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연호 성립의 역사적 배경'을 주제로 발표하는 김동환 (사)국학연구소 연구원.

 

국학원이 지난 10월 26일 주최한 제24회 학술회의 ‘단기연호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사)국학연구소 김동환 연구원은 ‘단기연호 성립의 역사적 배경’을 주제로, 우리 역사가 단군으로부터 기원한다는 인식이 뿌리 내린 과정을 문헌사적으로 규명했다.

김동환 연구원은 “단군기원은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점과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를 세운 최초의 통치자라는 의미가 어우러진 상징이 포함되었다. 단기연호의 배경이 되는 단군기년의식은 최소한 고려 때부터 나타난다.”며 최초로 고조선의 건국시기를 밝힌 일연의 『삼국유사』, 신라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한 해를 ‘단군원년으로부터 3288년’으로 명시한 이승휴의『제왕운기』, 그리고 백문보의 『고려사』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또한 열렬한 민족주의자이자 유학자이며 단군역사와 뗄 수 없는 행촌 이암과 그의 저서 『단군세기』를 소개했다.

김 연구원은 “조선왕조가 세워지면서 자기 문화에 대한 자존심과 주체의식의 표상으로 단군인식이 등장한다. 단군기년의식은 16세기 사림의 모화사대의식으로 주춤하나 민중계승의 단군의식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며 단군을 동방에서 처음 천명을 받은 임금, 동방의 시조로 주장한 조박, 변계량, 권근 등 유학자의 글과 단기연호에 대한 학설들을 통일한 『동국통감』각 단군의 치세연수와 치적을 기록한 북애노인의 『규원사화』등을 설명했다.

또한 김 연구원은 “흥미로운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동북아 3국이 각자 인물을 내세워 기년의 기준으로 삼았다. 한국의 단군기원과 더불어 중국의 황제기원 일본의 천황기원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한말에 와서 외세의 본격적인 간섭으로 인해 국가정체성이 자각되면서 왕권국가차원의 연호가 아니라 우리 역사 속에 끊이지 않고 이어온 단군기년의식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다.”고 했다.

김동환 연구원은 “독자적인 연호를 표방한다는 것은 자신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천명을 받은 자주적인 지위에 있는 존재이며 중국과 대등한 관계임을 밝히는 행위이며, 반대로 중국의 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임에 동의하고 제후국의 지위를 수용한다는 뜻”이라며 “단기연호의 배경이 되는 단군기년의식의 역사적 전승은 우리에게 연면히 이어온 민족 정체성의 실체를 확인시키는 중요한 근거이다. 규원사화 등에 실린 단군기년의식은 중화적 역사의식을 완전히 벗어난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의 꾸준한 지속 속에서 민족의 위난기인 한말 일제강점기에 단기연호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