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우리의 심기를 건드렸던 중국의 문화적 도용(Cultural Appropriation)이 요새는 잠잠해지고 있다. 한복이 자신들의 전통 의복이고 김치나 태권도도 자기들의 것이며 한국은 중국의 문화를 훔치는 도둑국가라면서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자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떠들고 다니던 예전이 모습이 이제는 점점 수그러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아직도 중국 내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는 이러한 왜곡된 정보로 감정을 자극해서 수익을 창출하고자 하는 이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의 공영매체에서 이를 언급하는 일들은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최근 중국에서 급격히 상승했던 자신감과 민족주의가 미국의 공격적인 대중외교와 국내 경제침체로 인해 위축된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전랑외교’로 악명이 높았던 외교정책이 전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비호감의 이미지를 만들었고, 다른 국가들에게 할 말은 하는 시원시원한 외교로 인한 자국민의 정치만족도 상승이 얻는 것은 그리 없고 잃는 것이 커진 부분, 그리고 미국의 공세에 대비하기 위해 더 많은 친중 국가의 연대를 구축해야 하는 위기감이 겹쳐 중국이 조금 더 절제된 모습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중국은 구조적으로 결코 동북공정이라는 목표를 포기할 수 없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우리의 역사, 특히 고구려와 그 이전의 역사가 중국의 만주지역에 대한 정통성과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현재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국토가 고대부터 자신들의 것이었다는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현재의 중국 국토는 청나라 시대 만주족 왕조가 이룩한 영토를 기반으로 공산당 시대로 넘어오면서 추가적으로 확장한 것인데 고대 한족들이 중심이 된 왕조를 자신들의 정통성으로 삼으면서 타국의 역사까지 억지로 한족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것이다. 영토는 역사에 따라 바뀌는 것인데 중국은 이와 같은 명분을 잃으면 바로 남에게 영토를 뺏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두 번째는 1960년대부터 발생한 문화혁명으로 자국의 문화가 거의 말살된 점이다. 중국 내 봉건, 자본주의적 잔재를 멸절시키고 순수한 사회주의 문화를 창조하자는 선동으로 자행된 일종의 문화적 자해행위라 할 수 있는 이 사건으로 인해 극소수의 역사자료나 유적지, 문화유산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가 되었다. 문화혁명이 얼마나 철저히 문화파괴를 일으켰는지, 전통요리법이나 예법을 아는 이들조차 반동세력으로 몰아 심하게 탄압하거나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에 이때를 기점으로 문화의 전수가 끊겨버린 것이다. 현재 중국이 자랑하는 소림사의 수련법도 사실 이때 소실되었고 아직도 복구가 제대로 되지 못한 상태이다. 과거 국민당의 장제스가 대만으로 쫓겨 갈 때 대규모의 문화재들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소실되었을 것이다.

중국이 완화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서방세력과 경제교류를 확장하기 시작한 후 사라진 문화들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한국이나 일본 등 과거 중국문화에 영향을 받은 주변 국가들의 유산을 모방하여 그럴싸하게 중국전통 문화인 것처럼 만든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봉건주의의 악습으로 여겨 철저히 없애려 했던 유교문화가 더는 자국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아 한국의 성리학을 역수입하듯 배워간 것이다. 중국에서 한국이 문화를 훔쳐갔다고 주장할 때 자주 써먹는 ‘한국은 공자가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는 대목이 이런 배경에서 왜곡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주변 국가들의 문화를 자신들의 문화인 것처럼 꾸며야 하는 현 상황에서 전 세계에 주목받고 있는 한류는 그들에게 좋은 타킷이 될 수밖에 없다.

잠시 소강기에 들어갔을 뿐인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우리의 문화를 더 적극적으로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1980년대를 시작으로 일본이 경제부흥을 이루면서 자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세계에 알린 적이 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도 우리와 같이 처음에는 팝 음악이나 영화, 만화나 음식과 같은 대중문화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외부의 관심이 점점 더 일본 전통문화에 쏠리게 되었고 과거 전국시대의 유산들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보다 더 이전인 8세기에서 12세기 즈음의 헤이안 시대의 유산들까지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의 경제가 쇠퇴하면서 일본 근대문화는 인기를 잃어갔지만 Zen으로 대표되는 일본 전통문화는 여전히 그 인기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우리의 한류는 아직 시작 단계라고 볼 수 있고 알려진 전통문화라고 해도 조선시대 정도일 뿐이다. 중국이 고구려 이전의 역사를 타깃으로 삼는 현재, 우리가 궁극적으로 고조선의 문화를 발굴하고 알려 나가는 것이 이에 대한 가장 큰 대항수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