데, 이제는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개탄할 노릇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저자들은 많은 이들이 시베리아 여행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 대한민국이 대국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행을 통해 만나는 고려인들을 위로해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새로운 인식, 즉 역사적으로 가까운 나라임을 꼭 기억해 주길 간절히 바랐다. 


이정면 교수의 아리랑 대장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을 만나러가야 하고, 우리 조상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넘어온 ‘아리랑 루트’ 파미르고원과 톈산산맥과 알타이산맥도 찾아가야 한다. 이번의 탐사 경험(3,000km)을 살려 아직 남은 아리랑 로드 대장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지역의 3,000km 대장정을 기필코 떠날 것이다. 이 대장정을 위해 체력 또한 여전히 팔팔하기를 바란다.
책 제목ㅡ‘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는 세 사람이 시베리아 기행을 마치고 난 심정을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라는 시로 정리했는데 그 제목에서 따왔다. 시의 뒷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네가 네 원형의 모습을 보는 날/ 다시 피가 돌고 심장이 뛸 거야//누이야, 이제 일어나/ 우리의 원형이 있는/저 시베리아에 가봐.”
 

시베리아에 가야하나 보다. 

■90대 두 지리학자와 60대 전직 부행장의 시베리아 아리랑 기행 누이야, 시베리아에 가봐

지은이 : 이정면, 서무송, 이창식
펴낸곳 : 이지출판사
판형 : 신국판 272면 올컬러 / 2015년 6월 5일 발행
ISBN 979-11-5555-030-4 03980
정가 : 15,000원 Email : easy76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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