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아 작가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평생학습센터 뮤지엄 한미에서 ‘서점 여행자의 영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김윤아
김윤아 작가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평생학습센터 뮤지엄 한미에서 ‘서점 여행자의 영감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김윤아

《서점여행자의 노트》 저자 김윤아 작가는 빠른 답이 미덕인 시대에 답보다는 질문의 힘을 되찾는 수업을 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평생학습센터 뮤지엄 한미에서 ‘서점 여행자의 영감 수업’을 진행한다. 김윤아 작가가 기획한 이번 수업의 핵심은 ‘내면과 동네의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일상을 면밀히 관찰하며, 그 안에서 영감을 발견하고 이를 시각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김윤아 작가는 2023년 처음 시작하여 올해로 3회차 이 수업을 진행한다. 왜, 이런 수업을 기획했는지, 김윤아 작가에게 물었다.

- 왜 성인을 대상으로 이런 수업을 할 생각을 했는지요?

저를 포함한 모두는 점점 빠르게 정해진 대답을 하는 데 능숙해진다고 생각했어요. 직장에서, 가정에서, 관계 안에서. 그래서 점점 질문을 품을 여유도, 의미도 잃어버립니다. 세계 서점을 여행하며, 서점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질문이 공존하는 공동체라는 걸 느꼈어요. 그 안에는 놀랍게도 ‘느리게 묻고 천천히 응답하는 시간’이 존재했습니다. 그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수업은 답을 드리지 않아요. 대신 묻습니다. 다만 나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통해’ 묻는 것입니다. 나는 나를 설명하는 존재가 아니라, 질문이 통과해 가는 통로일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이 수업은 나를 해석하기보다 나라는 감각을 통해 세상과 삶을 다르게 바라보도록 돕는 시간이에요.

정답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려요. 문제가 아니니까요. 다만 대답이고, 대화가 되어갈 뿐임을 알려드리죠.

수업 참가자들은 서로 단점의 장점을 찾고 서로 필요한 단점을 구매한다. 결핍의 세 가지 다른 이름을 쓰고 서로 갖고 싶은 의미를 가진다. 이는 결핍의 30가지 다른 이름들을 알게 되며, 더 풍요로워지기 위위해서다. 사진 김윤아
수업 참가자들은 서로 단점의 장점을 찾고 서로 필요한 단점을 구매한다. 결핍의 세 가지 다른 이름을 쓰고 서로 갖고 싶은 의미를 가진다. 이는 결핍의 30가지 다른 이름들을 알게 되며, 더 풍요로워지기 위위해서다. 사진 김윤아

다시 혹은 새롭게 묻고 답하면, 성인의 삶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살아있는 감각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 이 과정을 마친 참가자들의 반응, 변화가 궁금합니다.

가장 많은 후기는 ‘질문이 좋다’는 것이에요. 자꾸 들여다보게 되고, 어려운데 대답해 보고 싶은 질문이라고 하시죠. 누구에게도 들은 적 없고, 그래서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고 하시기도 하고요. 남동생과 처음으로 이 질문으로 대화해봤다거나, 친구들과 만날 때 이 질문들을 하신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첫 시간에는 다들 어색해하세요. 소감에 적으신 분처럼 “어색하지만, 입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것 같아요. 수업이 진행되며 정말 자연스럽게 털어놓으시거든요.

이 수업은 공통 질문으로 묻지 않습니다. 주제별로 굉장히 다양하게 어려운(웃음) 질문들이 있고, 내가 ‘대답’하고 싶은 질문을 고르는 거죠. 어떤 분들은 이 질문이 좋은데 아직 대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물론 왜 이 질문이 좋은지, 대답을 찾기 어려운지 묻다 보면 대답이 되고 그로써 충분합니다.

참가자들의 변화를 보면, 꼭 무언가를 ‘이뤘다’기보다 삶의 문장을 한 줄씩 바꿔 가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영감 수업을 통해 오랫동안 품고만 있던 생각을 구체적인 자기만의 브랜드로 발전시킨 분도 있고, 내가 나에게 궁금한 게 생겼다는 분도 계시고, 안 가 본 동네를 걸어봤다는 분도 계셨어요.

참여자들은 내면지도와 동네지도를 각각 다른 색깔의 투명 포스트잇에 기록하고, 두 지도를 나란히 놓고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가치들과 동네의 공간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개인의 경험이 공유되면서, 동네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서로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재발견된다. 사진 김윤아
참여자들은 내면지도와 동네지도를 각각 다른 색깔의 투명 포스트잇에 기록하고, 두 지도를 나란히 놓고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가치들과 동네의 공간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개인의 경험이 공유되면서, 동네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서로의 이야기가 얽혀있는 살아있는 공동체로 재발견된다. 사진 김윤아

인상 깊었던 건, 중년의 한 남성 참여자가 수업 이후 처음으로 “수업의 숙제였던 혼자 소풍을 떠나서, 돗자리 위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셔봤다”라고 말씀하신 일이었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그걸 하기까지, 그리고 하고 나서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요. 이 수업은 거창한 변화보다는 그런 아주 작은 한 줄—생각의 방향, 말의 어조, 일상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작고 조용한 전환이 일어나는 공간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전체 과정 구성을 어떻게 설계했는지요?

먼저 제가 주제별 이야기를 들려드려요. 나, 이웃, 오래됨, 꿈, 아이와 어른... 등 일상에서 성장하거나 경험하는 과정들을 주제로 세계의 서점을 소개하고, 그 안에서 나눠볼 수 있는 질문까지 연결하죠. 그리고 종로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볼 수 있는 장소를 추천합니다. 때에 따라 그 장소에 미리 영감 키트를 전달해 놓기도 하고요. 자연스레 세계 서점에서 일상 속 골목으로 연결되게 합니다.

그리고 지도만들기를 해요. 단순히 지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입니다. 동네를 ‘길’이나 ‘상호명’으로 기억하기 쉽지만, 실은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이름, 어느 때에만 잘 보이는 풍경, 시간에 따라 다른 경험을 하는 감정과 풍경을 동시에 바라보게 하고 싶었어요. 일상을 감정의 지형으로 다시 그려보고, 자신의 감정을 외부 공간 위에 조심스럽게 놓아보며 ‘내면지도와 동네지도’로 만들어 갑니다.
내면지도에는 이런 것을 담아요. '내가 무언가를 기념하고 싶은 날, 그리고 기다리는 날은? ' 동네지도에서는 '동네에서 오래 머물러야 보이는 것'을 표기하지요. 이는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흐름 속에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기 위한 것입니다. 

예를 더 들어보면 내면지도에 "한 사람에게 새로운 역할이 되어줘야 한다면, 누구에게 무엇이 되어주고 싶은가?"에 관해서 적게 한다면,  동네지도에서는  "그 장소를 부르는 이름은 딱히 없지만, 내가 정해준다면?" 라는 질문에 답을 찾게 하지요. 이는  관계 맺기의 감각으로 동네를 바라보기 위한 것입니다. 

- ‘서점 여행자의 영감 수업’을 1년에 몇 번 운영하는지요?

현재 이 수업은 연 1회, 종로구 동네배움터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올해로 3년째 운영 중입니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요청으로, 공식 수업 외에도 따로 영감 모임이나 연말 회고 워크숍을 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기와 2기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한 해의 영감 정리 수업’을 따로 열어드린 적도 있고, 올해 3기 수업에는 1기, 2기 수강생들이 다시 찾아와 함께하고 있기도 합니다.

'서점 여행자의 영감 수업' 김윤아 작가.
'서점 여행자의 영감 수업' 김윤아 작가.

한 번의 수업으로 ‘영감’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면, 대부분 졸업하셨을 겁니다. 하지만 같이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영감은 또 다른 영감을 낳는 과정속에서만 완성된다는 것. 어느 수강생은 이 수업을 “명상 같기도 하고, 상담 같기도 하다”고 말해주셨어요. 그 말이 참 고마웠어요.

저는 어떤 답도 드릴 수 없지만, 지도를 함께 펼치고 길을 함께 찾아주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마치 책을 ‘재밌게’ 읽어드리는 사람처럼요.

- 앞으로 이 수업은 어떻게 진행할 계획인지요?

이 수업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매년, 매 회차,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삶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 저에게도 늘 새로운 영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