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니뭐니 해도 봄날 민물고기 요리의 진수는 장어구이가 아닐까 한다. 쌈박한 맛이 그렇고 값이 비싸다는 점 또한 다른 민물고기가 흉내내기에는 턱도 없다. 봄이 열리면서 어지간한 바닷가에 가면 움막을 하나씩 갖춘 뗏목배가 무수히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들이 다 '히라시'라는 민물장어 새끼를 잡는 배들이다. 민물장어는 인공부화가 어려워 자연산 실뱀장어를 잡아서 양식을 한다. 실처럼 가늘어서 눈에 보일락 말락 하는 실뱀장어는 한 마리에 700~1,000원에 팔린다. 히라시로 한 달에 몇천 만원, 한 해에 수억 원씩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그 또한 민물장어 요리의 인기를 말해주는 것이다.

인도양이나 대서양에서 잡아온 참치가 거의 대중화되다시피 한 데 비하면 장어는 이 땅에서 오래 전부터 나는 물산인데도 요즘 우리에겐 참 인색한 음식 가운데 한 가지이다. 양식으로 장어를 상품화할 만큼 전보다 많이 나는데도 그렇다. 서울에서는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 '명산장어' 등 장어구이집들이 있어서 진흙밭에 장어 모이듯 '장어족'들이 꾸역꾸역 찾아든다. 전북 고창 선운사 가는 길목에는 풍천장어와 복분자술(산딸기술)을 정력제 콤비로 파는 음식점들이 성업중이다. 그래서 고창 가는 사람들이 선운사 둘러보고 삼겹살에 소주만 걸치고 온다면 틀림없이 여편네에게 귀싸대기 허천나게 얻어맞을 일이다. 경남 진주 남강가에도 장어구이집들이 늘어서 있고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라는 강마을 식당들도 장어구이를 으뜸 메뉴로 걸어두었다. 장어요리는 강을 낀 마을들의 별미거리 자존심 겨루기 종목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장어요리는 원래 영산강 중류마을인 구진포라는 고즈넉한 나루마을에서 서상현 노인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 장어

전남 나주시 영산포에서 내려가는 도도한 물줄기는 휘늘어진 철로와 바쁠 것 없는 포장도로를 꾸불꾸불 데리고 가다가 바로 아래턱에 구진포(九津浦)라는 나루터를 부려 놓았다. 구진포라는 이름은 그 아래 명산(明山)에서부터 아홉 번째의 나루에 해당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예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 시절에는 이 영산강가에 붙어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강물줄기에 얼마나 덕지덕지 서려 있었겠는가?... 구진포라는 이름에는 또 하나의 슬픈 사연이 들어있다. 어느 거상이 아홉 식구를 데리고 이곳까지 거슬러 왔는데 닻을 내리는 도중에 폭우로 강이 넘쳐 아홉식구 모두 원혼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구진포가 장어의 명산지, 그러니까 쫀득쫀득하고 구수하고 쌈박하고 개미있는 맛을 내는 장어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목포 앞바다에서 밀물로 올라오는 짠물과 영산강의 민물이 합쳐져 빙빙 돌면서 빠졌다 불었다 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란다. 민물장어란 놈은 바다에서 태어나 민물(강물)에 올라와 자란다. 민물에서도 돌멩이들이 깔려있는 강바닥, 진훍이 쌓여있는 곳에 구멍을 파고 산다. 구진포 강바닥이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빙빙 도는 곳이어서 그런 조건을 딱 맞춰주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구진포 강바닥에는 미꾸라지도 많아서 장어가 그것을 먹고 살아서 맛이 뛰어났다고 한다.

▲ 구진포 장어.

장어는 예전에 낙시와 그물로 잡았다. 5월부터 9월 사이에는 긴 줄에다 25cm-30cm 간격으로 미꾸라지 미끼를 낀 낚시를 700~1,000개쯤 달아 하루밤 정도 강물 속에 담가 두었다가 바닷물이 한 번 들락거린 뒤 걷어 올렸다. 그것을 주낚이라고 하는데, 배가 기울어 질 만큼 장어풍년이었다고 한다.
그물은 눈이 잘디 잔 것을 쓴다. 진흙바닥까지 그물을 드리우고 강 양쪽 버드나무들걸에 그물줄을 매어놓았다가 밀물이 들었다가 썰물로 빠진 뒤에 걷어울린다. 아마 이영자 팔뚝만한 장어들이 줄줄이 달려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이제 구진포에서 '장어의 추억'이 되고 말았다. 영산강 2단계사업으로 목포항 삼학도 윗머리에서 영산강의 허리를 싹뚝 잘라놓은 하구언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구진포 장어’는 실뱀장어의 몸으로 삼학도 앞까지 왔다가 (조상들의) 고향을 눈앞에 둔채 눈믈을 뿌리며 돌아선다. 그리고 다시 바다의 짜디 짠 물 속에서 각박한 삶을 이어가다가 점점 그 수가 줄어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구진포에는 장어구이 전문식당 10여 곳이 찾아드는 손님을 다 받아내지 못 할 정도로 성업중이다. 장어명산지요, 장어요리 발상지로서의 체면을 유감없이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파는 장어들은 다 어디서 잡아오는 것인가? 그건 말할 것도 없이 양식장에서 모셔오는 것이다. 물론 구진포 강바닥에서 장어가 완전히 씨가 말라버린 것은 아니다. 자연산이 나기는 하지만 워낙 금값이다. 1kg에 8만원~10만원 한다. 양식장어가 3만 5천원 정도 나가니 꼭 3배나 더 나간다. 그것은 둘이 먹으면 딱 알맞은 양이니 L호텔 뷔페의 2배에 해당하는 값이다. L호텔 뷔페의 열배에 해당하는 값이라 한 들 그따위 맛에 토종 자연산 구진포장어를 견준다면 장어가 몹시 불쾌하겠지만 비싸기는 비싼 값이다.
양식장어를 먹으러 한사코 구진포까지 모여드는 사람들은 어떤 심사일까? 아무래도 서울 한복판에서 매연에 그을리고 물에 퉁퉁 불은 장어보다는 우선 장어의 육질이 나을 것이다. 또 산마루 정자에서 구진포 물줄기를 내려다보면 구진포의 옛추억이 되살아나서 장어맛의 ‘자연전이효과’가 첨가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구진포 사람들의 장어맛 살리기 열정이 오늘날까지 구진포를 장어의 명산지로 이름을 날리게 하는 요인인 것 같다. 구진포에는 살림만 하는 민가는 하나도 없고 다 장어구이집이다. 수퍼마켓도 하나 없어서 날마다 영산포로 장을 보러 간다. 그러면서도 인심이 좋아 식당끼리 반목이 없다. 재료가 떨어지면 서로 빌려주기도 한다.

▲ 구진포 장어요리.

구진포 ‘신흥음식점’은 장어구이 역사 33년을 자랑하는 식당이다. 주인 문정순 씨(여, 57세)는 감히 우리나라 장어구이의 원조라고 주장하면서 딸 임성숙 씨(35세)에게 대물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문 씨는 앞 집(제일음식점) 주인 서상현 씨(작고)로부터 장어구이를 배웠다고 한다. 그게 40년 전의 일이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는 장어가 지천으로 났지만 별로 먹지를 않았다. 미꾸라지 잡다가 장어를 잡더라도 기껏 추어탕 끓이는 데 덤으로 들어가는 천덕꾸러기였다. 일본으로 조금씩 수출만 했다. 그러던 것을 서씨가 일본에 가서 장어먹는 법을 배워와 요리를 개발했다.
장어구이 요리법은 이렇다. 먼저 민물장어를 깨끗이 씻은 뒤 등을 타서 뼈와 살을 구분하고, 추려낸 뼈와 머리에 물 3컵을 붓고 고아낸다. 고아낸 물에 재래간장, 한봉꿀, 물엿, 계피, 정종, 생강, 마늘 등 30여 가지의 각종 양념을 넣고 다시 끓인다. 가려낸 장어살에 끓여놓은 양념국을 10여차례 반복해 묻혀가면서 숯불에 굽는다. 이렇게 구워낸 장어는 고단백식품으로 비타민 A와 지방질이 풍부해서 허약한 어린이의 건강회복 음식으로도 쓰이고, 삼복더위에도 즐겨 먹는다.

■구진포 가는 길
광주에서 1번 국도를 타고 목포 쪽으로 가다가 다시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나주 영산포역 뒷길에서 영산강 줄기를 따라 지방도를 타고내려가면 10분 만에 구진포에 닿는다. 기차(새마을호 또는 무궁화호)를 타고 영산포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면 구진포까지 5분 거리이다.
구진포에 숙박시설은 없다. 나주시로 나오는 게 잠자리가 편하다. 구진포에 신흥음식점 등 장어구이식당이 10여곳 있다. 
 

전 한겨레신문 여행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