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부산에서 혼자 살던 60대 여성 김 모씨가 숨진 지 5년 만에 자신의 집에서 백골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고독사(孤獨死)'인 것이다. 홀로 사는 독거노인 125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2035년에는 이 3배 수준으로 급증한다고 하니 이런 충격적인 뉴스가 늘어날까 걱정이다.

 뿐만 아니다. 10월 2일 노인의 날을 맞아 노인들에 대한 온갖 통계가 쏟아져나왔다. 긍정적인 수치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많은 노인은 친구가 없고 할 일이 없고 소득이 없다는 것(3無)에 대해 슬퍼했다. 게다가 혼자 사는 노인들은 영양상태도 불균형했고 평균 건강 수명 역시 짧았다. 노인 빈곤율과 우울증, 자살률도 높다.

 온몸과 마음으로 부모 세대를 봉양하고 자식 세대를 키워낸 어르신들이 마주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해질 줄 알았건만, 나이가 들수록 행복은커녕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역이라는 어르신들이 많다.

 이런 와중에 한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이로도리, 인생 2막>이다. 개봉은 했으나, 전국에서 상영하는 영화관은 서울 허리우드 극장 딱 한 곳뿐. 그것도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딱 나흘 동안 하루에 3번, 12번 상영으로 막을 내렸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미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 그중에서도 가장 노인들이 많이 사는 마을 가미카쓰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청년들은 모두 도시로 가고 남은 것은 연세 지긋한 노인들뿐인 이마을은 살아남는 것이 전쟁이 되어버렸다.

 그러던 중 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나뭇잎 모아 팔기' 사업이 시작된다. 일본 요리 옆에 곁들여 나가는 다양한 종류의 나뭇잎을 모아 전국의 식당에 판매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의 비웃음을 사고 실패를 거듭했지만, 초등학교 동창인 세 할머니의 의기투합으로 사업이 번창하면서 죽어가던 마을을 되살려낸다.

 이 간단한 성공담이 특별한 이야기가 된 것은 그 주인공이 일흔을 넘긴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남편 밑에서 한 번도 그의 말을 거역해본 적 없는 카오루, 남편과 사별한 후 마을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지만 도시의 사는 자식들이 늘 그리운 하나에, 마을을 벗어나 도시에서 살다가 노모(老母)를 간호하기 위해 마을로 돌아온 미치코. 이 세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가 아니다. 찬찬히 뜯어보면 이 영화, 세 할머니의 자아발견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남편의 소유물처럼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다가 자신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그것을 이뤄나가는 카오루 할머니, 홀로 남아 자식들을 기다리기만 하다가 손재주를 발휘해 삶을 주체적으로 살게 되는 하나에 할머니, 교사가 되었다고 남들을 속이며 도시 학교 정원사로 살던 삶을 고백하고 나뭇잎 사업에 힘을 보태는 미치코 할머니까지.

▲ 화면 오른쪽부터 하나에 할머니, 미치코 할머니, 카오루 할머니. 자신은 교사가 아니라 학교 정원사였다는 사실을 고백한 뒤, 미치코 할머니는 친구들에게 나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알려주며 사업을 이끈다. 그 뒤에 선 청년은 마을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하루히코. 하루히코를 통해 나뭇잎의 판로를 찾게 된다.

 영화의 첫 화면은 마치 90년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느리고 척박하고 색감마저 칙칙하다. 현란한 화면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이 보기에는 시작부터 답답한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그 화면에는 할머니들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주변인으로 삶을 누군가에게 이끌리듯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표현된 화면인 것이다. 

 이는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할머니들의 삶이 변화하면서 바뀌어 간다. 나뭇잎이 어떻게 요리에 활용되는지 조사하기 위해 찾아간 고급 요릿집에서 촌스러운 시골 할머니들을 냉대하는 식당 안주인에게 카오루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 흥분이다! 이제서야 내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제발 도와달라."

 순종적이고 조용하던 카오루 할머니 안에서 터져 나온 이 말이 그녀 자신의 삶은 물론 마을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좌우되어온 삶을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자신의 선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 전동휠체어를 타고 마을 곳곳을 누비며 '나뭇잎'을 모으는 할머니들

 영화 말미에 번창하는 카미카츠 마을을 취재하러 온 리포터에게 한 할머니가 이렇게 말한다. "내 손으로 이렇게 돈을 버니까 너무나 행복하다"고. 그 할머니가 나뭇잎을 모아 번 것은 돈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세상의 반응이고 자신의 삶의 가치, 그 자체이리라.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성공이던 시대는 지났다. 의학의 발달로 누구든 오래살 수 있다. 이제 장수(長壽)를 넘어 장생(長生)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신의 꿈을 이루면서 사는 것 말이다. 삶에 대한 자신만의 건강한 철학을 갖고 그것을 구현해내기 위해 의지를 갖고 사는 삶 말이다.

 마지막으로 카오루 할머니의 대사를 소개한다.

 "후회하지 않고 죽고 싶다면, 포기하지 마! 아직 뭐든지 할 수 있어. 언제든, 어디에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