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초이갤러리는 2월 20일부터 일본 작가 와다 치주Wada Chizu, 오쿠무라 아카Okumura Aka, 나카자와 류지Nakazawa Ryuji의 3인전 《다른 세계에서 만나(See You on the Other Side)》를 개최한다.

20~30대와 40대 중반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성인으로 성장하기보다는 어린 시절에 남아있는데 이는 이전 세대의 저항과 의식적으로 강요되는 사회적 순응에 대한 반감, 그로 인한 외로움과 동일시될 수 있다. 이는 이전 세대를 향한 예술적, 문화적 반란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와다 치주Wada Chizu,  Curly Hair , 2024,  Acrylic on canvas, 60.6 x 50 cm. 이미지 VIVIAN CHOI GALLERY 비비안초이갤러리
와다 치주Wada Chizu, Curly Hair , 2024, Acrylic on canvas, 60.6 x 50 cm. 이미지 VIVIAN CHOI GALLERY 비비안초이갤러리

작가 와다 치주는 순수한 외모의 소녀와 귀여운 동물의 모습을 통해 역설적으로 현대인의 외로움, 내면적 고립, 불안 등의 문제를 다루어 귀여운 이미지가 갖는 기만적 요소를 탐구한다.

와다의 주요 작품 소재인 파스텔 색상의 초현실적인 풍경 속에 등장하는 소녀는 단순하고 귀여워 보이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텅 빈 눈은 다소 무표정하거나 놀란 모습이다. 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의 표현일 수도 있고 동시에 일본의 경직된 사회적 관습에 대한 냉소적 반응일 수도 있다. 작가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통해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현대인의 모습 이면에 내재하는 우울감, 불안과 같은 어두운 면을 상기함으로써 표면에 가려진 실체를 의식하도록 유도한다.

와다 치주Wada Chizu,  Close to You, 2024,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이미지 VIVIAN CHOI GALLERY 비비안초이갤러리
와다 치주Wada Chizu, Close to You, 2024, Acrylic on canvas, 72.7 x 60.6 cm. 이미지 VIVIAN CHOI GALLERY 비비안초이갤러리

 

와다가 창조한 소녀 캐릭터를 통한 '가와이'(귀여움)의 구현은 작가 개인적인 기억과 얽혀있는 환상을 담고 있다. 인간이 아닌 허구의 생명체와 벗을 삼는 '눈이 큰 소녀'라는 반복되는 주제는 작가 자신의 외롭고 억압된 어린 시절을 반영한다. 규율을 강조하는 와다의 엄격한 부모는 그녀가 화가가 되려는 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로 와다는 혼자서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학창시절인 90년대 초 일본은 서구 대중문화의 홍수를 겪고 있던 터라 와다는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만화책 그리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통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이는 와다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이미지를 그녀의 유토피아적 상상에 통합하여 환상과 현실의 독특한 조합을 만든 계기가 되었다.

나카자와 류지Nakazawa Ryuji,  Clouds at Dusk,  2023,  Oil on canvas,  53 x 45.5cm. 이미지 VIVIAN CHOI GALLERY 비비안초이갤러리
나카자와 류지Nakazawa Ryuji, Clouds at Dusk, 2023, Oil on canvas, 53 x 45.5cm. 이미지 VIVIAN CHOI GALLERY 비비안초이갤러리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나카자와 류지는 익숙하고 낯익은 일본의 교외와 도시 풍경을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몽환적인 분위기로 담아내어 아름다운 풍경에 비춰진 고독과 외로움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역동적인 붓터치와는 대조적으로 차분한 색상으로 묘사한 일본 도시 외곽의 익숙한 풍경과 만화적인 환상이 뒤섞여 있는 나카자와 류지의 독특한 회화는 화려한 풍경 속에서 느껴지는 역설적인 고독을 담는다.

나카자와의 작품에는 성장기의 소년이 자주 등장한다. 소년은 일본 도심과 외곽의 폐교, 빈집, 길고양이 등 다소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주위를 서성인다. 소년은 과거 화려했던 일본의 경제와 문화를 마치 유물처럼 아득히 바라보는데 이는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 속에서 상실감을 느끼는 일본의 신세대, 즉 90년대생인 나카자와 자신의 모습을 반영하는듯 하다.

나카자와의 회화에는 서양의 인상주의 화풍을 떠올리게 하는 풍부하고 역동적인 붓터치가 두드러지는데 작가는 스쳐 지나간 장면의 찰나를 빠르게 화폭에 옮기는 듯 경계를 흐릿한 선으로 흩뜨린다. 또한 일본 망가에서 영향을 받아 장난스러우면서도 신비스러운 독특한 인물의 묘사는 나카자와 특유의 만화적인 독특한 화풍을 잘 보여준다.

친숙함속에 느껴지는 미지의 세계, 진부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세계, 나카자와 류지의 이 상반된 결합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어 꿈과 현실 사이의 매혹적인 세계를 비춘다. 나카자와 류지는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오쿠마라 아카Okumura Aka, Landscape with Sea and Flowers,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cm. 이미지 VIVIAN CHOI GALLERY 비비안초이갤러리
오쿠마라 아카Okumura Aka, Landscape with Sea and Flowers, 2023, Acrylic on canvas 72.7 x 60.6cm. 이미지 VIVIAN CHOI GALLERY 비비안초이갤러리

오쿠무라 아카는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영생하는 영원한 소녀의 존재를 일본의 전통적인 시각적 요소와 대중문화와 혼합하여 현대적으로 표현한다. 오쿠무라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번성했던 일본 미술 장르인 우키요에 판화에 등장하는 파도, 벗꽃, 부채 등 전통적인 일본 고전 미술 요소를 차용하여 이를 그래픽화하거나 현대적인 이미지로 재창조한다.

오쿠무라는 검은 바탕을 죽음의 세계로 표현하고 그 안에서 빛나는 생명의 세계를 그리는데 작품에 등장하는 소녀를 이 두 세계를 중재하는 매개체로써 표현한다. 기후 변화가 만든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전쟁 그리고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엄습한 불안은 오쿠무라 아카의 예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오쿠무라는 삶과 죽음의 순환 속에서 계속해서 진화하는 세계를 불멸의 소녀라는 존재 통해 표현함으로써 죽음을 삶과 재생의 자연스러운 순환으로 해석한다.

오쿠무라 아카는 일본과 홍콩, 중국에서 20회 이상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었고, 2023년 아트센트럴 홍콩 ART CENTRAL HK, 2022년 징아트JINGART에서 전시하였다.

일본 작가 3인전 《다른 세계에서 만나(See You on the Other Side)》는 비비안초이갤러리 청담(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85 길 30, 2F)에서 3월 23일까지 열린다.