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승 헌
국학원 설립자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출마한 후보마다 전국을 누비며 유권자들을 만나 먼저 손을 내밀고 악수하며 고개 숙여 인사한다. 지지를 당부하면서 아울러 유권자가 지지할 결심하도록 다양한 공약을 내놓는다. 경제 강국, 민주주의 강국, 외교안보 강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나라, 아동·청년·어르신 등 모두가 잘사는 나라, 자유 주도 성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나라, 안심되는 평생복지, 중산층 자산증식·기회의 나라, 재난에 강한, 국민을 지키는 대한민국, 신뢰를 세우는 나라 등등. 아마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차기 정부에서 이러한 공약을 그대로 실행한다면 대한민국은 지금보다는 훨씬 잘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국민은 행복해질까?
한때 우리나라는 먹을 것이 없어서 외국의 원조를 받아야 할 만큼 가난한 나라였다. 식민지시기를 거쳐 동족 간의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되었다. 그 땅에서 경제를 일으켜 이제는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국가가 되었다. 많은 나라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1960년대 70년대에 그렇게 원하던 경제발전에 이제는 성공했다. 소득, 평균수명, 의료, 교육 등 여러 지표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훨씬 넘어섰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잘 알려진 것처럼 자살률이 수년째 세계 1위이다.
유엔 지속가능한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이 올 3월에 발표한 ‘2025년 세계행복보고서(WHR)’에 따르면 조사 대상 147개국 가운데 우리나라는 58위로 나타났다. 전년도 52위에서 6계단 하락한 수치다. 한국은 2021년 62위, 2022년 59위, 2023년 57위였다. 참고로 세계 최고 경제 대국인 미국은 24위인데, 코스타리가 6위, 멕시코가 10위를 차지했다. 이를 보면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이 곧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의 행복은 단순히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국민이 경험하는 삶의 질이고 행복감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5단계는 복지에 관한 통찰을 보여준다. 가장 낮은 차원의 생리적 욕구에서 시작하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순으로 점차 높은 차원의 욕구로 발전한다고 설명한다. 안전의 욕구는 기본 복지 프로그램의 도입으로 많이 개선되었고 앞으로도 더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는 복지 예산과 인력을 늘려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복지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차원의 욕구를 이해하고, 모든 사람이 잠재력을 실현하여사회에 자기 능력의 최대치로 기여함으로써 보람과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지의 필수 조건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인성을 회복하여 공생 감각을 키우고 사회 전체가 공생의 가치를 우선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복지 제도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국민의 양심, 공생 감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태만, 비효율, 불공정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진정한 복지의 기반 또한 제도와 규칙이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다. 또한 그 마음을 어떤 물적 자원 못지않게 사회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기고 키워나가는 성숙한 공동체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을 개발하고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이다. 둘째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보람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사회 참여의 기회이다. 셋째는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득 기반이다. 이 세 가지가 공평과 평등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주어져야 한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국민을 위해 많은 공약을 제시하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책으로 추진할 때는 이러한 공약 가운데 진정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밝은 생각과 눈으로 진정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공약을 골라내고 그런 공약을 지지하면 5년 후에는 더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