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문화가 절정기를 이루던 사비기(538~660년) 익산이 한때 백제의 왕궁터였음을 나타내는 왕궁리 유적의 배후산성(방어산성)으로 추정되는 익산토성에서 당시 백제인들이 살았던 흔적인 집수시설과 칠피갑옷조각이 출토되었다.
국가유산청 허가로 익산시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지난 30일 발굴조사 중인 익산토성 현장에서 해당 유물과 유적을 전문가와 일반인에게 공개했다.
집수시설은 전북 익산시 금마면 오금산(해발 125m)을 둘러싼 익산토성의 남쪽 곡간부 평탄지에서 발견되었는데 1981년 첫 조사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한 시설이다. 물을 모아두는 데 필요한 시설로 산성에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거주했음을 나타내는 유적이다.

조사 결과, 직경이 각각 동서 9.5m 남북 7.8m, 최대 깊이 4.5m로 평면 원형 형태의 다듬은 거대한 석재 집수시설을 확인했다. 바닥은 자연 암반을 인위적으로 깎고 다듬었고 특히, 북동쪽은 물이 중앙으로 유입되도록 암반을 가공했으며, 남쪽에는 높이 80cm 정도의 단을 쌓았다. 시설 일부는 무너져 내렸으나 하단부가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보존된 것으로 보아 과거 한 차례 보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해당 시설은 자연 지형을 이용해 흐르는 물의 관리 방법과 이를 활용한 백제인의 토목기술을 파악할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집수시설 안에서는 백제 왕도였던 공주 공산성과 부여 관북리 유적에 이어 세 번째로 칠피갑옷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그 가치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발굴조사에 참여한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박동범 연구원은 칠피갑옷 조각과 관련해 “주로 백제 왕도에서 확인되고 있어 중요하게 평가된다”고 했다. 또한, 익산토성의 역할과 관련해 “부여의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익산토성은 남쪽으로 2km 떨어진 왕궁리 유적의 배후산성 역할을 했을 것으로 확인된다”라며 “평상시에는 행정도 보다가 전란이 일어나면 왕이 피신하는 피난성 내지 적을 방어하는 배후산성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발굴과정에서 문서를 분류할 때 사용된 봉축 편으로 추정되는 지경 2.3cm 크기의 목재 막대기가 발견되었다. 여기에서 “정사(丁巳) 금재식(今在食, 현재 남아 있는 식량”이라는 묵서명이 확인되었다.

향후 추가연구를 통해 해당 유물이 봉축편으로 확인될 경우, 백제 시기 문서 보관 방법을 파악할 중요한 자료이며, 익산토성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동범 연구원은 “봉축은 고대 문서를 보관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조선시대 상소문 끝에 동그랗게 나무로 문서를 마는데 거기 끝에 글을 새긴 것이라 볼 수 있다. 백제지역에서 처음 봉축이 출토된 것이라 집중하고 있다”며 “식량의 재고를 파악한 것으로 보아 토성 어딘가에 식량과 관련된 창고가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또한, 봉축편 추정 목재에 적힌 정사년 표기가 597년 혹은 657년인지 파악하면 익산토성의 운용 시기도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익산은 백제 한성기말 또는 웅진기 초에 백제의 영향력 아래 편입되었다가 백제사 전면에 등장한 시기는 ‘서동 왕자’로 유명한 무왕 때로 알려졌다. 기록으로는 《삼국유사》에 무왕이 익산에서 자랐거나 무왕 어머니의 근거지가 익산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한편, 10세기 저술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는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 기록이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 무왕(무광왕) 때 지모밀지(익산)로 천도하시어 새로이 정사를 경영하셨다. 그때가 정관 13년이었다. 때마침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는 비가 내려 새로 지은 제석정사가 재해를 입었다“고 했다.
반면, 『삼국사기』 630년(무왕 31) 2월에 무왕이 사비궁을 중수하면서 웅진성으로 갔다가 7월에 공사를 마친 후 다시 사비로 돌아갔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이 시기까지 부여가 백제의 왕도였음을 보여준다.
백제가 한성기, 웅진기를 지나 성왕 때 ‘남부여’로 나라 이름을 바꾸고 찬란한 문화의 불꽃을 피웠던 사비기. 향후 활발한 유물 유적발굴과 연구를 통해 부여의 관북리 왕성 유적과 부소산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익산토성 상호관계를 밝혀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