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尹愭, 1741~1826)가 나이 33세 때인 1773년(영조49) 성균관에 입학한 첫 해 초복을 맞이하자 점심에 개장국이 나왔다. 윤기는 초복을 나는 성균관 유생들의 풍경을 이렇게 읊었다.

“삼복날 더위에도 부채는 못 부치고 / 庚炎未解小龍團

과분할사 부호처럼 얼음 쟁반 받았어라 / 分外豪家氷雪盤

유생에게 골고루 개고기 좀 나눠주니 / 養士均頒狗炒細

널찍한 술잔이 저절로 생각나네 / 令人却憶酒杯寬

아이들은 부채질 지겨워하고 / 兒童故厭扇揮暑

회화나무와 은행나무가 시원한 바람 주네 / 槐杏時看風送寒

괴롭기 그지없는 유생들은 의욕 잃어 / 到底酸儒多潦倒

인생행로 한 층 더 어려워지건 말건 / 任敎行路一層難”(한국고전번역원)

성균관 유생들에게는 철따라 별미가 제공되었는데, 초복에는 개장국〔家獐〕 한 그릇, 중복에는 참외 2개, 말복에는 수박이었다. 성균관 식당에서는 부채질을 금하였다. 대신 삼복날 저녁 식사 시간에 주먹 만한 얼음이 1인당 한 덩이씩 제공하였다.

초복에 왜 개장국일까? 그보다 삼복은 무엇을 의미할까.

올해 7월 16일(토)은 삼복(三伏) 가운데 첫 복날인 초복(初伏)일이다. 삼복의 복자에 엎드릴 복(伏)을 쓴다. 무엇이 엎드린다는 것일까? 이는 고대 중국 문헌 《역기석(曆忌釋)》에 삼복에 관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복(伏)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인가. 금(金)의 기운이 그 속에 잠복해 있는 날이라는 말이다(伏者何也 金氣伏藏之日也). 사계절이 돌아가며 바뀌는 것은 상생(相生)으로써 한다. 입춘(立春)에는 목(木)이 수(水)를 대신하고 수가 목을 살리고, 입하(立夏)에는 화(火)가 목(木)을 대신하고 화가 목을 살린다. 입동(立冬)에는 수(水)가 금(金)을 대신하여 금이 수를 생하게 한다(四時代謝皆以相生, 立春木代水, 水生木, 立夏火代木, 木生火, 立冬水代金,金生水). 오직 입추에 금이 화를 대신하는데 금은 화를 두려워하여 경일(庚日)이 오면 반드시 엎드린다. 경은 금이다(惟立秋, 以金代火, 金畏火, 故至庚日必伏, 庚者金也). 하지에서부터 세 번째 경일을 초복, 네 번째 경일을 중복, 입추 후 첫 번째 경일을 말복이라 하고 이를 삼복이라 한다(從夏至後第三庚為初伏, 第四庚為中伏, 立秋後初庚為末伏, 謂之三伏).”

여름의 기운은 화(火)이고 가을의 기운은 금(金)이며 입추(立秋)에는 금(金)이 화(火)를 대신하는데 이 관계는 상극(相克)이다. 즉 화극금(火克金)으로 불이 쇠를 녹이듯 화가 금을 이긴다.  경(庚)은 금(金)이니 여름날 경일에는 금이 화 기운을 피해 엎드려 숨고 화 기운이 승해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복날을 제도화한 곳은 고대 중국이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진덕공(秦德公) 2년 “처음으로 복일(伏日)을 정하여, 개를 잡아 열독(熱毒)을 제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는 삼복을 중하게 여겨 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이식(李植, 1584~1647)은 “옛적에는 이 절일을 중하게 여겨서 잔치를 하고 즐겼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복 더위를 이기기 위해 보양식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17세기에 여름에 개고기를 삶아 구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효종실록》 1649년 8월 19일자 기사에 "나라 풍습에 여름달에 개고기를 삶거나 구어 먹는 것은 가장(家獐)이라고 한다(國俗於夏月, 烹炙犬肉而啖之, 謂之家獐)"고 하였다.

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동국세시기》를 역해한 장유승은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풍습에 대한 기록은 18세기 중반 무렵부터 등장한다 며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그림 ‘현정승집도’를 소개했다. 이 그림은 1747년 강세황을 비롯한 선비 11명이 초복을 맞이하여 모임을 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에 “복날에 개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는 모임을 여는 것은 풍속이다(伏日設家獐會飮, 俗也)”라는 내용이 있다.

《동국세시기》 ‘유월 삼복’조에 ‘개장’을 ‘삼복의 좋은 음식으로 삼느다’는 내용이 나온다.

“개를 잡아 파를 넣고 푹 삶은 것을 개장[狗醬]이라고 한다. 닭고기와 죽순을 넣으면 더욱 좋다. 또 국을 끓여 고춧가루로 간하고 흰밥을 말면 제철 음식이 된다.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몸을 보충할 수 있다. 시장에서도 많이 판다.”

이를 보면 18세기 중반 무렵에는 복날에 개고기를 먹는 것이 보편적인 풍속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것이 《동국세시기》 의 기록으로 이어진 것이다고 장유승은 설명한다.

덧붙이자면 우리가 개고기를 식용한 것은 사실이나 개고기는 결코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었다. 불교가 성행하여 육식을 금했고, 고려가 몽골 지배 이전까지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했다. 고려 백성은 해산물을 많이 먹었다. 채소와 해산물을 좋아하는 이런 식생활은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침탈하기 전까지 이어진다.

또한, 조선 시대 복날에는 팥죽을 먹었다. 요즘은 삼계탕(蔘鷄湯)을 즐겨 먹으니 시대에 따라 시절 음식이 달라진다. 그리고 복날에는 혼인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결혼식은 주로 봄과 가을에 많았다. 

7월 26일(화)이 중복(中伏)이고 8월 15일(월)이 말복(末伏)이다. 예로부터 더위를 말할 때 ‘삼복더위’를 일컬었듯이 삼복에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이다. 말복은 입추(立秋) 다음에 있어 더위가 덜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늦더위 또한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