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족대동단' 소개 영상 화면. 사진 서경덕 교수실
'조선민족대동단' 소개 영상 화면. 사진 서경덕 교수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배우 김남길과 서경덕 성신여자대학교 교수가 조선 최대 규모의 항일 비밀결사단체 '조선민족대동단'에 관한 영상을 8월 12일 공개했다.

이번 7분 분량의 영상은 (재)동농문화재단과 공동 제작했다.

영상은 조선 최대의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대동단과 총재인 동농 김가진의 항일운동에 관한 활동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일제의 강압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민족의 저항 의지를 보여준 '의친왕 망명 작전'을 자세히 소개한다.

조선민족대동단은 1919년 3·1독립운동 직후 전 협(全協)·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조직했다.

대동단은 독립달성을 위해 조선민족의 대단결을 표방하고 서울에서 결성된 독립운동단체로서, 사회 각층의 인사들을 단원으로 포섭하여 전국적인 조직을 계획하고 주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선전활동을 전개했다.

당시 대동단은 사회 각층 중 진신(縉紳)·유림(儒林)·상공(商工)·청년(靑年) 등 4개 단(團)을 중심으로 단원 포섭에 나섰는데, 그 가운데 청년단의 조직을 정남용이 주관했다. 그리하여 송세호(宋世浩)·나창헌(羅昌憲) 등을 가입시키는 등 조직확대에도 많은 힘을 쏟았다.

같은 해 4월 중 김가진을 총재로 추대하고, 경기, 충청, 전라, 경상, 평안, 만주 안동현(安東縣)에 지부를 설치하고 단원 모집과 자금 모집에 힘썼다.

(사진 왼쪽부터) 배우 김남길, 서경덕 성심여대 교수. 사진 서경덕 교수실
(사진 왼쪽부터) 배우 김남길, 서경덕 성심여대 교수. 사진 서경덕 교수실

 

대동단은 1919년 5월 최익환 등이 붙잡히는 바람에 조직의 일부가 노출되었고, 또 기관지 〈대동신보(大同新報)〉 등의 발행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것과 함께 동단에 대한 일경의 포위망도 그만큼 압축되어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전 협·정남용 등 동단의 주도인사들은 대동단 본부를 상해(上海)로 이전할 것을 계획하였고, 그 제1단계로 총재 김가진(金嘉鎭)을 동년 10월 10일에 먼저 상해로 망명하게 했다. 이어 의친왕(義親王)을 상해로 탈출시켜 동단의 수령으로 추대하고 제2차 독립선언을 발표해 국내외의 여론을 고취하여 독립운동을 촉진하려는 목표였다.

1919년 11월 9일 정남용, 이을규(李乙奎), 한기동(韓基東), 송세호(宋世浩) 등이 의친왕과 함께 수색역을 출발해 열차편으로 압록강을 통과해 11월 12일 만주 안동역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의친왕의 행방불명을 보고 받은 일경이 총동원되어 기차 등을 수색한 결과 안동에서 일행을 체포하였다. 의친왕은 서울로 호송되고 전협, 정남용, 이을규, 송세호 등이 차례로 체포되었다. 이로 인하여 대동단 본부의 상해 이전 계획이 무산됨은 물론, 동단의 조직도 파괴되고 말았다.

이번 영상을 기획한 서 교수는 "단일 조직 내 가장 많은 83명의 서훈자를 배출했지만 교과서에서조차 언급되지 않고 있는 대동단의 활약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유튜브 뿐만 아니라 각 종 SNS 계정으로 전파중이며, 특히 전 세계 주요 한인 및 유학생 커뮤니티에도 영상을 공유해 널리 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상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김남길은 "이번 광복절을 맞아 서경덕 교수가 추진하는 일에 동참하게 돼 기쁘며, 국내외 많은 누리꾼이 시청해 주길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한편 《백운서경》이라는 제목으로 동농 김가진이 남긴 200여 점의 서예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9월 1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