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원이 국민강좌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한 제24회 학술회의 “단기연호 어떻게 볼 것인가”(10월 26일,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김병기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전문위원은 우리 역사상 독자적 연호사용과 한말과 임시정부의 단기연호 사용, 개천절 어천절 경축행사 기록 등을 예시로 단기연호와 임시정부의 연관성을 밝혔다.

국학원 단기연호 학술회의에서 단기연호와 임시정부를 주제로 발표하는 김병기 전문위원(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김 위원은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졌으며 그에 따라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다. 조선시기 유교적 명분론으로 명, 청의 연호를 추종하면서 역사의 중심이 아닌 주변국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임시정부서 단기연호 광범위하게 사용
개천절 어천절 공식행사에는 종교와 무관하게 많은 독립운동가 참석해

그는 “한말 위기 때 단재 신채호 선생은 ‘우리 단군을 기년으로 하자.’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였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된 이후 단기연호는 각종 독립선언서에 사용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반영하고 국권회복을 위한 애국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임시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연호를 채택했지만 공식문서 외에 개인이나 단체 문서에는 단기연호가 오히려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또한 임시정부 첫해부터 개천절과 어천절 공식 경축식을 개최해 종교와 무관하게 300~400여 명의 많은 독립운동가가 참석했다.”며 “독립운동가들은 단군사상을 보편적인 민족사상으로 인식했으며 강력한 민족통합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밝혔다.

김병기 위원은 “해방 후 단기연호는 새롭게 부활하여 제헌국회에서부터 공식연호가 되었으나 5ㆍ16 군사정권 시절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서기연호를 공식사용하면서 자주독립과 통일된 한민족국가를 지향하는 오늘날 단기연호의 사용은 이제 시대적 요청“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김 전문위원은 “단기연호의 부활은 국수주의로의 회귀가 아니라 민족혼의 부활이며 우리 민족 자긍심의 회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