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하남 연세나은신경과 이현정 원장
사진 하남 연세나은신경과 이현정 원장

고령화가 가속화하면서 치매는 더는 일부 노년층만의 질환이 아니게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는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고, 경도인지장애(MCI) 단계에 있는 인구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기억력 저하나 방향 감각의 변화를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여기며 치료 시기를 놓친다. 치매는 초기에 발견하면 충분히 속도를 늦출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치매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 가장 흔한 형태인 알츠하이머병 외에도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 전두측두엽 치매 등이 있다. 또한 갑상선 기능 저하, 비타민 B12 결핍, 수두증, 약물 부작용처럼 치료가 가능한 ‘가역적 치매’도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증상만으로 단정 짓지 않고, 정확한 진단을 통해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억력 저하, 익숙한 길에서의 방향 상실,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감정 기복이 잦은 변화는 초기 인지저하의 대표적인 신호다. 이런 변화가 반복된다면 신경과에서 체계적인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조기 진단을 위한 검사 과정은 세밀하고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먼저 면담과 신체 관찰이다. 신경과 전문의가 환자와 보호자의 진술을 함께 듣고, 최근 기억력 저하의 양상과 진행 속도, 성격 변화, 약물 복용, 가족력 등을 꼼꼼히 확인한다. 이어서 신체검사와 신경학적 검사를 통해 시각·운동·감각·언어 기능의 이상 여부를 살피고, 간단한 정신상태검사로 판단력이나 주의력 변화를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일상에서 느꼈던 불편함이 실제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신경심리검사다. 이는 치매 조기 진단에서 핵심적인 단계다. 문답식 혹은 설문지 형태로 진행하며, 기억력, 언어 능력, 주의력, 계산력, 시공간 구성력, 실행 기능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 대표적인 검사는 MMSE(간이정신상태검사), SNSB(서울신경심리검사) 등이다. 이 검사를 통해 단순한 건망증과 병적 인지 저하를 구분할 수 있으며, 환자가 어느 단계의 인지 손상을 겪고 있는지도 판단할 수 있다.

세 번째는 뇌영상 검사다. MRI(자기공명영상)는 뇌의 구조적 변화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검사다. 뇌 위축, 백질 변화, 미세한 뇌혈관 손상 등은 치매 유형을 감별하는 단서가 된다. 필요시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을 시행하여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원인 단백질인 베타아밀로이드 침착을 조기에 확인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상검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세포 손상의 단서를 포착해 질병의 진행 정도를 예측하는 데 유용하다.

마지막으로 진단의학 검사, 즉 혈액 및 생리학적 검사가 이뤄진다. 갑상선 기능저하증, 비타민 결핍, 감염, 간·신장 기능 저하, 빈혈 등은 치매와 유사한 인지 저하를 일으킬 수 있다. 혈액검사로 이런 가역적 원인을 배제하고, 심전도나 기타 생리검사로 전신 상태를 함께 평가한다. 경우에 따라 유전자 검사(APOE형 검사)나 척수액 검사를 통해 아밀로이드 및 타우 단백 농도를 분석하기도 한다. 검사 결과는 치매의 원인을 정확히 구분하고,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 방침을 세우기 위한 기초 자료가 된다.

조기 진단이 끝나면, 환자 상태에 맞는 맞춤형 치료가 시작된다. 현재 치매는 완치가 어렵지만, 조기 치료로 진행 속도를 늦추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약물치료로는 아세틸콜린 분해를 억제하는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라타민 등이 사용되며, NMDA 수용체 길항제 메만틴은 중등도 이상의 치매에서 효과적이다. 이와 함께 비약물 치료인 인지훈련, 음악치료, 미술활동,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 등이 병행된다.

무엇보다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환자와 함께 일상생활을 계획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며, 변화된 행동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치매는 개인의 병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호자 교육과 정기적인 상담이 환자의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

치매는 한순간에 발생하는 병이 아니라, 서서히 기억과 인지 기능에 변화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초기에는 본인도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억력 저하나 말투 변화가 반복된다면 빠른 검사를 통해 원인을 확인해야 한다. 조기 진단이 치매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

글: 하남 연세나은신경과 이현정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