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트스페이스 라프에서 7월 17일 개막한 김여운 작가 개인전 《너에게로 가는 길》은 개개인의 인간다움에 주목한다. 사회는 개인의 희생과 실천, 우리의 연대 의해 결성되었다고 말하는 김여운 작가는 참여 작품을 통해 인간성 회복을 위한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장 중앙에 있는 설치작업 ‘너어게로 가는 길’(2025)은 두 사람이 참여해야만 완성되는 작품이다. 관람자는 길의 양 끝에 마주 서서 서로를 향해 걸어간다. 중앙의 문 형태의 구조물 위 발판에 동시에 올라서면 전시장에 종소리가 울린다. 한 사람의 실천만으로 완성할 수 없는 이 작품은 서로의 포옹으로 끝을 맺는다. 멀리서 바라보고 다가가 포옹함으로써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타인을 포용하며 서로의 연대가 이루어진다. 구조물을 덮은 천에 쓴 “Way to You”, “Way to Us”, “Way to Me”라는 글이 맞이한다. 이는 타인을 향한 길이 곧 ‘나’ 자신에게로 가는 길임을 의미한다.

전시장 벽면에는 정교한 붓터치로 그린 작은 훈장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가까이 들여다봐야만 하는 이 그림에는 ‘Empathy(공감)’, ‘Altruism(이타심)’, ‘Solidarity(연대)’, ‘Understand(이해)’ 등의 단어가 적혀있다. 김여운 작가는 주목해야만 인식할 수 있는 누군가의 희생에 이 훈장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실천과 헌신을 기린다.

편리성을 극대화하며 AI와 기술이 고도화된 오늘날 ‘인간다움’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아트스페이스 라프 이현희 큐레이터는 김여운 작가의 작업을 이렇게 소개한다.
"김여운의 작업은 언제나 ‘인간다움(humanity)’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에게 훈계하듯 외치는 윤리가 아니라, 타인과 나, 그리고 우리를 조용히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가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구조화하기보다는 사적인 사유와 감정의 결을 통해 사회를 응시한다. 이 전시는 관람자에게 단순한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다가서길 권유한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사이에는 거리도 다정함도 공존하며, 그 관계는 작가의 표현처럼 ‘쌍방의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작동한다.
여기서 ‘너’는 단지 관계 속의 일방적 대상이 아니다. 이 전시가 말하는 ‘너에게로 가는 길’은, 나와 다르고 낯선 타자의 고유성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타자를 향한 조심스러운 인식이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된다.
이것은 애매한 추상적 연대가 아니라 너와 나, 구체적인 두 존재가 각자의 자리에 서서, 조용히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이러한 구조는 동양철학의 관계적 세계관을 환기시킨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인(仁)은 타인을 향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동시에, 반드시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는 덕목이다.
'너에게로 가는 길'에서, 둘이 함께 도달해야만 종이 울리는 구조는 바로 이러한 ‘인’의 윤리를 공간적으로 구현한다.
한편, 불교의 핵심 개념인 연기(緣起)역시 이 작업과 맞닿아 있다. 연기란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 속에 성립된다는 세계관으로, ‘나’의 존재는 ‘너’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
이 전시에서의 도달과 울림, 그리고 관계는 모두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서로에게 조건이 되는 존재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철학은 모두 타인을 향한 존중과 실천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윤리를 강조한다. 김여운의 작업은 조용한 연대의 정신을 담아, 우리에게 말없이 묻는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걷는 동안, 나는 누구로 도달하게 되는가.'
《너에게로 가는 길》은 단지 타인을 향한 길이 아니다. 그 길은 우리에게, 더 나아가 나 자신에게 도달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 있는 것은 거창한 답변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던 따뜻한 손길과 서로를 향한 마음들이다.
김여운은 그것들을 화려한 수사 대신, 한 땀 한 땀 수놓듯 꺼내어 놓는다.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형상, 곧 조용히 감응하고, 천천히 나아가며, 나와 너를 돌아볼 줄 아는 태도이다."( 이현희 큐레이터)

김여운 작가 개인전 《너에게로 가는 길》은 artspace LAF 2025 전시 공모 선정작가 전으로 8월 9일(토)까지 아트스페이스 라프(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로 63, B1)에서 관람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11:00-18:00. 일·월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