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맙구나.
잘 자라서
너도 살았고.
사람들도 살았고.
고라니들도 살았고,
고추벌레들도 살았고,
잎 새들 스쳐가는 한 여름 바람들도 살았고.
이제 죽어서
언 땅에
비록
마른 가지로 박혀있지만
빈 땅 채우고.
쓸쓸한 마음들 댈래주고.
살아서 제 할 일 다했다는
존재를 알리고.
거기에
노추(老醜)도,
죽은 것도
어쩌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미지未知의 사실까지 살짝
확인시켜 주니.
고맙구나.
살아 고추여.
죽어 고추여.
- 한 낮 양지바른 텃 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