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현희 작가의 풍경화는 사실적 묘사에서 벗어난다. 사실적 묘사의 결과물이 아닌 풍경화는 작가의 예술혼을 전달하며 감상자에 따라 직관적인 이해를 가능케 한다. 더 나아가 이들은 풍경의 일부가 되어 삶의 근본적 가치를 성찰하고 개개인의 존재를 고찰한다.
8월 10일부터 9월 22일까지 영은미술관에서 열리는 2024 영은 아티스트 프로젝트 심현희 개인전 《생의 한가운데 In the Middle of Life》는 작가의 작업을 볼 수 있다.
작품을 자세히 보면 표면에 두껍게 발린 마띠에르(matière)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굳어서 갈라진 틈(Crack)을 발견할 수 있다. 평면이지만, 틈 사이로 보이는 물감층은 균열의 흔적을 발견하게 한다. 심현희 작가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붓터치와 함께 캔버스천 위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담는다. 각기 다른 시간이 겹겹이 누적된 레이어는 회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안한다.

“삶의 모든 것은 들숨과 날숨의 과정이다. 이제 막 숨을 내쉬었다. 그다음은? 예술은 어떤 방식으로든 삶을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내가 할 일은 나답게 호흡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물감 덩어리들의 강렬함과 이미지의 고요함이 감상자의 내면을 잠시라도 훑고 지나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심현희 ‘작가 노트’ 일부)

삶은 표면적으로 다 다른 모양을 갖고 있으나, 뼈대 즉 근본은 모두가 같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불행과 행복, 어두움과 빛, 죽음과 탄생처럼 이원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인생은 그리 명료하지 않다. 그러므로 죽음은 삶의 반대편으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양면의 성질을 동반하며, 작가는 이들의 중간지점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야말로 인생의 진면목이라고 말한다. 에너지, 연기, 그리고 생동하는 기운이 느껴지는 풍경처럼 자연의 힘에서 시작된 숭고미는 혼란과 무질서로 감정을 유발하고, 개인의 실존과 존재에 대해 상기하게 만든다.

또한, 작품을 따라 발길을 안쪽으로 옮겨보면, 음악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사운드는 오감을 자극하는 요소이자 작품과 공간 전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여, 예술이 가진 힘과 본질에 우리가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유도한다.
심현희 작가는 가로 폭만 9m에 달하는 대형 캔버스를 광목천 그대로 전시장에 걸었다. 본연의 형태와 질감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천은 벽에 기대 자체적인 힘으로 견디고 있으며, 중간중간 늘어진 부분까지도 물질성을 표현한다. 기존의 미학에 도전하여 이성의 재단을 피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우연의 힘에 의지하여 화폭을 채우게 한다.

황혼(黃昏) 안에는 낮게 가라앉은 구름과 비정형의 나뭇가지가 엉겨 붙어 그들의 관계를 시각화하고, 주변엔 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붉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늘어진 천에 담긴 정신적 풍경은 보는 이의 감정의 깊은 뿌리를 흔들면서 내면의 불안정성을 끄집어내고, 회화에 대한 다양한 길을 제안한다.

심현희 작가는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201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2021년 첫 개인전 《들숨-날숨》을 시작으로 이번이 다섯 번째 개인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